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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길이 보이지 않는 결과물에 좌절하다.

뼛속까지 스타트업인의 커리어 테스트 여정기 (2)

by 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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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허무하게 만든 것은, 실장님의 폭언을 견디고 밤을 지새워 만든 최종 결과물에서조차 내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합성 작업의 현실이었다.




CG 합성과 그 속의 성찰


다른 업무와 다르게, CG와 합성 작업은 '티가 안 날수록 일을 잘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Youtube : SFFILMSCHOOL


위 사진처럼 배경 자체를 합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TVCF 속 합성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아래와 같다.


Quiz ) 어떤 게 바뀌었는지 찾아보세요 ...


- 컷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그래픽 합성(파티클, 오브제 합성 등)을 해야하는 경우

- 저작권 문제로 액자나 전광판 속 이미지 또는 영상을 다른 걸로 대체해야는 경우

- 씬에 걸리적 거리는 부분(흔적, 오점 등)을 지워서 깔끔하게 만들어야 하는 경우 등
(이런 Clear 작업도 합성 작업의 일부분이다. 영상 속 불필요한 부분을 누끼 따서 다른 그림으로 대체해야 하기 때문!)




나의 흔적을 찾아서..


2D Flame 부서에서는 “어? 이게 합성이었다고?” 할 정도로 정교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최종 결과물에서 내 기여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람보다는 허탈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모션그래픽 작업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기획 의도를 담아낼 수 있다. “이 컷에 이런 디자인과 모션을 넣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성 작업은 정반대다. 클라이언트의 요청대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티 나지 않게 작업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물론, 예쁜 그림을 볼 줄 아는 눈과 적절한 소스를 찾아내는 감각이 필요하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들도 영상의 완성도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내가 작업한 TV CF 광고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면, “이거 내가 한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부모님께 결과물을 보여주며 내가 손댄 부분을 설명하는 데 20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저기 반짝이는 부분 보이죠? 원래 없었는데 제가 추가한 거예요.”

“주인공이 스키 타고 내려오는 장면, 원래 눈 위에 드론 그림자가 있었는데 제가 지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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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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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오, 그렇구나” 혹은 “촬영이 진짜 멋지게 잘됐네”라는 말이었다. 내가 한 작업이 얼마나 정교하고 까다로운 것이었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보는 사람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영상 후반 작업에서는 완성도만이 눈에 띌 뿐, 내 기여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버린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보이지 않는 흔적, 그러나 분명한 깨달음


이 과정에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내 기여가 명확히 드러나는 일이 내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들인 공이 결과물에 분명히 반영될 때 비로소 진정한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하나는, 작업자가 느끼는 심리적 보람과 자부심의 가치다.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자신이 쏟은 노력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보람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는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창작과 관련된 작업에서는 더욱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이라 해도, 내 작은 흔적들이 언젠가 더 큰 의미로 평가받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 것. 그리고 그 기다림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일에 대한 재미와 열정, 그리고 사랑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업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부족했다. 정말 작은 디테일을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이 업을 존경하지만, 내게는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인지한 순간, 내 안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럼 나는 이 일이 아니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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