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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Mar 21. 2021

낯설고 강렬한 감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추천작 <뤼팽>


ⓒ 넷플릭스 <뤼팽>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된 <뤼팽>은 <퀸스 갬빗>과 <브리저튼>을 제치고 오리지널 시리즈 1위에 오르며 일찌감치 시즌 2를 확정했다. 고전 추리 소설 속 주인공 ‘아르센 뤼팽’을 오마주한 프랑스 이민자 2세대 ‘아산’의 현대를 배경으로 한 활극이자 추리극, 복수극이다. 소설은 하나의 장치일 뿐 <뤼팽>과 ‘아산’에 투영된 의미는 더욱 넓고 깊다. 


‘셜록 홈스’가 영미권을 대표한다면 ‘아르센 뤼팽’은 프랑스를 대표한다. 그렇다. 프랑스는 늘 영미권과 적대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늘 몇 걸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 적도 있었고 문화를 대하는 태도나 삶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영국은 지금까지도 여왕이 통치하는 나라요 프랑스는 왕을 단두대로 끌고 간 혁명의 나라다. 셜록 홈스는 추리와 논증으로 사건을 해결하지만 뤼팽은 상황에 순발력으로 대처하며 즉흥적이고 감각적이다. 뤼팽은 프랑스인의 성향과 기질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셜록> 같은 머리 쓰는 추리물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테고 우리가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영미권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에 낯설면서도 신선함을 호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뤼팽>은 할리우드에서 <나우 유 씨 미 마술 사기단> <인크레더블 헐크> 등 수많은 상업 영화를 연출했던 루이 리테리어(Louis Leterrier) 감독이 고국으로 돌아가 만든 ‘프랑스 드라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미드’ ‘영드’는 친숙해도 ‘프드’는 낯설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듣고 한글 자막을 보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자라는 것은 우리의 세계를 보는 시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우리가 미처 눈치챌 겨를도 없이 견고하고 자연스럽고 오랫동안 말이다. 


<뤼팽>의 주연 배우는 <언터처블: 1%의 우정>으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오마르 시(Omar Sy). ‘아산’의 패션 스타일이나 입이 떡 벌어지는 한정판 에어 조던 1 시리즈는 스니커즈 콜렉터들의 시선을 진작에 사로잡았다. 오마르는 프랑스 국민이 사랑하는 배우로 190cm의 장신에 실제로 그 역시 서아프리카 이민자 2세대이다. <뤼팽>의 ‘아산’ 역시 이민자 2세대로 프랑스 사회에서 흑인으로 사는 삶을 보여준다. ‘자유의 나라’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인종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 특권의식은 여전하며 그래서 더 모순적이다. <뤼팽>을 보며 초반에 내가 가진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흑인이 주연으로 나온 걸 본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미드’ <하우 투 겟어웨이 위드 머더(범죄의 재구성, 넷플릭스)>과 <스캔들>을 통해 미국 공중파 프라임 타임에 흑인 여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했을 때 처음 느꼈던 그 낯설고 어색한 느낌과 닮았다. 하지만 쇼가 진행되는 동안 이내 쾌감으로 바뀐다. (지금 생각해도 제작자인 숀다 라임스는 대단한 여자다.) 당시에도 흑인 여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워 미국 사회에서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이후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케리 워싱턴이 각각 주연한 이 작품들은 작품성과 흥행에 모두 성공했고,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흑인 여성 최초로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런 작품들이 있었기에 <브리저튼> 같은 작품이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선보여지는 세상까지 왔다. 


프랑스 드라마에 대한 낯설고 어색한 느낌도 있다. 2017년 넷플릭스가 제작, 배급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이 영화를 극장 개봉하지 않겠다는 넷플릭스의 정책에 프랑스 영화인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프랑스는 그런 나라다.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하고,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하고, 전자담배는 죄악이라 여기는 나라. 문화적 자부심과 애티튜드가 대단한 나라다. 문화의 상업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영미권에 바득바득 반기를 드는 프랑스를 나는 언제나 응원하곤 했다. 결국 칸영화제 측은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은 프랑스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세상은 요지경’이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작년 프랑스 영화 극장 관객 수는 전년과 비교해 70% 하락했고, 극장 문은 굳게 닫혔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 제작자,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넷플릭스 같은 대형 OTT 서비스와 손을 잡았다. 그렇게 <뤼팽>은 넷플릭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시청률 1위’를 차지한 프랑스 드라마가 되었다.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에서 넷플릭스 톱 10 리스트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뤼팽>의 ‘아산’은 프랑스에 사는 이민자 2세대 흑인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회가 이들을 보지 않기로 결정하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다. 물론 백인 사회에서도 계층에 따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백인이 아닌 경우보다는 덜 하지만. ‘아산’의 “눈길은 줬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대사처럼 그는 사람들의 시야에는 들었지만 무시된다. 부와 계층에 따라 사회에서 보이고,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아산’은 자신의 피부색을 오히려 무기로 이용한다. 청소부로 분장한 ‘아산’은 의심받지 않고 박물관을 드나든다. 한편 그가 말끔한 슈트를 입고 경매에서 고액의 액수를 부를 때 역시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아산’은 히어로물처럼 초능력을 쓰지 않고도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프랑스 사회에도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뤼팽>의 루브르 박물관 장면은 세트장이 아닌 실제 루브르 박물관에서 촬영됐다. 박물관 측은 촬영 시간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았고, 보안 요원 없이 오마르가 ‘모나리자’ 앞에 홀로 서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참 멋진 프랑스다. 프랑스가 가장 프랑스적인 고전 추리 소설을 오마주한 작품을 가장 프랑스적인 배우를 통해 가장 프랑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만든 시리즈가 전 세계에 통했다. 팬데믹으로 극장과 예술영화를 잃었지만 <뤼팽>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프랑스는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보다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지원하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OTT 서비스 중에서 넷플릭스만큼 흑인 인권이나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데에 서포트하는 곳도 흔치 않다. 여성이나 아시안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 또한 보다 더 다양해지길 바란다.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다른 문화에 쭈뼛쭈뼛하듯 콘텐츠가 끼치는 영향은 거대하다. 교육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곧 행동을 만든다.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Stop Asian Hate’ 운동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뤼팽>의 의미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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