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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뼛속까지 스타트업인의 커리어 테스트 여정기 (1)

by 해리

들어가며

영상직으로 시작해 마케터로 커리어 전환을 하고난 뒤 지금까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내겐 꽤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늘 빡센 환경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일해왔고,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과 깨달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나는 왠지 뼛속까지 '스타트업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성향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나 자신을 탐구하며, 가설을 세우고 직접 부딪혀가며 테스트해온 시간들의 집약체였기 때문이다. 완전한 경험주의자로 살아온 나는 직장을 선택할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내 커리어에 안전지대가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짧지만 다사다난했던 나만의 커리어 테스트 여정을 정리해보려 한다.


혹시 첫 직장에서의 실패 이후, "지금 내가 하는 이 도전들이 결국 의미 없는 시간이 되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오래도록 재미있게,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은 뭘까?


스무 살 초반부터 나는 하루빨리 내 전문성을 갖추고 일하고 싶었다. 내 힘으로 프리랜서로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준비를 아예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환경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접 도전해보는 것"이 그 시절의 내겐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보자는 생각으로 커리어의 첫발을 내디뎠다.




내가 세운 첫 번째 가설

"그래. 내 관심사를 살려서 직업을 선택해보자! 그럼 오래도록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야."

첫 커리어로 ‘영상직’을 선택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영상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어릴 때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부모님이나 친구들 생일 때마다 '영상편지'를 만들어 선물하던 나는 영상 작업이 참 재미있고 좋았다. 그래서 "이걸 직업으로 삼으면 꾸준히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시작했다.




광고 프로덕션, 치열했던 첫 직장


그렇게 영상 업계에서도 가장 빡세다는 ‘광고 프로덕션 회사’를 첫 직장으로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두고 “미친 듯이 힘들다”고 입을 모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집요하게 배우기엔 그만한 환경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직접 부딪혀보고 체득하며 ‘이 일이 정말 내게 맞는지’ 빠르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힘들어도 일이 보람차고 재밌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다행히 원하는 광고 프로덕션 회사에 취직해, 2D 영상의 CG와 합성 업무를 담당하는 영상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지만 입사한 지 단 일주일 만에, 며칠 밤을 새우는 철야 작업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가 광고 프로덕션의 혹독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첫 번째 순간이었다.




내가 첫 직장에서 좌절을 느끼던 순간들


입사 몇 주차이지만 자그마한 실수조차 절대 용서되지 않았던 작업 환경

화가 나면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으며 내게 소리를 지르던 실장님

실장님의 폭언이 쏟아지고 나면, 3층에서 1층까지 달려와 나를 위로해주던 동료들

나조차도 당일 퇴근 시간을 알 수 없던 나날들

팀끼리 함께 식사를 마친 후, 남은 점심시간 동안 회사 근처를 걸으며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

금요일 저녁 8시에 미팅을 하고, 월요일 아침 9시까지 작업물을 넘겨야 했던 작업 일정

그렇게 아무리 빡세게 일해도 보람을 느낄 수 없었던 합성 작업의 연속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허무하게 만든 것은, 실장님의 폭언을 견디고 밤을 지새워 만든 최종 결과물에서조차 내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합성 작업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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