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피해서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2021년 새해가 찾아왔다. 벌써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탈린의 축제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는 여전히 광장 한가운데에 꿋꿋이 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전구를 메달아 반짝이는 아기자기한 나무들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철거된 자리에 남아 그 빈자리를 빈틈없이 채워주고 있었다.
이곳 탈린에서 새해를 맞이한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밤새도록 폭죽을 터뜨리며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다. 새해맞이 축제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였을까? 아니면 코로나 팬더믹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였을까? 그들의 유쾌한 웃음 사이로 문득 새어 나오는 답답함과 우울감이 느껴졌다.
2021년 새해의 희망찬 바람과 코로나 팬더믹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탈린은 어쨌든 한 해를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중세시대 마을과 탈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와 눈 내린 풍경이 잘 어울리는 시청광장 그리고 아담한 스케이트과 그 자체로 예술작품인 카페까지. 이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작년 말부터 탈린의 코로나 감염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싶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1월 말부터 삼 주간 탈린 전체를 락다운 한다는 소식이었다. 식료품점 쇼핑과 레스토랑 테이크아웃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외부활동이 제한되는 락다운 상황 속에 날씨마저 우중충한 탈린에 머무르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우리는 코로나를 피해 동쪽으로 가는 피난열차에 올랐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도시를 옮겨 피난을 가는 길에 나는 에스토니아 사람들과 그들의 역사에 대해 생각했다.
믿기지 않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에스토니아에도 슬픈 역사가 있다. 거대한 이웃 러시아에 점령당한 뒤 수십 년 동안 구소련에 편입된 이 작은 나라의 국민들은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나라에서 추방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해졌다. 시베리아행 열차에 올라 가족들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탈린을 탈출하여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타르투로 향하는 길에 본 설원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마치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쏟아지는 함박눈 사이로 보이는 키 크고 날씬한 나무들은 북유럽의 이국적인 정취를 더해주었다. 이름 모를 낯선 시골마을을 지날 때에는 구소련풍의 교회와 가옥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이 에스토니아인지 시베리아 한복판으로 향하는 길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설국열차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려온 그곳에서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타르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타르투는 탈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매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스웨덴과 독일 그리고 러시아 문화권이 교차하는 도시 타르투는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타르투 대학이 위치한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타르투 대학교는 노벨상 수상자인 빌헬름 오스트발트를 비롯하여 각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르투에서의 피난생활은 성공적이었다. 그곳에서 펍과 레스토랑 그리고 관광지를 누비며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대학도시답게 타르투에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밝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2024년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타르투에 언젠가 꼭 한번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