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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Feb 02. 2021

애증의 도시 뉴욕에 보내는 연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추천작 <도시인처럼>


(c)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살아있는 시대의 뉴요커, 그들의 대화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와 프랜 리보위츠(Frances Ann Lebowitz)가 합작한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Pretend It’s a City, 2021)>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공개됐다. 봉준호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을 때 수상 소감에서 공을 돌렸던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야 수식이 따로 필요 없지만, 프랜 리보위츠는 한국 포털엔 인물 정보도 찾아보기 힘든 인물.


1950년에 태어나 칠순을 맞은 프랜 리보위츠는 미국의 작가이자 퍼블릭 스피커, 배우이기도 하다. <타임즈>는 그녀를 ‘근대의 도로시 파커’라 칭했다. 미국의 문화와 예술가를 바탕으로 정치, 사회, 경제까지 이어지는 통찰력 깊은 글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왔고,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개 강연도 많이 하고, TV 토크쇼에도 출연해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명쾌하고도 속 시원한 블랙 유머의 일인자다. 뉴저지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뉴욕으로 온 뒤로 청소, 택시 드라이버, 포르노그래피 작가로, 또 작가 지망생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대부분 이십 대 뉴욕에 들어온 여성들은 레스토랑 서빙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당시 뉴욕 레스토랑 서빙 일은 철저히 남자 매니저에게 성 상납을 해야 가능한 시대였으니까. 그녀는 유대인이지만 무신론자이고 레즈비언이다.


프랜은 거물급 재즈 뮤지션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의 네 번째 와이프가 운영하던 소규모 잡지사 <체인지>에서 글을 쓰다 앤디 워홀이 만든 잡지 <인터뷰>에서 고정 칼럼을 맡게 된다. 당대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스튜디오 54’를 들락거리던 프랜은 로컬 셀러브리티가 된다. 그녀가 잡지에 기고한 영화 비평이나 칼럼을 엮은 첫 번째 책 <메트로폴리탄 라이프>가 1978년에, 3년 뒤 비슷한 성격의 책 <소셜 스터디>가 나왔다. 1994년 그녀는 판다를 소재로 한 동화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후 지금까지 ‘집필자 장애(Writer’s block)’ 때문에 2004년부터 시작한 집필은 2021년 현재까지 못 끝내고 있다. 레터맨은 토크쇼에서 그녀에게 왜 책을 안 내냐 농담 섞인 타박을 하기도 하는데(<도시인처럼>에 실제로 이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그 이유를 “지난 10년 동안 꽁해있는데 써버렸다”라고 밝혀 사람들을 박장대소케 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녀는 “문자에 대한 지나친 경의”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전자와 후자 모두 맞는 말인 것 같다. 1만 권이 넘는 북 컬렉션을 자랑하는 ‘읽기 중독자’이기도 한 그녀가 탐닉해온 위대한 작품과 작가들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자신의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짐작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녀는 책을 너무 많이 읽어 훌륭한 작가가 되지 못하는 운명일 지도. 하지만 프랜은 이마저 사람들에게 유쾌하게 공개하며 커리어를 이어나간다. <배니티 페어>에서 컨트리뷰터이자 칼럼니스트로 여전히 활동 중이고 드라마 <로우 앤 오더>에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판사 ‘재니스 골드버그(Janice Goldberg)’로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퍼블릭 스피커로 강연도 많이 하는데 그녀가 오십 년 이상을 살아온 도시 뉴욕과 젠트리피케이션, 예술, 문학, 정치 등에 조예가 깊다.


프랜의 시그니처 스타일 역시 그녀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언제나 앤더슨 앤 셰퍼드(Anderson & Sheppard)의 비스포크 테일러링으로 맞춘 슈트에 흰 셔츠를 받쳐 입고, 리바이스 진에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뿔테 안경을 쓴다. 그녀는 2007년 <배니티 페어>가 선정한 ‘가장 스타일리시한 여성’에 뽑히기도 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 테크 기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두 해전 세상을 떠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위대한 작가인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과 둘도 없는 친구였다. 담배를 사랑하는 ‘헤비 스모커’로 지금도 여전히 흡연자의 권리를 피력하곤 한다. 피카소가 요즘처럼 실내 금연이었던 시대에 살았다면 그의 그림은 절대 완성되지 못했을 거라 불평한다.





(c)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뉴욕이 그녀를 만들었을까,
그녀가 뉴욕을 만들었을까


<도시인처럼>에서 이런 사람 ‘프랜’을 마틴 스콜세지가 인터뷰한다. 마틴과 프랜은 둘이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친구다. 이탈리아 이민자 2세이자 뉴욕 토박이인 마틴과 예술을 탐닉하는 프랜은 죽이 잘 맞는다. 스콜세지가 일평생 만들어온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의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감독 스스로 매료된 사람은 기어코 다른 사람들 역시 빠져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게 바로 그를 거장 감독으로 만든 이유들 중 하나겠지만. 스콜세지가 프랜을 찍은 다큐멘터리가 2010년 HBO에 한차례 방영되기도 했다. 프랜은 마틴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에 판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마틴과 프랜은 <도시인처럼>에서 7편의 에피소드에 걸쳐 문화와 예술, 대중교통, 돈, 건강,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스콜세지가 자연스럽게 대화 중 질문을 던지면 프랜이 대답하다 결국 딴 데로 빠져 “근데, 질문이 뭐였죠?” 하는 식이다. 그런데도 이 대화가 알차고 유쾌하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두 예술가의 통찰 역시 두텁다. 둘이 관객과 함께 진행한 공개 강연 대화도, 스파이크 리, 데이비드 레터맨, 알렉 볼드윈과의 토크쇼 대화도 등장한다. 뉴욕 구석구석을 걷는 프랜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나 질색하는 타임스퀘어 한복판 기념품 샵을 지나다 가판대에 책을 늘어놓은 것을 보고 “이런 곳에서 책이 가당키냐 하냐?”라고 따지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메시지를 보내며 걷는 이들을 피해 정면을 응시하며 성큼성큼 걷는 뉴요커. 50년대에 미국에서 태어나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뉴욕을 떠나지 않은 그녀가 2020년대 밀레니얼 세대와 관광객과 부딪히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사리며 길을 걷고 있다. 뉴욕의 대표적인 신문 가판대가 자전거 대여소로 바뀐 그 길을 그녀는 여전히 걷는다. 그녀의 불평과 의견에서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증, 뉴욕을 채우는 사람들에 대한 애증이 그득 묻어난다.



(c)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주저 말고 불평하라!

작가에겐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특권이 있다. “예술가에겐 남들보다 어떤 면에서든 보다 나은 것을 내놓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프랜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무거나 내놓는다”며 쓴웃음을 짓는 그녀 역시 비평가로서, 작가로서, 퍼블릭 스피커로서 진짜와 가짜를 선별, 판단하고 비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얼마나 멋진가! 작가들이 늘어놓는 불평불만은 교양 있어 보인다. 게다가 불평하고 돈을 번다! 마틴과 프랜의 위트와 지성은 불평불만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예술가들을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들에게 가득 넘치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은 삶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이 주저 않고 불평한다. 칠팔십의 거장 둘의 대화는 거침이 없다. 살만큼 살아 눈치 볼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소한 불평 거리 하나하나에 뉴욕, 더 나아가 그들의 삶 속의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 등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삶으로 얻어낸 통찰이다. 오직 그녀만이 살아오며 오롯이 겪은 시대의 경험에서 나온 통찰, 그리고 삶에 대한 애정. 이것은 곧 세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 미워할 수 없는 사르카즘과 유머로 이어진다.



(c)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Think before you speak.
Read before you think.

멋진 작가는 새로운 세대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프랜은 자신이 알고 지낸 예술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 인터넷으로 작품을 거래하는 젊은 세대에 대해 불평하며, 그건 진정한 예술적 경험이 아니라고 개탄하는 예술상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에겐 그게 진짜 경험이 아니겠지만, 그들에겐 그게 진짜예요.” 자신이 의견을 내고 불평하고 비판하는 건 오직 동시대인에게만 가능하다며 “동시대인이 아니고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새로운 세대가 어렸을 때부터 아이패드를 달고 산다고 혀를 끌끌 차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는다. 경험과 배려, 섬세함이 넘치는 태도다. 그녀의 이런 애티튜드는 마치 다독에서 자연스레 베인 향과도 같다. 그녀는 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책은 거울이 아닌 문이에요.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읽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사람과 삶, 세상을 넓히는 거죠.” 1978년 <뉴스위크> 기고문에 프랜은 이렇게 썼다. “Think before you speak. Read before you think.”



(c)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컴플레인 앤 더 시티

뉴욕이란 애증의 도시를 그린 수많은 TV 쇼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바로 <섹스 앤 더 시티>이다. 이와 비교하자면 프랜은 <컴플레인 앤 더 시티>의 주인공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인물들은 요가를 배우러 다니지만 프랜은 뉴요커의 3분의 1이 요가 매트를 가지고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가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녀는 담배를 권하는 시대에 태어나 지금은 담배가 나쁘고 마리화나가 좋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벼운 행복감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완강히 밝히는 그녀.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스포츠를 싫어하고 불평하기 좋아하고 담배를 좋아하며 돈을 싫어하고 낭만을 좇지만 그러면서 현실적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들과 가까이 지내며 논쟁과 비평을 좋아한다. 글을 쓰고 남자들을 한심하다 생각하며 지하철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애티튜드에 자신만의 적절한 논리와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프랜의 시니컬하면서도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불평과 의견은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도시 뉴욕 곳곳의 매력이 더해져 신비로운 빛이 난다. 그녀의 삶 자체가 뉴욕이다. 그녀가 바로 진정한 뉴요커다. 서울, 홍대와 강남을 킁킁거려다 떠난 나로선 부러울 뿐이다. 아무도 서울에 사는 사람을 ‘서울러’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프랜 리보위츠





뉴욕이란 애증의 도시에 쓰는 연애편지

<도시인처럼>은 애증의 도시 뉴욕에 쓰는 현실적이고도 지적이고도 유머러스한 연애편지다. 뉴욕에서 50여 년을 살아온 70대 유대인 레즈비언 여성 작가 프랜 리보위츠. 다큐멘터리에 이따금 등장하는 그녀의 이삼십 년 전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아직도 변함없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많은 이들이 그녀 같은 할머니로 늙을 수 있을까 자문한다. 지나온 세월에 후회 없이 현재를 너무도 잘 즐기면서 다음 세대를 보고 혀를 차거나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그저 ‘너희들도 너희만의 뭔가가 있을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고 이야기하는 할머니. 예전에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핀 오프쯤 되는 <캐리의 다이어리>가 나왔다(두 시즌까지 나오고 시청률이 안 나와 캔슬됐다). 이 쇼는 어린 캐리가 잡지 <인터뷰> 인턴으로 일하며 겪는 뉴욕에서의 고군분투기를 담았다. 많은 것이 미화되었고 역시 ‘백마탄 왕자님’으로 끝났다. 이 뉴욕을 대표하는 쇼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는 판타지이기에 17년 만에 리부트도 된다. 캐리의 판타지는 대대손손 리부트 될 것이다. 하지만 프랜은 뉴욕을 대표하는 현실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70년대 <인터뷰>에서 실제로 글을 썼다. 프랜은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쇼에 나와 인터뷰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다면 프랜의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그녀의 책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캐리’와 ‘프랜’ 중 누구를 택할 거냐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프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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