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나 홀로 사아레마섬 표류기
사아레마섬에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풍경사진을 하나 보았다. 예쁜 언덕 위에 멋들어진 풍차 세대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던 그곳은 사아레마섬 북부 앙글라(Angla)라는 풍차마을이었다. 호빗족이 살고 있을 것 같이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 사진 속 마을 풍경은 단번에 나를 매혹시켰다.
나는 그 풍경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내가 사아레마섬에 오기 전부터 풍차마을은 쿠레사아레 성(Kuressaare Castle)에 이어 이 섬에서 꼭 가봐야 할 곳 리스트의 맨 위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섬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망설임 없이 뒷조사도 하지 않고 풍차마을로 떠났다.
쿠레사아레에서 버스를 타고 설원을 헤쳐 한 시간을 달렸다. 끝없이 늘어선 설원과 자작나무들 그리고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북유럽의 숲은 그야말로 시베리아 벌판같이 황량했다.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들과 버스정거장만이 이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 무렵 풍차 여러 개가 늘어서 있는 언덕이 보였다. 드디어 앙글라 풍차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잔뜩 기대하며 버스를 나섰다. 주변에 농가가 있는지 소똥 냄새가 났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분명 주변에 마을과 관광안내센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사진에서 보았던 앙글라 풍차마을은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구글맵에는 앙글라 풍차마을이 영업중(?)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시베리아 벌판을 연상시키는 황량한 겨울 숲에서는 에스토니아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은커녕 생명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더욱 난감했던 것은 주변에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편의시설조차 하나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곧 해가질 시간이었고 한겨울의 사아레마섬의 추위는 이제 내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다음 버스까지 무려 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오로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허탈한 마음도 잠시뿐 화도 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홀로 시골길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면서 세 시간을 버티다 보니 대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느끼며 겸손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약속된 시간이 찾아오고 무사히 버스에 올라탔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름다운 석양이 원망스럽다.
나는 풍차마을의 사진빨에 속은 것에 분풀이라도 하듯이 쿠레사아레로 돌아와서 풍차식당(Saaremaa Veski)에서 저녁을 먹었다. 풍차식당은 풍차마을에게 배신당한 나를 위로해 주듯이 따스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그 날 저녁 가게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그 날 맛본 양고기 샤슬릭 요리와 와인 한잔은 내 모든 피로와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술기운이 올라 혼자 만찬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점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나에게 코로나 팬더믹에 어떻게 왔는지 믿기지 않는다며 연신 질문을 퍼부어댔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제법 친해졌다.
사진 속에서만큼은 앙글라 풍차언덕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풍차마을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그 풍경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음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곳에 먼저 다녀온 누군가가 절대 그곳에 가지 말라고 충고했어도 어쨌든 나는 그곳에 직접 가서 내 두 눈으로 그 광경을 확인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진빨에 뻔히 속을 것을 알면서도 속아줄 수밖에 없는 것. 그게 여행 중독자의 숙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