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러 가자
잠자리가 바뀌면 자주 깨는 탓에 또 새벽 4시에 기상해 버리고 말았다.
6시 50분에 호텔 앞으로 오는 픽업 차량을 타기 위해 천천히 준비하고 방을 나와 재밌게 여행하라는 뜻으로 안드레아 어르신 방문을 한 번 쳐다보고 호텔을 나왔다.
피지는 항상 카메라를 켤 준비를 해야 하나 보다.
숙소 밖을 나오자마자 떠오르는 햇빛에 주황빛으로 물든 구름을 배경으로 검은 새 무리가 비행하며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갑자기 마주한 몽환스러운 아침을 보고 눈으로만 담아 아쉽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늘이 예뻐 사진을 찍으며 픽업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약속했던 시간에 차가 오지 않았다.
다행히 택시가 자주 다니고 걸어서 17분 정도 되는 거리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배를 놓치면 좋은 꼴을 볼 수 없어 막 떠나려던 찰나에 호텔로 출근하려는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인사와 함께 내 상황을 설명하며 걸어서 출발하는 게 낫지 않냐고 물으니 걸어가기엔 너무 멀다며 자신이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인과 일을 해본 적이 있다며 또박또박하게 "안녕하세요"하고 90도로 인사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택시는 금방 잡혔다.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택시에 탑승했다.
기사는 겨우 3분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해 내가 가려던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데려다줬는데 알고 보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고 하마터면 애먼 곳에서 배를 기다릴 뻔했다.
도착한 곳엔 아주 작은 선착장이 있었다.
선착장 오른쪽을 보니 저편에 정박되어 있는 대형 크루즈가 보였다.
내가 실수로 갈 뻔했던 곳이었다.
작은 천막 밑에서 무언가를 적고 있는 직원에게 체크인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지인들이 테이프로 칭칭 두른 박스와 꾸러미들을 작은 배 안으로 직원들과 함께 나르고 아이 두 명은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짐 나르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천막 옆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반 고양이보다 유난히 머리통이 작은 고양이가 목에 목걸이를 두른 채 나왔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갑작스러운 고양이의 출현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애교가 많은 녀석일까? 무심한 녀석일까?
복권 긁는 마음으로 눈을 마주치고 손을 갖다 대니 퉁, 하며 내 손에 머리 박치기를 했다.
옳지, 애교 많은 놈이구나!
녀석은 쭈그리고 앉아있는 내 근처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의 머리를 내 손등에 비벼댔다.
여행 중에 만난 다른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내 눈을 쳐다보는 녀석이었는데, 나는 눈을 천천히 떴다 감으며 '너를 좋아한다'라고 신호를 보냈다.
내 손길을 즐기던 녀석은 상체를 일으키고 발로 내 무릎을 툭툭 치더니 올라오려는 시늉을 보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더니 내 어깨에 올라탔다.
나를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 두 분이 그 모습을 쳐다보며 웃으셨다.
옷에 쉽게 뚫리는 발톱이 간간이 느껴졌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내 목 뒷덜미에서 움직이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녀석을 보고 있는데 배를 타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하기에 두 손으로 작은 머리통을 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배가 정박해 있던 곳은 높이가 심해 탈 수 없어서 저 앞에 보이는 턱이 낮은 곳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때 자신과 같이 가자며 친절을 베푼 파우.
파우는 오른쪽 귀에 반짝반짝 빛나는 금색 꽃핀을 꼽고 노란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피지인이었다.
2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우리는 대화를 나눴는데 파우는 내가 머물 숙소 바로 위에 있는 섬의 리조트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했다.
파우가 말하길 대부분의 피지인들은 28일 동안 리조트에서 근무를 하고 메인 섬으로 돌아가 4일 동안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파우의 말이 근사하게 들려, "와, 꿈의 직업이네! 일 할만하지?"라고 물어보니 굉장히 당황해했다.
깔깔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니 휴무 없이 28일 내내 근무한다는 말에 그녀가 왜 대답을 못했는지 바로 납득했다.
내가 그녀에게 머리에 꽂은 꽃핀이 예쁘다고 말하자 그녀는 작은 가방에서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꽃핀을 선물로 주었다.
배에 승선하기 전 엄마와 함께 이곳에 또 오고 싶다는 나의 말에 파우는 자신이 일하는 리조트에 놀러 오라며 페이스북 아이디를 물었다.
페이스북 친구까지 된 우리는 리조트에 놀러 가겠다고 약속하고 새끼손가락을 건 후 배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