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럼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싶은건데?

뼛속까지 스타트업인의 커리어 테스트 여정기 (3)

by 해리

좋아서 시작했는데 '왜' 안 맞는걸까?


'분명 영상이 좋아서 영상 일을 시작했는데.. 이 일이 안 맞는 것 같다고? 그럼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데?'


이 질문은 꽤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럼 난 지금까지 영상 만드는 걸 왜 좋아했을까?'



#1.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진짜 좋아했던 건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영상 속에 "누군가에게 기쁨, 위로, 공감을 주기 위해 나의 메시지를 담는 일"이 더 재밌고 좋았던 거다. 생일 때마다 지인들에게 영상 편지를 만들어 선물했던 이유도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게 좋아서가 아니었다. 영상 속에 내 마음을 담아 전하는 과정이 좋았고, 그 영상을 보고 감동받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즐거웠다.


#2. 영상 아카데미에서 밤을 새우며 포트폴리오를 만들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는 촬영과 편집이 더 재미있다고 했고, 또 누구는 모션그래픽을 만드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브이로그를 찍든, 2D 모션그래픽을 만들든, 3D 모션그래픽을 만들든, 그 자체가 다 좋았다. "어떤 포맷의 영상을 더 잘 만드는가?"도 물론 중요했지만, "이 영상에 어떤 키메시지를 담고 싶은가?"가 내게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어떤 비주얼이 가장 어울릴까?"를 고민하며 영상을 만들곤 했다.


브이로그에는 브이로그에 어울리는 메시지가, 모션그래픽에는 그에 맞는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다. 각 영상에 적합한 메시지를 고민하고 담아내는 과정이 내게 더 의미있었던 거다. 결국 내가 가진 하드 스킬을 활용해 영상을 만든다는 건, 그저 나의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자 과정이었던 게 아닐까?




작업자가 아닌 기획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


프로덕션에서 합성 일을 할 때 내 역할은 누군가가 기획한 카피에 맞춰 한 컷의 레이아웃과 그림을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앞서 말했듯, 그 카피와 메시지 자체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주어진 작업을 수행하는 '작업자'가 아니라, 메시지를 기획하고 그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기획자'에 더 가까운 일을 하고 싶었던 거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평생 전문적으로 할 자신이 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왔다. 영상 디자이너라는 직무는 애초에 타고난 재능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다. 그런데 비전공자인 내가 그 재능러들과 경쟁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을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있진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실패한 가설, 이대로 내 커리어는 실패일까?


결국 첫 직장을 퇴사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오래도록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나의 첫 번째 가설은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면 이대로 내 커리어도 실패인 걸까? ..


아니다. 이 가설의 실패를 단순한 좌절로 놔두기엔 너무 아까웠다..!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준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한 일이 보람이나 성취로 이어지려면, 그 결과물에 내 기여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
재능이 중요한 직업에서는 열정만으로 버티는 게 쉽지 않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 열정마저 남들보다 부족하다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게 답일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건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만의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






다음 이야기

그렇다면, 영상을 만들던 나는 어떻게 마케터로 방향을 틀게 되었을까? 내가 좋아했던 '메시지 전달'이라는 본질을 어떻게 살렸는지, 어떤 계기가 나를 마케팅의 길로 이끌었는지, 그 과정이 과연 순탄했을지 (^^)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본격 마케터로 핸들을 꺾게 된 이야기, 다음 편에서 To be continued...



keyword
이전 02화내 손길이 보이지 않는 결과물에 좌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