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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Dec 22. 2020

17년을 이어온 쇼가 할 수 있는 것

<그레이 아나토미>가 이번 시즌에서 코로나를 정면으로 다룬다.


2005년 시작해 2020년 현재 시즌 17을 이어가고 있는 <그레이 아나토미>. 사회 초년생에 ‘미드’ 햇병아리였던 나는 이 쇼를 통해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지고 있는 병원 인턴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 스페이스 니들과 스타벅스의 도시 시애틀에서 피부색도 눈동자 색도 다른 이들의 ‘막장’ 이야기를 보며 울고 짜고 웃었다. 어렸을 땐 이 쇼를 보고 환자를 위하는 의사들의 희생정신과 인류애가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의사들이 섹스를 저렇게 많이 하나, 싶기도 했다. 살면서 진짜 의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적어도 한국 의사들은 그렇지 않아 ‘쇼는 쇼구나’ 했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를 함께 했고, 이대로라면 사십 대에도 함께 할지 모르겠다. <빅뱅이론>이 그랬, 이젠 의리로 보는 미드다. 17년이다, 17년.


<그레이 아나토미>의 제작자인 숀다 라임스는 내 삶에 큰 영향을 줬다. 2005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위기의 주부들> 다음 타임 빈자리 땜빵으로 편성된 <그레이 아나토미>가 첫 시즌에 대박을 치고 ABC 간판 쇼가 되면서 숀다 라임스는 힘을 얻었다. 그녀는 그 힘을 케리 워싱턴, 비올라 데이비스 같은 흑인 여배우가 미국 공중파 쇼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썼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 중 <스캔들>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 같은 쇼를 보면서 미국에서 ‘흑인’ ‘여배우’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봤다. 나에게 그녀는 뛰어난 정치가다. ‘막장’ 요소로 사람들이 욕하면서 볼 수밖에 없는 드라마를 만드는데 재능을 써 시청률과 화제성을 높인다. 이 강해진 영향력으로 미국 사회의 인종,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이슈와 문제점을 드라마에 녹여낸다. 웬만한 정치인보다 낫다. 숀다 라임스는 대단한, 용기 있는, 그리고 재능 많은 흑인 여성이다.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 2005


<그레이 아나토미> 첫 시즌 출연한 인턴들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이 병원에 살아남은 이는 ‘그레이’뿐이다. 그레이는 인턴, 레지던트를 지나 명성 높은 의학상을 수상한 전문의 외과 과장에 병원 경영진이기도 하다. 17년 내내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이 쇼를 이끈 ‘그레이’ 역할의 엘런 폼페오는 서른 중반에 쇼를 시작해 이제 막 오십을 넘겼다.


17년. 미국 쇼 비즈니스의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느끼는 시간의 질감이다. 17년간 이어진 쇼에서 그레이는 비행기 사고도 당하고 물에도 빠지고 남편도 잃었다. 별의별 인생 고초를 다 겪으며 살아남았다. 그간 쇼의 다른 배우들 역시 죽어나갔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병원이 배경인 쇼라 누가 하나 갑자기 죽어도 숀다 라임스는 쿨하게 얘기했다. “그게 진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새로운 인턴과 새로운 환자들로 병원은, 그리고 쇼는 또다시 채워지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작년 16번째 시즌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른 시즌보다 에피소드가 줄었고, 이야기도 억지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미국 드라마들이 2020년 휴방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레이 아나토미>는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미국인만큼 의료진의 삶을 다뤄온 인기 드라마로서, 제작진은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 선 의료진에 건네는 위로의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와 전 세계가 사투를 벌이는 2020년, 올해 한국에서 제작되고 방영된 드라마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른 이야기에 몰두한다. 드라마의 역할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갑갑한 현실을 잊고 꿈꾸게 하는 거라는 인식이 여태 짙기 때문이다. 쇼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시즌의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나와야 한다는 건 <그레이 아나토미> 제작진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배우들과 제작진이 쇼에서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다루는 데에 합의하는 과정, 작가진과 현장 스태프들이 촌각을 다투며 일사불란하게 제작 환경을 만들어가며 방역 수칙까지 지켜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7


17번째 시즌 첫 에피소드부터 <그레이 아나토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수술실이 아닌 이상 배우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대화를 나눈다. 배우들은 마스크를 쓴 채 대사를 읊고 연기했다. 배우들의 딕션은 마스크로 뭉개지지 않게 더 정확해야 하고, 배우들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오직 눈이다. 이 쇼의 배경인 병원 역시 코로나19 환자로 가득하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며 교체할 마스크가 없어 썩어빠진 걸 쓰고도 병실로 돌아가는 의사들, 사회구조적 인종차별로 평소 의료 시스템에서 가장 소외된 흑인들이 기저질환을 갖게 되고 결국 코로나19 환자의 대부분이 되었다며 절규하는 흑인 의사, 코로나19로 병원에 와서도 중국인 의사는 싫다며 한국인 의사마저도 거부하는 백인 환자들, ‘훈련받지 못한 전쟁’인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치료 방법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환자를 잃어가는 의료진들의 절망이 고스란히 드라마에 담겼다. 특히 다섯 번째 에피소드 ‘Fight The Power’에서는 엔딩 크레딧에 코로나19로 사망한 미국인들의 이름이 올라갔다. 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자 <뉴욕타임스>가 그들의 이름으로 가득 채운 커버 기사처럼.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7, 에피소드 5 엔딩 크레딧


‘내가 이 팬데믹 현실을 드라마에서까지 보고 싶은 건가?’ 쇼 안에서 쇼 밖의 세상을 잊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쇼 안팎이 다르지 않고, 17년을 수련한 전문의들에게도 코로나19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도전이고 두려움이며, 우리 모두 역시 그렇다. 그레이는 환자를 돌보다 코로나19에 걸려 투병 중이고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 와중에도 삶은 계속된다. 쇼를 보면서 문득 지구 반대편 촬영 세트장을 생각해봤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어떤 마음으로, 또 얼마나 조심하며 살얼음판 걷듯 촬영하고 있을까. 지구 반대편 시애틀에서 일어나는 진짜도 아닌 쇼가 이상하게 위안을 준다. 17년을 이어온 TV 드라마 쇼가 주는 울림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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