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우 국.경.박?"

[랜드마크 04] 국립경주박물관

by Harry Yang

경주와 박물관

넷플릭스에서 ‘케데헌(K-Pop Demon Hunters)’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만큼 많은 관람객이 찾는 곳이 되었고, 국중박 굿즈는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박물관에 이토록 대단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싶지만, 이는 환영할만한 일이긴 하다. 경주에도 유명한 박물관이 있다. 한 해에 200만 명가량이 찾는 곳이다. 2025년에는 ‘경주 APEC 정상회의’ 의전 공간으로 미국 대통령, 중국 주석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신라금관 재현품을 선물로 받으면서 또 한 번 크게 주목받았다. 이곳이 국립경주박물관(국경박)이다. 국중박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도 오래되었고, 소장품의 숫자며 박물관 규모도 크다. 경주를 들른다면 사실 박물관에서 최소 반나절, 가능하다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살펴보기를 권한다. 신라의 천 년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가장 대표적인 유물과 문화유산이 흘러넘치는 곳이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실 공간도 있어서 경주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마음 내킬 때마다 들러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총독부는 경주에서 유물이 많이 나오자 경주부 관아 건물에 전시공간을 만들어서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운영했다. 당시 ‘경주왕’이란 별명이 있던 일본인 모로가 히데오가 초대 관장(1926-1930)을 했는데, 그는 몇 년 후 자신의 집에서 출처가 분명치 않은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급속히 영향력을 잃고 몰락했다. 해방이 되자 바로 한국인들이 박물관을 맡아 제대로 운영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54년에는 박물관장 수묵 진홍섭 선생이 지역의 예술가이자 운동가였던 고청 윤경렬 선생과 함께 어린이 박물관학교를 열었다. 1975년에 현재의 위치에 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이 되었다. 신라역사관, 월지관, 특별전시관, 신라미술관, 수장고, 천년서고, 수묵당과 고청지가 있고, 성덕대왕신종이나 고선사지 삼층석탑 등 야외에 전시된 유물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본관인 신라역사관 전경 [사진제공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신라역사관

국경박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이 본관 건물은 경주 남산을 가리지 않도록 높이를 낮추었고, 황룡사 구 층 목탑의 상륜부를 비롯하여 삼국의 서로 다른 상징물을 적절히 조화를 시켜 삼한일통(三韓一統)의 의미를 반영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본관에는 총 4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제1 전시실은 신라의 초기 역사를 볼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 비파형 동검, 철제 무기와 갑옷 등이 있고, 국보인 토우 항아리가 눈에 들어온다. 제2 전시실에는 황남대총 부장품 일체와 금관, 금 장신구 등 주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이 많다. 신라의 가장 화려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제3 전시실에는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국보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가 있다. 제4 전시실은 국은 이양선 선생의 소장품을 별도로 전시하고 있는데, 국보 기마인물형 뿔잔이 있다. 2025년 11월 - 2026년 2월까지 성황리에 진행된 신라금관전으로 본관의 전시공간이 재배치되었는데, 그 이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새로운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과거에 비해 전시유물 숫자는 줄이는 대신 테마를 강조하기 위해 조명과 공간 배치를 바꾸는 등 전시기법이 고도화되고 있다.

전시실 내부(좌, [사진제공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중)와 '신라의 미소'(우)

국보만 해도 여러 점이라 대표적 유물을 중심에 두고 빨리 돌아보면 시간을 좀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여유롭게 안배해서 개인적 관심과 질문을 갖고 들여다보면 하루 종일 살펴봐도 모자랄 만큼 구석구석 볼 것이 많다. 각 유물이 발굴되던 시기의 상황이나 전후좌우의 에피소드까지 더해지면 배가 이 산, 저 산으로 하염없이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는 경주의 야마구치병원에서 공중의로 근무했던 다나카 도시노부(1905-1993)가 1933년 어간 골동품상에서 100원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경주공립보통학교 교사를 역임하고 경주 박물관 분관장(1934-1945)을 하던 오사카 긴타로(1887-1974)의 글을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 작품은 1972년 박일훈 경주박물관장이 오사카 긴타로를 통해 소장자를 접촉해 끈질긴 설득을 거쳐 기증받게 되었다. 그 기증서에는 “마음속에 감명을 주는 인면와를 제작한 와공을 생각하며, 신라땅에 안식처를 제공하고자 경주박물관장에게 증정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이런 숱한 사연이 있는 유물들이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성덕대왕신종과 고선사 탑

박물관 입구 쪽에서 바로 보이는 종루에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흔히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무게 18.9톤에 달하는 거대한 종이 달려있다. 성덕대왕(702-736)의 덕을 기려 그의 아들 경덕왕 대에 제작을 시작해서 손자 혜공왕 7년(771년)에 완성되었다. 높이 3.75m, 지름 2.27m, 두께는 11-25cm라고 한다. 원래는 북천변의 봉덕사에 걸려있다가 홍수 이후 하천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460년 영묘사에 걸었다가, 1506년 봉황대 인근의 종루에 걸어두고 시간에 맞춰 타종했다고 한다. 1915년에 경주부 관아 내부의 종각에 두었다가, 1975년에 현재의 박물관으로 옮겼다. 과거에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했는데, 2004년 이후로는 타종을 금하고 있다. 재현품이 봉황대 인근의 과거 종각 위치에 달려있어서 타종 및 관람이 가능하다.

1975년 성덕대왕신종을 박물관으로 이송하는 모습

성덕대왕신종은 현존하는 국내 최대 크기의 종들 중 하나이지만, 성덕왕 대에 황룡사에는 이것의 4배 크기인 동종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어린아이를 인신공양해서 종의 소리를 얻었다는 전설은 종의 성분 분석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순장 풍습을 지증왕 때 이미 없애버린 것을 감안하면 시기적으로도 인신공양이 허용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종의 웅장하고 깊은 소리에서 ‘에밀레(엄마)’를 연상하며 나온 전설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서양의 종과 달리 밖에서 종의 몸통을 쳐서 소리를 내는데, 종의 표면에 새긴 ‘날아다니는 천사(비천문)’ 도안과 연꽃 문양이 빼어나고, 소리가 빠져나가는 구조인 음통과 종을 달아놓은 고리인 용뉴의 모양도 독특하다. 종의 내력을 설명한 명문(銘文)에 “형상은 산이 솟은 듯하고 소리는 용의 소리 같았다. 위로는 유정천의 꼭대기까지 꿰뚫고 아래로는 무저갱의 밑바닥까지 통하였다. 그것을 본 자는 기이하다고 칭송하고 그것을 들은 자는 복을 받았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 깊은 소리는 비길 것이 없었다.

성덕대왕신종(좌)과 고선사지 삼층석탑(우, [사진제공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신라미술관 왼편, 그러니까 박물관의 동남쪽 구석에는 국보인 고선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원효가 주지로 있었다는 고선사 터가 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박물관으로 옮겨다 놓았다. 이 탑은 신라의 삼층석탑 발전의 초기에 해당하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석에 있다고 만만히 여길 수가 없는 것이 가까이 가보면 품위와 위엄이 압도하는 느낌을 받는다. 박물관 가운데 마당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 재현품을 대체해서 그 자리에 이 탑이 가야 한다는 논의가 오래되었는데, 조만간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의 야외에는 경주 일원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금 친숙해지면 다들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작품들이다.


신라미술관

여기에는 불상이 가득하다. 전시관을 들어서면 로비에 석굴암 본존불을 둘러 싸고 있는 부조의 실제 크기 재현품이 있다. 약 2.5m 높이로 십일면관음상, 제석천 등의 빼어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실 입구부터 이차돈 순교비, 인왕과 사천왕 등의 석불을 다양하게 볼 수 있고, 신라사람들이 몸에 지니거나 방에 두었을 것으로 보이는 소형 금동불, 산과 들의 폐사지에 서있던 석조 삼존불, 국보인 백률사 청동약사여래상 등을 만날 수 있다.

불상은 종교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겠지만, 나는 불상 그 자체가 주는 미감이 눈에 익으면서 자연스레 서로 다른 시기의 불상들을 비교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후대에 나타나는 중국이나 인도풍의 유행이 두드러지는 불상보다는, 얼굴 선이 투박하고, 3등신에 가까운 비례를 보여주는 초기 불상이 훨씬 정겹고 좋아 보인다. 가장 단단한 화강암을 깎아서 이렇게 부드러운 인상을 구현했나 싶을 정도로 온화하고, 때로는 해학적인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다.

1.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불(삼화령 아기부처), 2. 백률사금동약사여래입상, 3.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 4. 석조 반가사유상, 5. 인왕상 얼굴

금동불이나 청동불은 제작할 때 금이나 청동을 녹인 물을 틀에 부어서 만든다. 그래서 몸통 내부가 비어있다. 이런 불상의 뒷면에 서서 빈 공간을 들여다보노라면 부처는 ‘내면을 비운 존재’인가 싶어진다. 홀로 전시실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백률사약사여래상은 거의 등신대 크기인데, 훼손 없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에 우선 매료되지만, 불상을 360도 돌아가며 볼 때마다 뒤편에서만 보이는 텅 빈 내부가 눈길을 잡아채고야 만다. 그때마다 나는 저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비워야 한다’


이 전시관 2층은 여러 사찰의 기와 등을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1층에서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1.5층에 해당하는 휴게공간이 있는데, 이곳이 창밖으로 일몰을 보기엔 명당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석조로 된 반가사유상이 있다. 국중박에서 그 엄청난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사유의 방’ 주인공이 아마도 신라에서 유래하지 않았겠나 짐작하게 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월지관

안압지로 불렸던 동궁과 월지 지역의 발굴 유물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다양한 유물이 연못에 빠졌다가 뻘 속에 파묻혀서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못에 띄워놓고 놀던 나무배가 나왔고, 인공섬에서 키웠던 진기한 동물들의 뼈가 다수 발굴되었다. 그릇과 가위, 놀이기구였던 주령구 등 온갖 일상용품들이 발견되었다. 손가락 혹은 손바닥만 한 불상들도 다수 출토되었다. 불교 신앙이 집단적 의례로서 뿐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영위되던 시대였음이 읽힌다.


태자가 기거하던 동궁과 달이 아름다운 연못에서 나온 출토 유물은 고대 신라가 참으로 부유하고, 풍류에 진심인 나라였음을 웅변한다. 고급스러운 취향이 곳곳에 드러나고, 진귀한 물건을 수집하고, 정교하게 연출한 공간에서 즐길 줄 알았다. 사치와 향락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이 한편이라면, 다른 한편은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취향의 왕국이 우리 역사 어느 시절에 또 있었는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수장고 ‘신라천년보고’

경주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 종류나 규모에서 엄청나다. 수만 점의 수장품 중 전시된 것은 3,000여 점에 불과하다. 수장고는 유물들을 보관하고 관리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박물관의 기본적인 유물 발굴, 수집, 보존, 전시 관련 내용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고, 경주와 영남권의 여러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와 유물들을 가득 모아놓았다. 특히 토기를 많이 볼 수 있다. 지금은 점토로 만든 토기가 청자나 백자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겠으나, 고분마다 금장신구와 더불어 토기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그 시대의 부와 권력을 드러내는 최고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경주는 매우 양질의 토기를 생산했던 곳인데, 고온에서 아주 깔끔하게 구워낸 경질토기를 다수 볼 수 있고, 자연유 혹은 잿물유약을 바른 작품들, 이것이 발전해서 나온 녹유 등이 다양하게 출토된다. 이런 흐름은 거의 신라말에서 고려초 중국청자가 들어오기 직전에 고도로 발달해서 아마도 고려청자라는 혁신의 전 단계가 신라토기에서 이미 마련되어 있었지 않는가 짐작하게 한다. 신라시대와 그 이후에 경주 일대에는 도자기 가마가 상당수 존재했었는데, 다른 유적에 비해 가마터는 아직 덜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경주가 한국의 도자기 역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었으면 좋겠다.


특별전시관과 어린이박물관학교

신라역사관의 출구를 마주 보고 있는 특별전시관은 다양한 특별 전시로 연중 내내 붐빈다. 2023년에는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해서 그간 세 번밖에 일반 공개가 되지 않았던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 2점이 두 달간 전시되었다. 2025년에는 국중박에서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던 ‘고려청자 상형청자전’을 유치해서 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갔고, 가을에는 APEC 정상회의 시기에 맞추어 ‘신라금관전’을 열어 신라에서 출토된 총 6개의 금관이 100여 년만에 처음으로 한 자리에 전시되는 기획전이 열리기도 했다.(금관전은 비록 본관에서 진행되었지만, 그 내용으로 볼 때는 특별전시에 해당하는 행사였다.)


특별전시관 지하에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내용과 시설이 마련된 어린이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 경주박물관에는 1954년부터 당시 박물관장 수묵 진홍섭(1918-2010) 선생과 고청 윤경렬(1916-1999) 선생의 협력으로 시작된 ‘경주 어린이 박물관학교’의 역사가 이어진다. 이 학교를 거쳐간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경주지역과 전국적으로 역사와 문화를 아끼는 대중적 저변이 되었음은 지금도 지역 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차후에 고청 윤경렬 선생을 소개할 때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이런 연고로 박물관 내의 연못을 고청지(古靑池)로, 한옥 공간을 수묵당(樹黙堂)으로 이름 붙여 놓았다.


도서관 '신라천년서고'

원래 수장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도서관으로 꾸며서 2022년 말 개관했다. 건축상을 받기도 했고 사진이 멋지게 나온다고 찾는 사람이 많다. 한국사와 고고학 관련 자료를 잘 갖추어 놓았고, 특히 구하기 쉽지 않은 전국의 박물관에서 개최한 각종 전시회 도록과 자료들이 구비되어 있다. 이 분야 관심자라면 반길만한 공간이다. 종종 소소한 테마로 책을 전시하기도 한다. 내가 쓴 <낭만 경주>도 경주를 소개하는 대표적 책 중 한 권으로 꼽혀 전시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늘 각 잡고 가야 하는 심각한 공간이 아니라, 수시로 들고나며, 읽고 쉬는 공간으로 잘 활용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박물관의 구석구석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들어갈 수 있는 틈새들이 있다. 거기에 깃들 수 있는 것은 경주 사람만 누릴 수 있는 로컬의 특권이다. 국립박물관을 사사로이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 삼는 삶은 꽤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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