나의 비상식적인 인도여행을 마치며

에필로그

by 알바트로스


나의 비상식적인 인도여행을 마치며


타지마할과 로맨티스트 샤 자한의 이야기 그리고 무작정 계획없이 시작해버린 비상식적이었던 대장정의 깊은 여운을 간직한 채 나는 한밤중에 뉴델리 인드라 간디(Indra Gandhi) 공항으로 향하는 미니밴에 올랐다. 이제 다시 도쿄 빌딩숲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캄캄한 도로를 외롭게 질주하는 미니밴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 나는 아직 인도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보통 여행자들처럼 조드푸르(Jodhpur)의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하룻밤을 지내보고도 싶고 바라나시(Varanasi)에 가서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도 해야했다. 기회가 되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mandu)에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더이상 일정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 여정에 몸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일까? 또다시 인도를 찾을 구실을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6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나는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그러나 인도의 모든것들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었던 그 때가 인도에 작별을 고할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두세시간쯤 달렸을까? 시원하게 뻥 뚫린 고속도로와 함께 인도의 수도 뉴델리가 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는 대국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깔끔하고도 광활한 도로의 모습에 나는 압도당했다. 이렇게 인도는 마지막 까지 내 고정관념을 깨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5년후 10년후 인도는 분명히 더이상 내가 아는 인도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2014년 뜨거웠던 겨울의 인도는 오로지 내 기억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버스기사는 공항에 도착해서 원래 불렀던 가격의 거의 두배가 되는 돈을 요구했다. 나는 한푼도 더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대치했다. 그러다 문득 이제 내일이면 이렇게 사기꾼들 그리고 바가지 씌우는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추억속의 일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아무말 없이 돈을 달라는대로 다 줘버렸다. 공항 체크인 카운터로 향하는 내 등뒤로 버스기사는 잘 가라며 행운을 빈다고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나는 무심히 손을 흔들었다.



에필로그


2014년 뜨거웠던 겨울로 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금 내 인생은 탄탄대로였던 6년전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내 인생의 삼분의일이라는 시간을 보낸 일본이라는 나라에 작별인사를 하고 무턱대고 발리로 떠나왔다. 이 곳에서 나는 영혼의 파트너와 함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실현해가고 있다. 여지껏 다녀온 나라만 해도 25개국이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곳을 여행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커리어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망가졌다. 첫 직장이었던 컨설팅펌을 그만두고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방황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커리어 패스를 따라가는 것은 이제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불가능해졌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원하는 것을 잡으려면 우선 손에 쥐고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손에 쥐고있는 모든 것을 털어버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부딛히고 깨지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난다.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그러나 특별한 삶의 방식을 몸소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설레고 가슴떨리는 일이다. 어쩌면 6년전 인도로 훌쩍 떠났을 때부터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마두라이에서 만났던 점성술사가 말해준 그대로이다. 방황하고 깨지면서 행복과 충만함으로 향하는 여정은 2014년 뜨거웠던 겨울 인도에서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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