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 인생을 세 단어로 말하다.

저를 꾸밈없이 소개합니다.

by 해리


누군가가 내 인생을
쭉- 한 번 읊어달라고 하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왠지 #공감 #사랑 #성장 이렇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이야기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 가지 키워드가 '나'와 '내가 살아온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키워드같아서.




공감

#1.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으면 거절을 잘 못했다. 단순히 "싫다"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소심한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그들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사람들의 입장은 오죽했을까 싶어서, 늘 그 요청을 다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그 마음 하나하나를 모두 챙기다보면, 어느새 내 에너지와 마음은 텅 비어버리곤 했다. 학창시절, 공감이란 나에게 가장 큰 강점이자 가장 큰 약점이었고,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그 에너지가 커질 수록, 정작 나를 위한 자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2. 중학교 3학년 때, 둘도 없는 단짝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 어제까지 나에게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던 친구였는데, 다음 날 아침 다른 친구에게 내 뒷담을 하고있는 그 친구를 보게 됐을 때 심정이란.. 정말 혼란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혹시 내가 그 친구를 불편하게 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모든 걸 들어주기만 해서 질려버린 걸까?' 그 때의 나는 그 원인을 자꾸 나 자신에게서 찾으며 끝없이 괴로워했다. 그때 내가 가진 "공감능력"이 마치 양날의 검처럼 느껴졌다.


사람들과 어떤 해프닝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한참동안 내 안에 가둬놓고 몇 번이고 곱씹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늘 전자였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주는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던 적도 많았지만, 정작 '나'를 먼저 챙기지 않고 '남'을 챙긴다는 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채워주려 해도, 나 자신이 비어 있는 한 끝내 공허할 뿐이었다.




#3. 다행히 지금은 '남'보다 '나'의 마음을 먼저 공감할 줄 아는 내가 된 것 같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라고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엄마와의 대화였다. 내가 고민을 늘어놓을 때마다 엄마는 "그래서 그 말을 들은 너는 기분이 어땠어?", "너는 진짜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어?"라며 내 감정과 생각을 물어보셨다. 단순히 "정말 속상했겠다"라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공감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다음번에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조언과 함께 내가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엄마의 그 응원과 조언 덕분에 나는 내 마음을 살피고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이제는 '나'를 챙기면서도 남을 보듬을 수 있는 내가 꽤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사랑

#1.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주머니에 먹을 것을 잔뜩 넣어다녔다고 하셨다. 정작 입이 짧았던 나는 몇 개 먹지도 않고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다 나눠줬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그 나눔 속에서 사랑을 느끼는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이상형도 늘 "다정다감하고, 세심하게 잘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한 때는 내가 나눠준 만큼 받지 못하면 서운함을 느끼곤 했다. 나에게 나눔은 곧 사랑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각자의 방식과 에너지로 표현되며, 내가 느끼는 사랑의 온도가 낮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가끔 생각지 못한 사랑을 받게 되는 순간엔, 그 사랑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기에 더 감사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사랑을 "돌려받고 싶은 기대치"보다는, 그냥 "나의 여유와 진심을 나누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남에게 나눠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고, 그런 태도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나 자신이 꽤 마음에 든다.




#2. 2023년 즈음, 우연히 이너퍼스널컬러 상담을 무료로 받으러 간 적이 있다. 일종의 심리 상담 같은 거였는데, MBTI 검사와 비슷한 유형으로 내면을 더 깊게 탐구하는 상담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내 인생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그래프로 정리해보고, 당시 내 감정을 (+)와 (-)로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 때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다.


"해리님이 정리해주신 그래프에는 거의 대부분 인간관계로 생긴 이벤트들밖에 없네요? 해리님이 왜 본인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때 내가 적었던 사건들은 대충 이렇다.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던 일

중학교 시절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던 일

고등학교 시절 소심했던 성격을 180도 바꿔준 지금의 친구들을 만난 일

대학교 시절 난생 처음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봤던 일

좋아했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던 일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시절 영어를 잘해서 고등반으로 일찍 진급했던 일" 같은 사건도 있었는데, 내가 적은 리스트에는 왜 저런 인간관계 사건들만 가득했을까. 참 묘하다. 난 그저 쭉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을 뿐인데. 수많은 인연에 상처받고, 또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 온 나를 정말 안아주고 싶다.





성장

#1. 나는 나의 성장에 관심이 많다. 특히 마케터로서의 성장에. 마케터로서 내가 바라는 성장의 방향성은 "배움을 멀리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도전을 두려워하는 순간 바로 도태될 수 있는 요즘같은 시대엔, 그저 "트렌드에 예민한 마케터"로 성장하기보다는, "익숙한 것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즐길 줄 아는 마케터"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2. 하이아웃풋클럽 19기 활동을 함께 했던 어느 멤버분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해리님은 내적 동기가 강해서 잘 성장하실 수 있을 거다."라고. 내가 성장에 대한 내적 동기가 강한 이유는 "호기심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지는 만큼 눈에 보이고, 눈에 보이는 만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했던가.

마케터로서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막막한 순간도 있다. 혹은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해내나 자책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내가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보니까 더 많은 게 보이는 거야. 이런 불편함도 결국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그리고 최근에 깨달았다. 그 불편함은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신호라는 것을.




#3.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몰입하고 탐구하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한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경험"이 곧 나의 관심도와 능력을 증명하는 시대가 됐다. 심지어 취향조차도 깊이 디깅해야만 할 것 같은 시대더라. 늘 배움도, 취미도, 인간관계도 "넓고 얕게" 해왔던 나에게는 치명적인 조건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나도 "콘텐츠 마케팅" 이라는 깊이 탐구하고 싶은 분야가 생겼으니 괜찮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만의 속도로, 즐기면서, 꾸준히 탐구하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