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리네 집
배는 직원들과 승객들을 포함해 20명 정도만 수용 정도로 작았다.
배의 가장자리에 앉아 반대편 사람들과 마주 보는 구조로 되어있었는데 직원들과 구면인 파우는 배 앞쪽에, 나는 왼쪽 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다른 자리에는 가족 세 그룹, 아들과 노모, 그리고 쿨한 아저씨 한 분이 앉았다. 나와 가족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현지인이었다.
처음엔 잔잔하게 출발했다. 자세를 틀어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는데 마음이 시원했다.
피지에 도착해 처음으로 보는 바다였다.
몇 분 후 직원들이 위쪽에 말려있던 투명한 것을 내려 물이 튀기지 않도록 지퍼를 단단히 고정했다.
그러자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선장님.
배가 작다 보니 작은 파도에도 배가 심하게 요동쳤다.
이 상태로 3시간을 가야 한다니, 꽤 피곤한 여행길이 될 거 같았지만 이게 여행인 걸.
탑승 30분 전에 먹은 멀미약이 효과를 발휘했다.
가끔씩 맞은편에 보이는 섬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거리거나 의자에서 몸이 살짝 떨어질 정도로 흔들렸으나 살짝의 어지러움이 있을 뿐 그렇게 심한 멀미는 하지 않았다.
저쪽에선 멀미약을 먹지 않은 파우의 선글라스를 낀 얼굴에서 멀미 때문에 표정이 좋지 않은 모습에 웃어버리고 말았다.
적응한 것일까, 피곤했던 것일까?
출발 후 1시간 정도 지나자 비슷한 풍경에 슬슬 졸음이 오던 나는 배가 아주 심하게 요동치던 때를 제외하고 앉아서 잠을 잤다.
중간중간 깼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형체만 보이던 섬 하나가 점점 더 흐려질 뿐, 주변은 온통 푸른 바다였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한 아저씨는 배가 어떻게 됐든 모자가 벗겨진 지도 모른 채 입을 벌리고 자고 계셨다.
내가 머물 나누아 섬 근처에 다다랐을 때 주변에 대기를 하고 있던 작은 모터보트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짐만 싣고 가거나 내 옆에 계셨던 할머니와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들이 떠나는 모습에, 나를 픽업해 줄 보트가 안 오면 어쩌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콧수염을 멋지게 기르신 직원이 오셔서 여행을 온 가족과 나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몇 분 안돼 저 멀리서 배 한 척이 오더니 이 배를 타고 가면 된다며 지금 얼른 타라고 했다.
급작스러워 파우와 미쳐 포옹을 하지 못하고 배에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손인사를 하며 떠났다.
타고 온 배보다 더 작았던 배에는 좌식 의자 하나가 마련되어 있었고 선장님 한 분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한 명이 있었다.
의자에 앉고 다가온 배에서 멀어지자 속력을 내는 캡틴.
체감상 시속 80km까지 당기셨던 거 같다.
빠른 속도와 그 옆으로 펼쳐지는 푸른빛을 감상하다가 무언가가 바다 위에서 튀어 올랐다.
"와우!! 유 럭키!!"
푸른빛의 생선 한 마리가 바다 위를 깡충깡충 대며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현지인이 말하길 피지어로 리보로라고 하는 생선인데 산호에 있는 미역들을 주로 먹으며 생활하고 바다 위를 점프하며 헤엄친다고 한다.
귀엽게 철벙대는 생선을 보고는 또 한 번 카메라를 미리 켜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속도가 잦아들고 해변 바로 앞에 군데군데 집이 보이자 회색 입을 한 여자가 배가 정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장님과 소녀에게 픽업비용으로 각각 10 피지달러를(한화 약 6천 원) 주고 바지를 걷어붙였다.
맑은 바닷물에 땅을 디뎠다. 기분이 좋았다.
대략 4시간 만에 도착하고 몇 걸음 걷지 않아 펼쳐진 평온한 숙소에 내려쬐는 햇볕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모래, 코코넛 나무, 나무로 만든 집들과 널브러진 옷들.
새소리와 파도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큰 식탁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기 전 밖에 있는 평상에 널브러져 있는 집주인 태리에게 인사를 했다.
누운 자세에서 돌아 엎드린 채로 인사를 하고 악수를 건네는 모습이 딱 섬에 사는 사람다웠다.
나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태리의 집을 예약했는데 간단히 홈스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족이 함께 살고 홈스테이 운영을 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고 했다.
태리에게 6남매가 있는데 자식 둘은 각각 메인 섬과 호주에 있고 나머지 4남매는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 4명 모두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나의 체크인을 도와준 베티는 고작 스물셋이었는데 애가 벌써 둘이나 있었다.
아침은 숙박비에 포함, 점심과 저녁은 각각 12.5, 15 피지 달러로 미리 지불하고 식사하는 장소에서 10 발자국 앞으로 내 숙소가 있었다.
침대 두 개와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는 작은 오두막이었다.
그 오두막에서 바로 해변이 보였다.
짐을 내려놓고 드디어 첫끼를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은 카사바와 양배추 볶음.
허기가 졌고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
식사를 하니 잠이 슬슬 몰려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2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나, 어떤 액티비티를 할지 내일 일정에 대해 상의하고서 내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나무 탁자에 앉아 글을 썼다.
가끔씩 해먹에 누워 높이 뻗어있는 야자수들을 보거나 해변 앞에 태리네 식구들이 만든 나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베티의 동생 비나를 따라 가족이 가꾸는 농장도 갔다.
걸어서 5분 정도, 숲길을 걸어 전경이 보이는 언덕을 넘고 도착한 곳엔 카사바 줄기, 바나나 나무와 가지 열매 그리고 돼지들이 있었다.
맨발을 좋아하는 나는 신발 없이 걷기는 하지만 거친 것 때문에 발이 아파 샌들을 신고 이동했는데 맨발로 척척 올라가는 비나에게 발은 괜찮냐고 물어보니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한다.
그 말에 아까 배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본 직원의 발이 생각났다.
그의 발바닥 전체가 굳은살로 덮여있었다. 발바닥이 마치 두꺼운 가죽 같았다.
비나는 이미 일을 하고 있었던 아버지 에디와 베티 남편 에디(이름이 같다)를 도와 식물에게 물을 주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를 따라온 바둑이(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를 한껏 쓰다듬어 주며 시간을 보냈다.
겨우 10분 정도 지났을까, 장작으로 쓸 큰 나무를 진 비나와 바둑이와 함께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거센 바람에 수영 생각이 없었던 하루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몸에 열감이 느껴져 수영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바다에 정박이 된 보트 두 척 말고는 오직 나뿐이었다.
고개를 뒤로 최대한 젖혀야 잎을 볼 수 있을 만큼 높이 뻗어있는 야자수들이 옆으로 나란히 자라 있고, 고요히 흐르는 바다, 다시 붉어진 하늘, 앞에 보이는 섬, 한결같이 푸른 바다, 바람소리.
이 모든 게 내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았다.
해가 자신의 모습을 감출수록 차가워지는 바닷바람에 몇 분 있다 나왔지만 그 여운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남아있는 석양을 조명삼아 얼른 샤워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후 잠에 들었다.
밤새 내리던 비와 세찬 바람, 그로 인한 거친 파도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묘한 밤이었다.
2025.08.05 태리네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