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부여잡으며
오늘은 여행 첫날답게 하루 종일 이동만 했다.
버스 타고 중앙역으로 이동, 중앙역에서 기차 타고 국제공항에 도착, 체크인 시간까지 기다리고, 비행기 타고 4시간, 나디 공항 도착 후 라우토카로 가는 버스 대기, 버스로 50분가량 이동 후 드디어 숙소에 도착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
새벽 4시에 기상했다.
3주간의 여행이기에 집을 정리하고 나오니 새벽 5시 20분이었다.
문을 열고 새벽의 하늘을 보니 별 하나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별자리 어플을 켜고 폰을 갖다 대니 금성이라고 한다.
너도 밝은 아이였구나?
그 옆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리온자리가 잘 다녀오라는 듯 밝게 빛내고 있었다.
드디어 피지에 도착했지만 허기가 져, 공항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러 코코넛 새우튀김으로 배를 채우고 버스정류장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예정시간보다 늦어지자 옆에 있던 어르신이 말을 거셨다.
입국 수속을 위해 선 줄에서 언뜻언뜻 마주쳤던 분이었다.
"현지인이니, 여행객이니?"
내가 웃으며 여행객이라고 답하니 내가 현지인인 줄 아셨다고 한다.
알고 보니 어르신 역시 나와 같은 숙소를 예약하셔서 우리는 숙소까지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라우토카로 가는 버스 밖의 풍경은 잔잔한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멜라네시아의 석양, 축구를 하는 피지인들, 귀 뒤를 긁고 있는 개들, 얌전히 앉아있는 고양이의 뒷모습, 끊임없이 피어나는 연기, 풀을 뜯는 소들과 염소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울리는 피지 음악.
피지엔 인도 이민자가 많다고 하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 풍경을 보면서 10년 전 갔던 인도가 떠올랐다.
버스에 내려 어르신과 숙소에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다 호텔 내부에 있는 바에서 맥주 한 잔 하자고 제안하셨다.
어르신은 맥주를 사주셨고 나는 저녁으로 칠리 크림 새우를 시켰다.
가볍고 간단한 대화를 나눌 줄 알았는데, 우리는 2시간 반 가량 깊은 대화를 나눴다.
어르신은 어릴 적에 폴란드에서 호주로 이민을 와 정착해 살고 계셨다고 했다.
철학, 삶, 경험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내 나이를 밝혔는데 어르신은 자신의 나이는 말해주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자신은 75세라고 말씀해 주셨다.
혼자서, 캐리어 하나 끌고, 구글의 도움 없이 여행을 온 안드레아 선생님.
그 분과 나의 나이차는 40년 정도 났다.
여행을 좋아하고 대화를 좋아하는 분이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받아 적어야 할 귀중한 내용들이 많아 말씀을 들으면서도 인상 깊었던 내용을 속으로 되뇌며 듣느라 꽤 고생했다.
자신은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며, 나보고 좋은 청취자 (good listener)라며 들어줘서 고맙고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손사래를 치며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몇 달 후 선생님이 사시는 골드 코스트에서 보기로 했다.
대화한 내용들을 브런치에 적을까 했지만 에세이에 담기로 했다.
안드레아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책에 적지 말라는 농담을 건네셨다.
쓰다 보니 길어졌다.
내일 나는 섬으로 간다.
새벽 5시에 기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