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서쪽 끝 사아레마섬(Saaremaa)에 가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대항해시대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과 일확천금의 꿈... '항해 덕후'인 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타르투에서 수도 탈린을 거치는 동안 가로등 하나 없는 조금은 오싹한 에스토니아의 시골길을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항구에는 우리 버스를 실을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섬 생활, 발리섬에서 보낸 환상적인 6개월, 지난 3년간 매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찾았던 제주도까지. 확실히 섬과 바다에 대한 나의 로망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에스토니아라는 이 작은 나라에도 제법 큰 섬이 있었다. 에스토니아의 서쪽 끝 발트해 한가운데에 위치한 사아레마(Saaremaa)라는 섬이었다. 섬이라면 어느 곳이든 가보고 싶던 내가 미지의 섬 사아레마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학의 도시 타르투에서 수도 탈린까지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탈린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또다시 2시간 30분 총 5시간을 달려 에스토니아의 서쪽 땅끝마을 Virstu Sadam이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우리 버스를 실은 커다란 배는 거대한 화물트럭과 버스 그리고 승용차 몇 대를 싣고 발트해를 건너 또 다른 미지의 섬 사아레마(Saaremaa)의 도시 쿠레사아레(Kuressaare)로 향하는 중이다.
등대하나 없는 저녁의 발트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 배가 출항했는데 갑판에서 내려다본 곳에는 바닷물이 아닌 얼음과 눈으로 가득했다. 설마 배가 육지를 가로지르고 있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경직된 표정으로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나는 기겁하고 말았다. 우리 배는 얼음을 뚫고 추위로 얼어버린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얼음 깨는 쇄빙선이었다.
북유럽 발트해의 혹독한 겨울 추위의 신고식을 단단히 치르고 몸을 녹이기 위해 선실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북적대고 있을 선실에는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 몇몇만이 허기를 달래며 멍하니 추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또 다른 미지의 세계 사아레마(Saaremaa)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버스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직 갈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