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로 입사한 첫 번째 회사, 해리는 왜 1년 만에 이직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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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나는, 가장 마음이 끌리는 회사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첫 출발지는, 자사 PB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 이커머스 스타트업이었다. 여러 회사 중 이곳을 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가파른 매출 성장, 유연한 조직 문화, 그리고 헬스케어부터 뷰티,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 겉으로 보기엔 ‘경험’을 얻기엔 완벽한 환경처럼 보였다.
IT 쪽이나 다른 도메인에서는 1~5인이하 마케터 체제가 생각보다 흔하지만, 이커머스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들은 마케팅팀 규모가 꽤 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할 일도, 다루는 유통 채널도, 손이 필요한 일도 너무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콘텐츠 마케터로 입사했지만, 실제로는 콘텐츠 마케팅부터 퍼포먼스, 인플루언서, CRM까지 A to Z를 두루 맡았다. 제품 기획은 별도 기획팀의 몫이었지만, 고객이 제품을 마주하는 모든 접점 — 광고, 상세페이지, 유통 채널까지 — 내 손을 얕게라도 거쳐간 듯 하다. 콘텐츠 마케터라기보단 ‘마케팅 실행자’에 가까운 역할이지 않았나 싶다.
입사 전 내가 기대했던 콘텐츠 마케팅은 이렇다.
: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오가닉 콘텐츠를 기획하고, 임팩트 있는 캠페인을 운영하는 일."
입사 후 마주한 '콘텐츠 마케팅'의 현실은 이렇다..
: "하루종일 죽어라 광고 소재만 만드는 콘텐츠 공장"
물론, 얻은 것도 많았다.
하나의 제품에서 다양한 소구점을 뽑아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매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내가 만든 콘텐츠의 성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데이터로 말하는’ 감각을 익혔다.
무엇보다, ‘후킹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깨달은 건, 결국 전환을 만드는 콘텐츠의 핵심은 ‘후킹’이 아니라, 콘텐츠 안에 담긴 ‘문제 해결 메시지’라는 것이었다.
전환을 유도하는 콘텐츠 구조는 의외로 단순하다.
타겟의 문제를 영상 초반에 명확하게 제시하고,
우리의 제품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지를 설득하는 플로우
이 구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전환이 일어나는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 있는 소구와 과장된 소구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 되는 것도 된다고 말해야 하는 업무 환경’은 나에게 마케팅이 아니라 일종의 '소비자 기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 이커머스 브랜드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걸 고민 중이라면, 아래 두 가지는 꼭 확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1. 입사 전에 그 브랜드의 콘텐츠 결 미리 살펴보고 가기
Meta 광고 라이브러리나 TikTok 크리에이티브 센터와 같이 광고 레퍼런스를 볼 수 있는 사이트를 활용해, 그 브랜드가 실제로 어떤 광고를 만들고 있는지 꼭 확인해보는 걸 추천한다. 요즘은 과장되거나 오해를 유도하는 광고가 줄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그런 방식의 콘텐츠를 만드는 브랜드도 많다. 만약 그 회사가 그런 광고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면, 내 포트폴리오 역시 결국 그 톤에 맞춰 쌓이게 된다.
2. 채용공고의 '주요 업무' 란도 꼼꼼히 보기
콘텐츠 마케팅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페이드 콘텐츠 제작 : Meta, Naver, TikTok 등 광고 채널 중심. 목적은 '전환'
- 오가닉 콘텐츠 제작 : 브랜드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SNS 채널 중심. 목적은 '유입'과 '브랜딩'. (장기적 관점의 전환을 지향)
거의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단기 성과, 즉 ‘전환’을 목표로 한 콘텐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브랜드의 성장 단계나 전략에 따라, 장기적인 브랜딩 콘텐츠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즉, 단기 성과 중심의 환경인지, 아니면 장기 전략이 중요한 환경인지에 따라 내가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의 결도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콘텐츠 마케터로서 ‘제대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고, 그러면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결핍들이 있었다.
후킹성 광고 소재만 반복 제작하다 보니, 내가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의 폭이 좁아지는 게 싫었다. 포트폴리오는 쌓일 수 있겠지만, 자랑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시니어가 없는 팀 : 경력이 2년 이상인 선배 마케터가 없어서 조언을 구할 수 없었다.
페이드 콘텐츠 의존 : 오가닉 콘텐츠 경험은 쌓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매번 똑같은 광고 소재 제작만 반복하는 환경이었다.
결국, 이 환경에서 콘텐츠 마케터로서의 ‘미래’를 그리기 어려웠다.
내가 있었던 곳은 빠르게 실무를 익히고 성장하기엔 좋은 훈련장이었지만, 동시에 '무엇을 위해 콘텐츠를 만드는가'에 대해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