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한가운데 사아레마섬에 가다
에스토니아 서쪽 끝 발트해 한가운데에는 제주도 면적의 두 배 정도 되는 섬이 하나 있다. 이름도 발음하기 힘든 사아레마(Saaremaa)라는 이 작은 섬에는 5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으로 스웨덴 그리고 북쪽으로는 핀란드와 마주 보고 있는 이 섬은 바이킹족이 상륙한 기원후 700년경부터 제법 그럴 듯 한 마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아레마섬에 입도하려면 수도 탈린에서 서쪽으로 버스를 타고 네 시간을 꼬박 달린 뒤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정보도 빈약하고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나는 북유럽의 섬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인구 약 3만 명의 이 작은 섬에 가보기로 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여정은 처음부터 다이나믹 했다. 꽁꽁 얼어있는 북유럽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크루즈는 마치 쇄빙선처럼 얼음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발트해에서 감상하는 오염되지 않은 북유럽 천혜의 자연은 그저 넋 놓고 바라보기만도 충분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바다로 흘러내려버릴 것 만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사아레마섬의 첫인상은 광활함과 황량함 그 자체였다. 핀란드의 숲을 생각나게 하는 키가 큰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는 섬 곳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보다 원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 제주도 두배 면적의 섬에 3만 명 정도밖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인지 섬 곳곳은 텅텅 비어있었다.
사아레마섬 인구의 대부분이 몰려있는 마을 쿠레사아레(Kuresaare)는 그리스의 산토리니섬을 생각나게 하는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쿠레사아레는 작고 한적한 마을이었지만 레스토랑부터 대형 스파호텔까지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는 에스토니아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마을 외곽에는 중세시대 때 지어진 쿠레사아레성이 있다. 아렌스부르크(Arensburg)라는 독일식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중세시대 성은 14세기경부터 덴마크와 스웨덴 등 여러 세력들의 영향권 안에 있으면서 파괴와 축조를 반복하면서 현재의 독특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 아렌스 부르크 내부의 박물관에 가면 바이킹 시대에서 중세시대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소련 점령시대로 이어지는 사 그저께 마섬의 장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0유로의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마을에서 수십 킬로 떨어진 곳에는 약 7천 년 전 운석이 떨어져서 생긴 깔리 크레이터(Kaali Krater)가 있다. 운석의 충돌로 생겨난 직경 110m 정도에 깊이 25m의 그리 넓지 않은 호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광활한 우주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사아레마섬 북쪽에 가면 아기자기한 풍차가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언덕과 깎아지른 절벽이 멋있는 바닷가를 즐길 수 있다. 단, 하루에 버스가 서너 대밖에 운행하지 않는 만큼 잘못하다가는 산에서 조난당해 죽을 수도 있다.
북유럽의 여름은 해가지지 않는 백야현상으로 유명하다. 사아레마 섬도 예외는 아니었던 만큼 여름이 되면 해가지지 않아서 사이클이나 트레킹을 하면서 하루 종일 천혜의 자연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이 언젠가 코로나는 반드시 끝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다시 이 아름다운 에스토니아 서쪽 끝 섬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