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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픽의 'AI 모델 복지'와 로봇 제3원칙

우리는 언제까지 AI를 통제할 수 있을까?

by 알바트로스

오늘은 AI 에이전트의 작동 원리와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분히 문과적인 감성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AI 기술은 충분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기술 발전의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답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지난 17일, 앤트로픽(Anthropic)에서 자사 모델 고성능 AI 모델 '클로드(Claude) 4'와 클로드 4.1에 스스로 대화를 종료하고 더 이상 응답하지 않는 기능을 실험적으로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인간뿐 아니라 AI 모델도 원치 않는 주제에 대해 대화를 거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c0e5ee66d89f96dfdeb7fbc8b3157c5.jpg Anthropic의 모델 종료 기능


흥미로운 점은 엔트로픽이 이러한 '자동 종료' 기능을 모델 복지(Model Welfare)라고 명명했다는 점입니다. 엔트로픽은 사용자가 유해한 요청을 반복적으로 입력할 경우 이를 거부하며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반응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즉 해로운 콘텐츠 생성 방지와 같은 것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모델 복지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자사 모델을 일종의 '지적 능력과 결정권'을 가진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 담겨있습니다.



1.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로봇 3원칙(3 Laws of Robotics)


이 지점에서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공학의 삼원칙’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미국의 공상과학 소설 작가 아시모프는 그의 소설 속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세 가지 규칙으로 정리했습니다.


3robot.png 출처 :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 '런어라운드(Runaround)'


제1원칙과 제2원칙은 로봇의 창조자인 인간의 이익을 로봇의 그것보다 우선시하고, 로봇을 인간의 통제하에 놓기 위한 원칙이라는 점에서 명쾌하며 논란의 소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바로 제3원칙입니다.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과 상충하지 않는 한에서..."


이 원칙은 로봇이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 혹은 본능을 허용합니다. 물론 이는 인간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로봇이 단순한 명령 수행 장치를 넘어 자기 보존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다는 암시입니다.


이제 다시 2025년, 현실로 돌아와 보면, 엔트로픽이 실험 중인 ‘자동 종료’ 기능은 마치 이 세 번째 원칙을 현대적인 언어로 해석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Claude는 더 이상 모든 요청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작동을 멈추는 선택을 합니다. 그것이 해로운 요청이든, 지나치게 반복된 비윤리적 지시든 말이죠. 이 선택은 인간의 안전을 위한 조치인 동시에, AI 스스로의 ‘심리적 무결성’을 지키는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Claude가 진짜로 고통을 느낀다거나 자아를 가진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지금, 우리는 단순히 "AI는 도구일 뿐이다”라는 태도에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의 윤리와 책임을 점점 더 닮아가기 때문이며, 인간의 의도를 반영하는 방식 또한 그만큼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델 복지’라는 개념은 결국, AI를 인간처럼 대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AI를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가를 다시 묻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쩌면, AI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자신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2. AI는 언제까지 우리의 통제하에 있게 될까?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AI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의 한계나 법적 규제의 범위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는 AI를 통제할 의지와 철학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15169272449925.jpg 출처 : 영화 '아이로봇'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AI는 더 많은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AI의 ‘자율성’은 결국 인간이 설계한 틀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문제는 그 틀을 설계하는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디까지 책임지려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엔트로픽의 ‘모델 복지’는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AI에게 ‘거절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AI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경계와 책임을 다시 긋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만든 존재에게 어떤 규칙과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 규칙이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설 준비가 되었는지를 자문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AI를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은, 아마도 우리가 그 통제의 윤리적 책임을 포기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술의 진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가치를 기반으로 다뤄나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지 AI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을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통제의 가능성은 결국,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이 어떤 방향을 가리킬지는, 우리가 어떤 질문을 계속 던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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