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겨울왕국과의 작별인사

코로나 시대 나 홀로 북유럽 외딴섬 표류기

by 알바트로스


20210203_094833.jpg 사아레마섬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햇살


어젯밤까지 무서운 기세로 내리던 눈이 거짓말처럼 그치고 창문으로 햇살이 비추었다. 사아레마섬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은 맑음이었다. 떠나야 한다는 아쉬운 마음에 고장 난 로봇처럼 한참을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짐을 싸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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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레스토랑과 그리스 정교회


자전거 렌털 샵에 자전거를 돌려주고 오는 길에 쿠레사아레 구석구석을 찾아가 작별인사를 했다. 마을 모퉁이 아기자기한 카페, 여자 친구와 함께 꼭 와보고 싶었던 분위기 좋은 풍차 레스토랑, 산토리니가 생각나는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외로운 모험의 끝에 내 지친 피로를 녹여주었던 호텔 스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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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씨가 제법 잘어울리는 쿠레사아레 성(Kuressaare Castle)


“다음에 또 올게요!” 짐을 챙겨 숙소 아주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마음씨 따뜻한 아주머니의 초대로 에스토니아 가정식 사우나와 눈 찜질을 하던 그날 나는 모든 근심 걱정과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웃으며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쳤다. 맨몸으로 눈에 파묻히던 그날 나는 정식 ‘에스토니아 남자’로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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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못볼 눈쌓인 쿠레사아레(Kuressaare)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의 이면에는 고독과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있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다행히도 절망감의 블랙홀에 빠지지는 않았다. 일주일간의 짧은 여행에서 나는 이 모든 삶의 과정들이 더 큰 도약을 위한 과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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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레사아레성과 매일 걷던 눈길


어떤 개인이든 한 국가든 전성기와 암흑기가 존재한다. 우리는 마치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시간만이 인생인 것 처럼 어두운 시간과 기억들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욱 밝게 빛나듯 방황하는 시간과 실패하는 시간들 역시 우리 인생의 소중한 일부이며 꼭 필요한 시간이다.


20210203_150119.jpg 배를타고 발트해를 가르며 다시 문명세계로


비행기는 높게 이륙하기 전에 반드시 크게 하강하는 구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비행기가 잠시 하강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비행기가 하강을 끝내고 다시 예전보다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아레마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이 곳의 설원 풍경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날씨가 따뜻한 여름에 이 곳에 다시 돌아와서 자전거를 타고 마음껏 섬을 누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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