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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Dec 28. 2020

젊고 재능 있고 아름다운 그대여, 뜨겁게 안녕!

채드윅 보스만의 유작, 넷플릭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2020)

감독│조지 C. 울프

원작│어거스트 윌슨

각본│루벤 산티아고 허드슨

배우│바이올라 데이비스, 채드윅 보스만, 글린 더먼, 콜맨 도밍고, 테일러 페이지, 조니 코인

배급│넷플릭스

개봉일│2020년 12월 18일

수상│46회 LA 비평가 협회상(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예고편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펜스(2016)> 이후 덴젤 워싱턴과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다시 만나며 화제가 됐다.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블루스의 어머니’로 미국 음악 역사에 기록은 되었으나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은 ‘마 레이니(Ma Rauney)’로 분했다. 지난 8월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대장암 투병 소식이 세상에 뒤늦게 알려진 채드윅 보스만의 유작이기도 하다.  


덴젤 워싱턴이 제작하고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펜스>는 퓰리처상을 받은 어거스트 윌슨이 쓴 동명의 희곡에서 출발했다. 이 영화를 통해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흑인으로서 7번째 아카데미 수상)를 거머쥐기도 했다. 이때 덴젤 워싱턴이 어거스트의 10편의 희곡을 영화화하기로 HBO와 계약했음을 알렸는데 리스트 중 하나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였다. 2019년 이 계약이 HBO에서 넷플릭스로 넘어갔고, 2020년 12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가 전 세계에 공개됐다. 46회 LA 비평가 협회상(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현재 진행 중이거나 예정인 다수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The Great Migration


1927년 시카고, 타들어갈 듯 찌는 한여름. 남부 멤피스의 유명 가수 마 레이니, ‘방금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블루스의 어머니’ ‘That Famous Ma!’, 그녀가 앨범 녹음을 위해 북부 시카고 파라마운트 녹음실로 향한다. 늘 함께하는 밴드 멤버들 역시 일찌감치 도착해 그녀를 기다린다.


‘The Great Migration’ 혹은 ‘The Black Migration’이라 불리는 시기는 미국 사회의 흑인들의 대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미국 산업화에 발맞춰 흑인들이 남부 농장지대를 떠나 북부 공업도시로 이동한 것.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짐 크로우 법에 의한 남부의 공공연한 흑인 차별은 여전히 만연했다. 남부의 그 잔혹함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 새로운 땅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6백만에 달하는 흑인들이 북부로 이동해 힙하고, 새롭고, 시끄러운 문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깨닫는다. 남부 목화밭에서 착취당하고 학대당하던 노예가 북부 공장 지대에서 착취당하고 차별당하는 임금 노동자가 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들이 정착할 곳은 오직 도시의 빈민가뿐이라는 것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뮤지컬이 아닌 뮤지션에 관한 드라마


어거스트 윌슨이 쓴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연극 연출이 감독을 맡은 작품답게 배우들이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사들이나 호흡이 긴 원테이크, 독백, 조명, 공간 이용 등 연극적 요소를 많이 살렸다. ‘흑인 대이동’의 시대, 미국 북부 시카고, 좁고 낡고 먼지 쌓인 대기실에 모인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의 이야기가 공간을 채운다. 뮤지션 제각각 다른 성격과 환경, 철학,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가슴 한편엔 ‘미국 사회의 흑인’으로서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이는 체념하고, 어떤 이는 절망하고, 어떤 이는 희망을 품고, 어떤 이는 갈망한다. ‘한정된 장소’라는 연극적 요소를 통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흑인들의 상황은 극대화된다.


1920년대 시카고, 원작 희곡의 배경은 겨울이었으나 감독은 영화의 배경을 여름으로 바꿨다. 너무 강한 시카고의 태양으로 하늘은 더 이상 파랗지 않고 하얗다. 도시의 콘크리트는 그 열을 흡수하지 않는다. 그 도시의 찌는 열에 땀으로 흥건한, 그리고 다 번진 눈 화장에 공허한 눈빛을 한 마 레이니, 그녀의 얼굴에 스치듯 잠깐이라도 미소를 볼 수 있을 때는 바로 그녀가 노래할 때뿐이다.


지하 연습실, 밴드 세션들이 마 레이니를 기다리고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곳, 레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밴드맨들은 ‘이건 내 음악이 아닌, 마 레이니의 음악이라며’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이들은 그저 오늘 하루 할 일(연주)하고 일당 챙겨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잘 보내면 감사하다. 이들은 계단을 올라 녹음실로 향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곳에서 ‘블루스의 어머니’ ‘천하의 까칠한 여장부’ 마 레이니도 멈출 수밖에 없다. 녹음실에선 프로듀서의 디렉팅 부스를 언제나 올려다봐야 한다. 그리고 그 부스엔 음악 산업의 권력을 가진 백인들이 있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존중을 요구했던 흑인 여자 뮤지션


미국의 흑인들은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 American)’이라 불린다. 아프리카, 그 거대한 대륙에 55개의 나라가 있는데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자신들이 아프리카 어디에서 왔는지, 자신들의 뿌리조차 알 수 없다. 노예상에 잡혀 미대륙으로 끌려와 당근, 콩, 감자 등을 수확하는 노예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냄비에 던져지고 끓여졌다. 그저 옆에 있기에 스튜에 이것저것 담아 끓였고, 한참 먹고 보니 여전히 그 스튜가 남았고, 그 스튜의 남은 찌꺼기가 바로 미국 사회의 흑인들이라는 영화 속 비유는 너무 정확해 가슴을 후빈다. 그런데 그 노래를 부르는 흑인 뮤지션의 표정이 너무 덤덤해 더 후빈다.


마 레이니는 안다. 산업화 시대 북부로 이주한 흑인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 즉 ‘인종 앨범’을 만들어 돈을 벌려는, 백인들이 경영하는 음반사의 꿍꿍이를. 당시 이러한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젊고 재능 있는 흑인 뮤지션들이 모여들며 미국 음악 시장은 황금기를 맞았다. 마 레이니가 앨범 녹음 후 손에 쥔 돈은 고작 200달러, 밴드맨들은 각각 25달러다. 그렇게 흑인들은 산업계뿐 아니라 문화계에서도 착취당했다. 이때 흑인 뮤지션들을 착취해 막대한 부를 쌓은 백인 중심의 음반사들은 현재 미국 음악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곳이 됐다.


자신의 음악엔 관심도 없는 백인 음반 관계자들이 그저 돈벌이를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면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온갖 짜증과 까탈을 부리며 그들에게 삿대질하고 눈을 내리깔지 않는 거였다. 녹음 내내 그녀는 ‘너희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나는 결국 그걸 내놓을 수밖에 없겠지만, 절대 호락호락 내놓지 않겠다’는 듯 행동한다. 마 레이니는 당당하게 자신을 향한 존중을 요구한다.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 레이니, 실제 역사에 남은 그녀의 사진은 8장뿐이라고 한다. 당시 그녀는 지나치게 당당했고,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과 멀었고, 오히려 남성적인 매력을 숨기지 않았고, 거북할 만큼 솔직했다. 한 마디로 ‘다루기 쉽지 않은 여자’였다. 그녀가 영화에서 자신이 가르쳤다 주장하는, 하지만 음반도 더 많이 팔리고 인기도 더 많았던 베시 스미스의 실제 사진은 수백 장이다. 대중은 심술궂고 깐깐하고 거친 마 레이니보다 ‘요조숙녀’ 같은 베시 스미스를 더 사랑했다. 그런 마 레이니를 연기하기 위해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이빨에 금을 박고 몸에 패드를 덧대고 공허한 눈빛을 더했다.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작품을 막론하고 더 이상 무의미하지만 그녀는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아름답고 멋진 흑인 여성’을 창조해 세상에 선보였다.


백인 경영 음반사가 원하는 건 돈이 되는 그녀의 목소리일 뿐, 자신을 존중하지도, 자신의 음악에 관심이나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아는 여자. 그런 현실을 너무 잘 알아서 불행한 여자, 마 레이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은 일시적이고 미약해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는 얇은 실오라기 같은 것이다. 그래서 베시 스미스 같은 흑인 블루스 싱어도, 레비 같은 음악성 있고 열정 있는 밴드맨도 모두 그녀에겐 위협이고 경계의 대상이다. 그녀는 삶이 너무, 피곤하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그런 이야기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투지에 불타 백인 프로듀서들에 굽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얼마나 피곤하고 지쳐있는지 느껴진다.


마 레이니의 실제 히트곡 중 하나인 ‘Black Bottom’ 녹음 씬은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뮤지션이 피부색 하나만으로 시카고의 피할 수 없는 여름날 태양처럼 운명에 치여 살아가면서도 음악이, 특히 블루스가 그녀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밴드맨들의 표정, 몸짓, 눈빛, 목소리, 심지어 눈썹의 가느다란 떨림에서까지 느낄 수 있다. 한 곡이면 충분하다.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Ma Rainey) 실제 사진





모든 것을 원망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열망하는 흑인 남자 뮤지션


트럼펫 연주자로 마 레이니의 밴드에 새로 들어온 멤버인 레비는 ‘흑인 대이동’ 시대 미국 북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젊은 흑인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남부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북부로 올라와 희망을 품었다. 자신이 직접 쓴 곡으로 음악 시장에 진출해 성공하려는 욕망도 있고, 그를 위해 백인 프로듀서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거짓 미소를 지어 보일 줄도 안다. 내기로 생긴 공돈으로 빵 대신 구두를 사고, 마 레이니의 밴드맨이지만 그녀의 꼬장에 사사건건 반기를 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미국에 사는 모든 흑인들이 가진 상처와 트라우마, 과거에 붙잡혀 있다. 그 상처는 너무 커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폭발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는 모든 것을 원망하지만 또 동시에 모든 것을 열망한다.


채드윅 보스만이 영화에서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긴장감은 정말 대단하다. 암 투병 중에도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작품과 역할을 이토록 멋지게 소화해냈다는 건, 우리가 이렇게 반짝이는 멋진 배우를 너무 일찍 잃었다는 안타까운 사실로 변해 괴롭게 한다. 죽음에 가까워지며 비쩍 마른 얼굴을 하고도 채드윅 보스만은 ‘흑인’ 배우로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물론 <블랙 팬서>로 온 세계에 알려지긴 했지만 생전 그의 작품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기 시작부터 쉬지 않고 꾸준히 세계 최초의 ‘흑인 왕’을 영화에서 볼 수 있게 되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흑인 이슈를 다루는 영화에 출연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수상 소감에 귀를 기울이면 그가 얼마나 ‘미국 사회의 흑인으로서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했는지 알 수 있다. ‘흑인들은 너무 재능이 많아 슬픈 삶을 산다’는 노래 가사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이토록 아름답고 서글픈 앙상블


마 레이니는 끝없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체념하지도 않는다. 당장 녹음실에서 마실 코카콜라를 위해 “콜라가 없으면 녹음도 안 한다”며 버틴다. 비까 번쩍한 차를 타고 비싼 호텔에 머물러도 북부 도시 흑인 사회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뒤틀려있다. 흑인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흑인인 마 레이니에게 레비의 열정은 위협이다.


아메리칸드림! 열심히 하면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는 열려있다는 주문에 홀려 모든 걸 쏟아부어 겨우 문을 하나 열어젖히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또 다른 방이다. 이 분풀이를 제대로 할 수도 없고, 정확히 그 대상이 누군지도, 무엇인지도 모르는 레비에게 마 레이니는 애증의 대상이다. 왜 인기 많고 힘 있는 마 레이니는 나 같은 젊고 유망한 흑인 뮤지션을 서포트해주지 않는가!


누굴 미워해야 할지 모르고 설국열차 꼬리 칸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사람들처럼 추악하고 서글픈 모습이다. 결국 지배자와 권력을 가진 이들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더 큰 힘과 경제력을 얻는다. 백인들이 만들어놓은 좁디좁은 흑인 뮤지션들의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재능 있는 신인을 견제하고 밀어낼 수밖에 없는 마 레이니와 절대 제 힘으로 계단을 올라갈 수 없는 레비의 갈등은 비정하고 서럽다. 백 년 전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예술계 전반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흑인들 간의 권력 다툼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스틸 컷 ⓒ 넷플릭스




흑인들의 검은 눈물, 블루스


“노래는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니야.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하는 거지.” 마 레이니가 말한다. 블루스라는 음악은 미국 남부 농장에서 싹트고 산업화와 함께 북부로 흘러들어 스며든, 흑인들의 한과 눈물로 맺힌 진주다. 이후 힙합, 알앤비, 록, 가스펠 등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마 레이니의 대사처럼 블루스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아침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마 레이니는 미국 음악 역사에서 ‘블루스의 어머니’로 남았지만, 누가 역사에 남게 되는지 조차 백인 권력에 의해 결정되던 시대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어거스트 윌슨은 특히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흑인’들의 일상과 경험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드라마나 트라우마가 아닌, 흑인들의 일상의 경험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이다. 1927년 시카고에 있는 녹음실에서 예술가들이 함께 보내는 하루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이다. 흑인 음악의 황금기이자 팽창기인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물이 흑인 뮤지션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마 레이니의 이야기와 함께 쓰였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사회의 흑인들에 의해 읽히고 공유되고 토론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채드윅 보스만이 하늘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받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그는 마치 이 영화가 자신의 유작이 되리란 걸 알았다는 듯 모든 것을 뜨겁게 쏟아내고 갔다. 오늘 또 수많은 흑인들이, 젊은이들이, 소외된 자들이 그를 대신해 문을 두드릴 것이다. 우리는 계속 두드릴 것이다. 채드윅이 수상소감에서 인용하기도 했던 구절이자 니나 시몬(Nina Simone)의 노래, ‘To Be Young, Gifted and Black’을 들으며 다시 한번 애도를 표한다.


와칸다 포에버!







* 30분 분량의 메이킹 필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못다 한 이야기(Ma Rainey's Black Bottom: A Legacy Brought to Screen)> 또한 넷플릭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다이빙하는 에디터 조하나,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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