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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Mar 08. 2021

먹고사는데는 쓸모없지만 살아가는데 중요한 질문

나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라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일까? 수많은 시간 동안 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정말로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까? 나는 이 답도 없어 보이고 먹고사는데 쓸모도 없어 보이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선 내가 누구인가를 떠올렸을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였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고 배우자이자 친구이다. 그렇다면 내가 맺고 있는 관계가 변하는 순간 나라는 존재도 변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고 난 뒤에도 ‘나’로서의 삶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관계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내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나의 직업이나 학벌 혹은 취미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 자신과 나의 배경을 동일시한다. 직업이나 교육 수준과 같은 외적인 조건들은 분명 한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살면서 수시로 직업을 바꾸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내가 하는 일이나 배우는 것들 혹은 좋아하는 것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육체와 정신 혹은 감정상 태나 마음 같은 것들일까? 얼핏 보면 가장 본연의 내 모습에 가까워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중 어떤 것도 내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생성과 파괴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세포 순환은 10년에 걸쳐 이루어지며 그에 따르면 우리는 10년에 한 번씩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육체는 나를 이루는 구성 요소이지만 '나' 자체는 아니다.


감정상 태나 마음 혹은 나의 믿음과 같은 것들이 나는 아닐까? 차분하게 앉아서 명상을 하거나 조용한 아침거리를 산책하고 있으면 한 순간도 잡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사람의 기분이다. 나의 믿음은 어떤 사소한 계기와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불교에서는 원래 ‘나’라는 것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나의 육체와 정신은 어떤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뭉쳐졌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그 무엇일 뿐 변하지 않는 자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을 멈춰야 한다고 한다. 


뭔가 우울하고 슬프지만 기원전 5세기경 부처님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명쾌해 보인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 지금 당장 머리를 깎고 중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금의 내가 세상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것 같다.


힌두교 문화권에서는 변하지 않는 자아의 개념인 ‘아트만’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브라흐만’이 사실은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윤회를 반복하는 의식을 가진 어떤 존재이며 그 의식은 결국 우주의 뜻과 같다는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세상이 사실은 나와 같다는 이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내가 그 자체로 세상이자 그 세상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메트릭스 같은 영화에 나올 듯 하지만 이는 세상과 우주를 보는 관찰자로서의 변하지 않는 어떤 신적인 ‘나’의 존재를 끌어들임으로써 나의 인생과 사후세계를 무한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같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신의 피조물로 여길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덧없이 세상을 끊임없이 윤회하는 환생한 누군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의식 속에 우주의 뜻이 담겨있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그런 것들이 뭐가 중요하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 먹고사는데 쓸모없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재각각 일 지언정 한 번쯤 생각해볼 가치는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줄 원동력이 돼줄 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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