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으로 북한산을 오르다
2년전 한국에 돌아와서 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어림잡아 분기에 한번씩 북한산 백운대에 오른다. 산을 좋아한다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마음이 복잡하거나 머릿속 잡생각들을 걷어내고 싶을 때 스스로를 힘들게 할 목적으로 동내 뒷산가듯 오르던 것이 분기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여름에는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오르면서 동네 등산객 아저씨들의 엄지척 세례를 받기도 했고, 가을에는 단풍구경 비슷한 것을 하러 찾아가기도 했다.
서울에 첫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11월 어느날의 뜬금없는 겨울 산행은 언제나처럼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무리 동네 뒷산이라지만 겨울철의 산행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줄곧 영하의 기온을 유지하던 그날의 날씨는 산 중턱을 넘어가면서 점점 더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힘들어서 조금만 쉬려고 해도 낮은 기온탓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산의 풍경을 감상할 요령으로 서있으면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서 나를 산 밑으로 떨어뜨리려고 했다. 기세가 중요하다. 고민할 여유도 없다. 겨울 산행도 인생처럼 정했으면 그냥 앞으로 가야한다.
설상가상으로 준비운동 없이 무리했던 탓인지 발목 인대가 늘어난듯 했다.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어서 중간에 그냥 내려갈까 몇번을 고민했지만 중턱을 넘어온 이상 그대로 내려가나 조금 더 올라가나 나의 발목 상태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임에 분명했다. 그렇게 오기 하나로 꾸역꾸역 정상 근처까지 올라갔다.
정상에 가까워올수록 뚜렷하던 시야는 점점 더 흐려졌다. 해질무렵이라 그런지 하늘은 몽환적인 색깔로 물들어 있었고 구름은 바로 옆에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정상을 찍고 무시무시한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까지 왔다는 그 느낌 하나만으로 모든 과정이 보상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생도 결국 겨울산행과 같은 것은 아닐까? 거창한 이유나 더 좋아보이는 것 혹은 편해보이는 것을 찾아 헤메이기 보다는 그냥 하기로 한 것을 끝까지 해보는 것. 즉흥적인 겨울 산행은 짧지만 강렬하게 인생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