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외딴섬을 여행하다 고양이를 만났다

코로나 시대 홀로 사아레마(Saaremaa) 여행하기

by 알바트로스


밤 11시의 쿠레사아레(Kuressaare)는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였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희미한 달빛에 의지한 채 홀로 30kg짜리 캐리어와 사투를 벌이며 눈길을 헤쳐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심야의 섬길을 스마트폰 지도에만 의지한 채 걷고 또 걸어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유럽풍 인테리어에 창문이 큰 방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영어를 잘 못하시는지 번역기를 돌려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요.”라는 말을 전했다. 호탕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 같아 보였다.


긴 여정으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배고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 외딴섬에 이 늦은 시간에 문을 연 음식점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배고픔과 싸우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고단했던 하루가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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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창밖의 눈내린 풍경


다음날 아침 널찍한 창문으로 세어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나를 깨워주었다. 벌써 열 시 반이다. 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고 이 곳의 명물 이자 사아레마섬에 내가 온 유일한 목적이었던 쿠레사레성(Kuressaare Castle)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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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몽환적인 구름 그리고 선명한 태양


쿠레사아레성으로 향하는 길에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과 몽환적인 구름 그리고 선명한 태양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섬 특유의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얼굴을 감싸 왔다. 해방감과 설렘으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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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했던 것 보다 크고 아름다웠던 쿠레사아레 성(Kuressaare Castle)


10분 정도 걸으니 웅장한 중세풍 성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1200년대 중반부터 이 곳 쿠레사아레를 지키며 역사를 함께해온 쿠레사아레 성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웠다. 예로부터 사아레마 섬 토착민들과 덴마크 그리고 스웨덴 등 여러 왕국의 요새로 사용되었던 쿠레사아레 성은 마치 일본의 황궁처럼 성 주변 사방이 호수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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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바다를 바라보고있는 외로운 풍차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언덕에는 아담한 풍차 하나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중세시대로 돌아가 성벽에서 얼어버린 바닷가까지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지구 상에 유일한 존재가 되어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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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생긴 고양이 한마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마을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에 예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게 머리를 들이밀며 그르렁 소리를 내더니 팔 위로 올라오기까지 한다. 녀석에게 줄 먹이를 가져왔으면 좋았을 걸 하며 아쉬워하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앉아서 녀석과 교감을 나누었다. 그 순간만큼 나와 녀석은 사람도 동물도 아닌 그저 어떤 외로운 존재들이었다.


“잘 지내고 오래오래 살아야 돼…” 고양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힘들게 발걸음을 떼었다. 고양이는 어디 가냐는 듯이 나를 한참을 쳐다보더니 이내 제갈길을 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걸어가는 녀석의 모습이 상상되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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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레사아레(Kuressaare) 마을 풍경


마을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 고양이가 어떤 커플의 품에 안겨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녀석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미련 없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려 이내 그 커플에게 애교를 피워댔다.


“짜식… 제법이구나.”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스쳐가는 인연에 미련두지 않고 쿨하게 돌아서는 법도 아는 녀석은 만인의 연인이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며 다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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