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천공항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좀비의 습격을 받아 폐허가 된 것처럼 황망한 모습이었다. 평소 같으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을 행선지가 적힌 전광판은 지나치게 썰렁했다. 항공사 체크인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로 향하는 길에서 드물게 여행자를 마주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방호복을 입은 공항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다. 발리 다섯 달 살기를 끝내고 돌아온 지 세 달 만에 결국 또다시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로 세 달 살기를 떠나왔다. 결국 코로나 팬더믹도 역마살은 당해낼 수 없었다. 내가 한국에 들어온 지 세 달 만에 갑자기 또다시 떠난다고 하니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왜 하필 지금인지 그리고 왜 하필 이름도 생소한 에스토니아인지 뭐하나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쏟아지는 질문들에 논리적으로 답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논리는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면 그만이었다. 나는 에스토니아가 디지털 선진국이며 코로나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하고 그들의 선진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그냥 떠나고 싶은 것에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자연스럽게 떠나고 싶어 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익숙한 환경보다는 새로운 환경 속에 있으면서 자극을 받고 성장하는 사람이다. 에스토니아라는 생소하고 작은 나라는 그런 면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부럽다는 사람들부터 괜한 고생 사서 한다는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걱정 어린 격려를 받으며 나는 인천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텅 빈 인천공항 풍경과 사람들의 격려와 부러움 어린 시선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여행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떠나왔지만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여행을 간접체험할 수 있도록 꼭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여행은 떠나는 이에게 기쁨과 고난이라는 형태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여행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여행하는 대리만족과 어떤 인생의 중요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앞으로 90일간 생생한 에스토니아의 풍경과 기억을 기록해내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