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에 만난 세잔느 - 비엔나 야경

키다리 아저씨가 된 밤 – 비엔나 야경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가 커피의 메카가 된 배경에는 썰이 분분하다.


그 중 하나는 비엔나를 침공한 오스만 투르크군이 퇴각할 때 성문 밖에 두고 간 온갖 보급품들 중에 커피콩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 시꺼먼 콩이 뭔지 몰라 처음에는 그냥 먹어봤다. 고약한 쓴맛에 손사래를 치며 다른 쓸모없는 물건과 함께 불태우자 갑자기 온 도시가 향긋한 커피향으로 가득찼다. 그러자 그 냄새를 맡고 커피가 뭔지 아는 사람이 나타나 남은 콩부대를 인수하여 비엔나에 카페를 차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꼭 그래서 비엔나가 커피의 수도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커피에 맛들인 투르크 군이 전쟁터까지 커피콩을 들고 다니다 콩부대를 놓고 도망간 도시가 어디 비엔나 한 곳 뿐이었겠는가. 그런 수많은 도시들 중에 콕짚어 비엔나가 커피의 수도가 된 이유는 커피를 마시는 일은 당대의 귀족과 예술가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데에 무척 잘 어울리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당시 중부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합스부르크의 본진이었던 비엔나였다. 즉 비엔나는 중부 유럽에서 커피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은 곳이었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중국을 통해 들어온 차가 같은 역할을 했다. 서부 유럽의 중심지인 파리는 반대로 투르크군에 포위를 당할만한 지리적 여건은 아니었는지라 커피만큼은 비엔나에 양보해야 했다.


좀 뜬금없긴 하지만 나는 이런 영국의 차나 비엔나의 커피를 볼 때마다 한국의 초장과 회가 떠오른다. 회를 초장에 찍어먹다보면 꼭 듣는 소리가 있다. 회 본연의 맛을 못느낀다고 말이다. 고추냉이를 살짝 묻혀 간장에 찍어 먹어야 회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면서 초장에 찍어먹는 것은 비싼 회 맛도 모르는 초딩스러운 입맛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그걸 마셔보겠다고 전쟁까지 불사했던 그 귀하디 귀한 차와 아랍을 통해 어렵게 들여온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듬뿍 치는 것은 어떤가? 그것도 모자라 계피가루에 온갖 향신료까지 뿌려먹는데 말이다.


차의 본고장인 중국이나 일본의 차문화는 모두 차를 깊이 우려낸 본연의 맛을 느끼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 한술 더떠 오감을 동원해 차의 미세한 맛의 차이까지 즐긴다는 다도까지 등장해 차 본연의 맛을 즐기겠다며 차사발에도 목숨을 걸지 않는가. 커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차와 커피에 우유랑 설탕을 듬뿍 넣고 것도 모자라 계피가루까지 뿌려 생크림을 얹어 먹는 것은 광어를 초장에 찍어먹는 행위보다 더 무식하고 초딩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화적 행위는 행위 자체보다 누가 그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우열이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본토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세심하게 온도를 맞춰가며 혀 끝으로 맛을 음미하는 비싼 차가 지구를 반바퀴 돌아 영국왕실에 선을 보였다. 하지만 영국의 여왕과 귀족들은 이 낯선 잎사귀를 우린 물이 쓰기만 했다. 그래서 우유를 듬뿍 넣고 설탕을 타서 휘휘져어 마셨다.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영국 여왕이 하자 그 차는 로열밀크티라는 우아한 명칭을 부여받았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서울과 강릉의 카페에서는 산지에 따라 맛이 다 다른 이 커피를 정성껏 ‘핸드드립’을 해서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혀끝으로 즐긴다. 반면 당시 비엔나에서는 마시면 정신을 영롱하게 해주지만 맛대가리없이 쓰기만 한 이 음료에 로열밀크티를 본따 우유와 설탕을 넣었다.


개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 휘핑크림과 계피가루까지 쳐발쳐발해 커피 본연의 맛은 온데간데없이 달착지근하게만 만들어 마신 사람들도 있었다. 이 근본없는 음료는 곧 아인슈페너라는 우아한 이름을 달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농담이지만 일본에서 수입한 날생선에 한국에서 수입한 들큰한 초장을 찍어먹는 것을 프랑스 사람들이 처음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날 생선의 비릿함을 고추소스의 맛으로 잡아주면서 달달한 맛으로 마무리 짓는 바다와 육지의 환상적인 마리아주, 이 땅의 많은 쉐프들 사이에서 이런 시식평이 난무하지 않았을까?


아프리카의 커피는 지리적 여건 상 아랍을 통해 유럽으로 전달되었다. 중세 이전부터 아랍과 유럽 본토 사이의 접점 역할을 하며 비엔나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커피를 접해왔던 이탈리아에서는 철저하게 커피 본연의 맛에 집중한 에스프레소가 발달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커피는 식사를 마치고 화창한 야외에 나가기 전에 입가심 삼아 한입에 휙 털어넣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카페에서 ‘아아’를 주문했다가 푸대접받았다는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비엔나에서는 추운 겨울날 따뜻한 난로가에 둘러앉아 취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홀짝홀짝 마실 음료가 필요했다. 그러니 선 채로 한잔 들이키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바와 달리 큰 잔에 담긴 달달한 커피맛 음료와 함께 간식까지 즐기는 카페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비엔나에 가면 이 당시 카페 상당수가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에야 여행객들만 득실거리는 관광지이지만 당시의 실내장식이 그대로 남아있어 리즈시절 비엔나의 벨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분위기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만나볼 수 있다.


나는 마침 동유럽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일전에 출간한 ‘투자자가 된 인문학도’를 ‘부의 패턴’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쓰는 작업을 비엔나의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마무리한 적이 있다. 그런데 19세기부터 내려오는 소위 비엔나 3대 카페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눈치가 보여 길게 쓰지 못했다.


마침 그 책의 전반부는 1,2차 산업혁명의 배경을 유럽의 역사와 언어학에서 찾는 내용인지라 (후반부는 3차와 4차 산업혁명을 전망했다) 높은 천정에 아르누보 양식으로 꾸며진 비엔나의 유서깊은 카페들은 이 작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자리 나기만을 기다리며 줄을 길게 서있는 관광객들 앞에서 아인슈페너 한잔에 조각케익 하나 시켜놓고 몇 시간씩 앉아 글을 쓰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결국 개정증보판 작업은 이런 3대 카페가 아닌 비엔나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작은 카페들을 호핑하며 마무리지었다.


때마침 비엔나의 소위 3대 카페 중 하나인 카페 센트럴 인근을 지날 때였다. 워낙 유명한 카페인지라 들어가서 커피 한잔 하고 싶었지만 관광객 틈에 혼자 앉아 커피 한잔 원샷하고 나오기도 그렇고, 노트북 꺼내 이거저거 긁적이기도 눈치보여 갈까 말까 망설이던 차에 여행객들이 동행을 찾는 유랑 사이트에 지금 바로 카페 센트럴 동행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어느 여행객이 혼자 센트럴에 줄을 서고 있는데 혹시 오실 분 있느냐는 글이었다. 이게 왠 우연인가 싶어 바로 리플을 날리고 센트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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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Café Central의 현재와 과거, Café Central 홈페이지


첫인상은 약간 실망한 눈치였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혼자 유럽을 여행 중인 여대생이 비엔나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낯선 남자를 기다린다. 주목적은 그게 아닐지언정 약간의 기대감이라는게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데 떡하니 아저씨가 한 명 나타났다. 그렇다고 서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이러저러한 동행을 만나게 되고, 혼자 있고는 싶지 않은 순간에 잠시 말동무가 생기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초면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다보니 미대에 다니신다고 했다. 십대 시절이지만 한 때 매주 두번씩 화실에 출근해 그림을 그리던 기억은 있는지라 갑자기 공통의 화제가 생겨 유럽 미술관 썰들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이 분이 그림을 그리다보니 미술사에 관심이 생겨 사학과로 전과를 고민 중이란다. 앞서 말했지만 마침 유럽 중세사부터 시작하는 책 한권을 마무리 짓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 참에 비엔나의 카페에서 유럽역사에 꽂힌 미술학도를 만나다니, 엘에이 시절이 궁금한 야구팬을 만난 박찬호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갑자기 방언이 터졌다고 하면 과장이고 대화가 재미있게 흘러가긴 했다.


예상치 않게 대화가 길어지며 두어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 덧 저녁일정 –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 새로운 동행은 그날 야간 개장을 하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간다고 했다. 내가 마침 카페에 오기 전에 들렀다 온 곳이다. 나는 다음 날 체코로 떠나니 또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오페라가 끝난 후 그냥 숙소에 들어가 자는 것 보다 비엔나의 마지막 밤을 술 한잔 하며 보내는 것도 좋은지라 가볍게 물어보았다.


“미술관 갔다가 저녁에 맥주 한잔 할래요?”


싫다면 적당한 핑계로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행자들끼리 부담스러운 자리를 예절바르게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다. ‘아 죄송해요 숙소에서 만난 분들이랑 선약이 있어서’, 한마디면 끝이다.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분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어, 저는 좋아요.”


그냥 가긴 아쉬웠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이런 엣지있는 장소에서 처음 본 아저씨랑 본인의 관심사에 대해 두어시간 떠드는 것이 지루하지는 않았나 보다. 계산서가 나왔고, 당연하게 반씩 나누어 냈다. 내 기억에 25유로 정도 나왔던 것 같다. 새로운 동행이 12유로를 맞추기 위해 동전을 찾는 동안 계산서 쟁반에 카드를 올려두고 ‘십유로만 주세요’라고 했다. 순간 표정이 또 환해진다.


나이들고 혼자 여행하며 이래저래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몸에 밴 습관이다. 알바로 돈을 모으거나 부모님께 용돈받아 여행하는 학생들은 여행기간이 길어질 수록 내가 대학생 때 그랬듯이 잔돈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휴가내고 노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월급미터 올라가는 우리같은 아저씨들에게야 큰 의미없는 돈 아닌가. 초면에 밥을 사겠다면 서로 부담이지만 그냥 내가 몇천원 더 내버리면 계산도 빨리 끝나고 분위기도 좋아지고 서로 윈윈인 셈이다.


저녁시간을 기약하고 혼자 비엔나 오페라하우스에 도착해서는 시간도 남은 김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곳에 처음 왔던 대학생 때는 정말 멋진 도시로 보였는네 지금은 그냥 쓸쓸한 도시 느낌이었다.


내가 그 동안 좋은 것을 많이 본 탓인지 오스트리아가 쇠락한 때문인지는 잘모르겠다. 옆동네 프라하는 예전보다 지금이 더 좋아보이긴 하는데 내가 동유럽을 처음 찾았던 당시는 동구권 몰락 직후인지라 공평한 비교는 아닐 듯 싶다.


90년대에 비하면 지금의 비엔나는 예전의 감동은 조금 덜하고 어딘지 모르게 활력이 없는 도시로 보여졌다. ‘비엔나 신년음악회는 여전히 내 버켓리스트에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무렵 새로 만난 동행에게 카톡이 왔다.


“저 미술관에서 쫓겨났어요."

“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오늘 야간개장이 아니래요."


맞다. 비엔나에는 대표적인 미술관이 두 개가 있다. 지금 동행이 가있는 미술사 박물관과 클림트 콜렉션으로 유명한 벨베데레 궁전의 미술관이다. 두 미술관은 일주일에 한번씩 서로 다른 날 야간 개장을 하는데 오늘은 벨베데레가 야간개장을 하는 날이었다. 먼저 벨베데레를 다녀온 나도 오늘 미술사 박물관이 야간개장이라는 말에 깜빡 헷갈렸다.


“보다 말고 나와서 내일 또 가야해요. 7유로 그냥 날렸네요."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미술사 박물관은 조금 짧게 본 셈 치고 지나가겠지만 미술사를 전공하려는 미대생 아니신가. 돈을 두 번 내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보다 말고 그냥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 뭐해요?"

“그냥 강가에서 석양보고 있어요."


여기서 잘 생각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관심사가 비슷했던 아저씨가 취해야 할 행동은?

‘이를 어째 내가 다 아깝네 (공감), 그럼 쉬다가 이따 봐요.’


이게 정답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카페에서의 즐거운 대화, 오페라 하우스까지 이어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잠시 휴대폰을 넣어두고 주변의 암표상을 찾았다.


사실 나는 아직도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의 시스템이 잘 이해가 안간다. 이 사람들은 제대로 만든 배너와 복장까지 갖추고 있어 얼핏 봐서는 암표상이라기보다는 오페라 하우스의 매표소 직원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활동하니 암표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리셀러라고 봐야 할까.


유럽 대부분의 국립극장들과 마찬가지로 비엔나 국립극장의 티켓값은 돈을 내는 내가 봐도 말도 안되게 저렴하다. 물론 관광객이 그날 와서 표를 사려고 하면 당연히 매진이다. 이미 예전에 팔려간 것이다.


현지인들이야 보고 싶은 공연을 연초에 예매를 했겠지만 갑자기 찾아온 관광객들은 오페라 하우스 주변의 암표상-리셀러나 온라인 리셀러를 통해 구입을 해야 한다. 체감상 이 가격이 적당한 가격으로 느껴진다. 그래봐야 몇 만원 선이니까. 그렇게 리셀러에게 표를 산 가격은 삼만원 정도였다. 표를 사고 다시 카톡을 보냈다.


“오페라 조금 있으면 시작인데 보러 와요."


메시지 확인 후 잠시 시간이 흘렀다.


“저…표 값이 얼마에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학생이 당연히 이것부터 물어보겠지.


“표 샀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그냥 와요."


메시지 확인과 동시에 답이 왔다.


“진짜요? 정말 그래도 되요?"

“오페라 하우스 정문으로 오세요."


가끔은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비엔나까지 와서 혼자 오페라 하우스 로비를 서성이는 것보다 돈 삼만원 들여 키다리 아저씨가 되는 것이 훨씬 기억에 오래 남는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어디 계세요?"

“중간층 라운지로 오세요."


암표상이건 리셀러건 따로 따로 표를 샀으니 같은 자리일 수는 없었다. 입장 후 헤어졌다 인터미션에 다시 만났다. 음악당에서 인터미션은 사교의 시간이다. 오페라 중간 쉬는 시간에 나와 지인들을 만나고 샴페인 한잔 하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인터미션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간다. 음악회에서의 사교가 접대문화의 일부인 선진국에서는 회사돈으로 비싼 오페라 티켓을 거래처에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블랙타이 차림에 부부동반으로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한 사람들은 전반 공연이 끝난 후 라운지에 모여 서로 인사를 하고 짧은 담소를 나눈다. 후반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면 즐거운 시간 되시라는 인사를 나누고는 주차장에서 마주쳐 뻘쭘하지 않게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각자 집으로 간다.


어차피 업무의 일환으로 온 것이고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가. 그래서 뉴욕이건 파리건 인터미션이 끝나면 제일 비싼 앞자리가 비는 경우가 왕왕 일어난다.


그러면 그 자리는 미리 이걸 알고 온 대학생들의 차지다. 제일 싼 좌석을 사서 온 이들은 인터미션 막판에 1층으로 가서 빈 자리에 앉는다. 물론 직원들도 이를 제지하지 않고 멀리서 기웃거리는 학생들에게 이사람들 집에 갔다고 손을 흔들며 불러주는 자상한 할머니들도 계신다.


이런 사람들의 수요가 있으니 인터미션에는 음악당들마다 라운지에서 칵테일과 간단한 다과를 판다. 그런데 이게 또 내 어린 시절 로망 중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 따라서 음악회를 가면 –부모님 지인들이 출연을 하시거나 혹은 따님들 공연인 – 역시나 음악회 시작 직전과 인터미션 시간은 주변 분들에게 인사드리는 사교의 시간이었다. 나이가 좀 찬 이후에는 뭔가 백화점 매대에 올려져서 떨이판매를 당한다는 기분이 드는 물물교환의 시간이기도 했다. 걸려있는 옷 말고 누워있는 옷말이다.


“어머, 아드님 더 멋있어지셨네요."

“어휴 더 늙기 전에 제발 아무나 와서 좀 데리고 갔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눈먼 처녀 없어요?"

“에이, 찾아보고 연락드릴께요. 호호호."


어려서부터 나도 인터미션에 칵테일이나 와인잔 들고 로비를 돌아다녀보고 싶었다. 폼나지 않은가? 그런데 알다시피 이게 바가지도 이만저만 바가지가 아니다. 부모님이 사주실리 만무했다. 그럴 때마다 꼭 듣는 말이 있다.


“비싸게 뭘 여기서 저런 걸 사먹어. 집에 가서 물 마셔."


참 사람 심리가 얄궂은 것이 어려서부터 저기선 사먹는거 아니라는 교육을 받고 나면 내 돈 내고 내가 사먹어도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안사먹게 된다는 것이다.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다. 기왕 키다리 아저씨가 된 거 놀라면 제대로 놀아야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금기를 이런 식으로 깨보는 것도 재미날 것 같았다.


턱시도와 끈다리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라운지에서 샴페인 두 잔을 사들고 기다렸다. 때맞추어 내려온 동행에게 나는 음악회 올 때 마다 늘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샴페인 잔을 건내고는 발코니로 향했다. 비엔나 야경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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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of Morning, 미디어파사드@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현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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