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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Mar 07. 2021

해외여행은 사치일까?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는 무엇인가?" 서른 살도 넘은 성인이 하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은 질문인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중학교 2학년 시절을 거치면서 다소 거칠고 불완전한 형태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끝낸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내던져진다.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의문은 속시원히 풀리지 않은 채 입시와 취업 연애와 사회생활 그리고 결혼이라는 굵직한 이벤트 속에 묻혀간다.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현대인에게 내가 무엇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또 20년이 흐른다. 우리는 가정에서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기 시작한다. 직장에서는 직업과 경력에 걸맞은 직함을 획득한다. 이제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막 서른 살이 되던 해였다. 당시 나는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역만리 외국에서의 직장생활은 맞지 않는 옷처럼 버거웠고 생활은 위태로웠다. 열심히 커리어를 쌓고 돈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래전 기억 속 저편 어딘가의 서랍에 넣어뒀던 질문이 나를 밤낮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 "나는 무엇인가?" 당시 이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질문은 없었다. 여행을 떠날 시간이었다.


2020년 3월 발리 꾸따해변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를 떠돌아다닌지도 벌써 1년이 다되어간다. 동남아 발리의 열대 기후부터 북유럽 에스토니아의 설원까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겪어보고 회사에서는 만나볼 수 조차 없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젊은 나이에 현실세계를 벗어나 사회에서 의무를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분명히 안다. 사람은 사회적 기능과 목적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2021년 2월의 어느 겨울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가끔은 가늠할 수 조차 없이 넓게 펼쳐진 자유와 가능성의 대지에서 막연한 두려움 속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안다. 자유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설 용기가 있는 유연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인생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원래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오죽하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여행은 당신이라는 사람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정말로 1년간의 짧은 여행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던 내 삶을 뿌리부터 바꾸어 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경험, 돈 걱정에 밤을 지세는 경험, 어느새 찾아온 새로운 가능성에 기뻐 날뛰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삶의 밑바닥을 찍고 올라오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여행은 절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아. 지금 여행하면서 쓰고 있는 돈이 얼마든 걱정하지 마. 여행은 무조건 너를 부유하게 만들어줄 거야.” 유럽에 와서 사귄 이탈리아인 친구 페페가 술잔을 기울이며 해준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해외여행은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떠나야 하는 사치가 아니다. 살면서 한번쯤 마주해야 하는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싶다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바쁠수록 떠나야 한다. 일상에 지친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여행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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