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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기록

루프탑의 로망

도시는 살아있다

by 알바트로스
20210321_163949.jpg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풍경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서울 옥탑방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매일 아침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며 운동을 하고 휴일 저녁이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바비큐에 맥주 한잔하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여유로워 보였다.


이번 자가격리 숙소에서 드디어 루프탑의 로망이 현실이 되었다. 건물 맨 꼭대기층 우리 방에 딸린 옥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지는 못하지만 옥상에서 서울 시내를 조망하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20201224_131556.jpg 작년 겨울 에스토니아 탈린의 헬레만타워(Helleman tower)


몇 달 전 에스토니아 탈린을 여행하면서 한 도시의 지붕 위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지붕 위에는 숨겨진 매력이 있다. 지붕 위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거대도시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없는 지붕 위 옥상은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창이었고 운동장이자 피크닉 명소였다. 그곳에서 나는 봄기운을 마음껏 느꼈고 복잡한 도심 속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관찰했다.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찰자가 되고 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도시의 변화무쌍한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뜨고 지는 해와 사람들이 움직이는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도시의 표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금요일 저녁 사람들의 들떠있는 기분과 일요일 저녁의 우울함까지. 도시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 같았다.


도시의 루프탑에는 낭만이 있다. 타지마할이 또렷이 보이던 인도 아그라의 어느 루프탑 카페부터 탈린 시내가 한눈에 보이던 TV타워까지. 우리가 본능적으로 루프탑에 끌리는 것은 그것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부여해주는 관찰자로서의 지위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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