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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May 27. 2024

이센스|Dedicate to E SENS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했던가. 이센스가 카메라 앞에 편하게 앉았다. 힘이 풀린 것과 힘을 뺀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여기 없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을 뿐.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임한수


파도가 잦아들었고, 이센스가 돌아왔다. 인트로와 함께 밀려오는 벅찬 비트와 섞이는 심플하고도 담백한 그의 관조는 세상에 ‘Calm Down’을 주문한다.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씬에 발을 담갔다 돌아온 ‘언더그라운드 워리어’ 코스프레도 없이, 세상의 상처란 상처는 혼자 다 가진 듯한 엄살도 없이, 그저, ‘I’m Good’, 이 한 문장에 모든 걸 담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센스는 약삭빠르지 못하다. 계산에 어둡고 정치에 약하다. 그런 그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올라 스스로에 대한, 또 세상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신념과 꿈이라는 단어로 떨쳐버리며 지금, 여기까지 왔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다. 실수한 적도 있었고, 무너진 적도 있었고, 분노와 치기에 갇힌 적도 있었다. 행복한 적도 있었고, 취한 적도 있었으며, 안주한 적도 있었다. 이센스만의 이야기인가? 당신과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차 별다른 것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센스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다. 지혜와 무지 사이에 있으면서도 그는 늘 지혜를 소망했고, 아름다움과 추함 가운에서도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편안한 지점에 닿으면 얻게 되는 만족에서도 그는 늘 불안해했다. 그곳은 더 이상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곳임을 알았고, 열정의 부재와 온몸에 퍼지는 독을 두려워했다. 그의 가사를 보면 안다. 모든 문제는 자기 합리화에서 시작된다. 시작의 열정이 사라지고 세상과 타협하며 결국 나약해지고 마는 사람들이 결국 무너지는 순간은 바로 자기 자신을 속일 때다. 그러니까 이센스는 죽어도 자기 자신은 못 속이는 사람인 거다. 


불시에 싱글 ‘I’m Good’을 공개하고 이태원 케이크 샵에서 공연까지 마친 그를 마주했다. 대화 도중 그는 간간히 ‘창작자’, 혹은 ‘예술가’로 자신을 칭했다. 한치의 걸림 없이 자신을 예술가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투지와 열정만 앞서 빅펀치를 날리는 파이터가 제일 먼저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법이다. 많이 맞고 때리고 싸워본 파이터는 힘을 뺀 채 가볍게 날린 훅 한 방으로 경기를 끝낸다. 이센스는 가벼웠다. 여유 있고 편안했다. 


“제 태도는 언더그라운드라고 생각해요.” 묻지도 않은 질문에 그가 답을 내놨다. 한국의 대중음악 시스템과 시장의 구조, 대중의 의식, 이 모든 건 이야기하고 또 해도 끝이 없지만, 결국 그 안에서 타협하고 적응하고 활용해 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뮤지션의 욕망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센스는 “No”라고 했다.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적이 문제가 아니다. 잘 나가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의 방식을 말하는 거다. 이센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이센스의 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제 갈 길 스스로 정해 한 발을 제대로 내딛기까지 꽤 먼 길을 돌아왔건만 이센스는 지나온 길을 원망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없었던 일인 양 부정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꿈을 꿀 땐 무조건 이상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자기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죠. 기성 래퍼들이 수동적으로, 타성에 젖어 가는 모습을 후배들이 본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속으로 마음먹죠. 자기는 죽어도 그렇게 안 될 거라고. “Fake!” 한단 말이죠. 그때는 그렇게 해도 돼요. 맞으니까. 그 마음이 맞으니까. 그런데 직접 겪어보면 또 다른 문제거든요? 저도 순진하게 접근한 거죠. 가사 한 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거, 절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걸 등지거나 내 과거를 부정하거나, 그동안 겪었던 게 괴로움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 난 분명히 노력했어요. 그리고 이런 마음도 있었어요. ‘훌리건’ 가사에도 있어요. ‘이 세계를 냉정히 파악해 이 빡도는 시스템 그러기 위해 갖춰 놓은 기술 더러우면 참고 익혀’라고. 나는 한국이란 나라에 태어났고 여기서 랩을 하고 있고, 내 목표는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힙합이 뭔지 보여줄 수 있는 건데, 세상은 음원차트 1위를 해야 듣는단 말이죠. 그런 시스템이 있는 거고. 그런 걸 본 거죠. 봤는데… 그걸 보고 다시 오니 이제 마음이 편해요. 아직 뛰어들지 않아서, 아직 한대도 안 맞아봐서 ‘아, 내가 나가면 다 이길 거 같은데’ 하는 마음이랑 한번 처맞아 본 거랑 다르단 말이죠. 내 안에서 이런 것들이 엎치락뒤치락했잖아요. 그런데 결국 내 선택은 이거라 이거죠. 솔직히 고민도 했었어요. 그냥 회사를 계약할까. 제안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그렇게는 하고 싶진 않은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건 알아요. 냄새나고 굳어진 걸 주먹으로 치면 결국 자기 주먹만 부서진다는 걸. 그러고 나서 뒤돌아가요. 저는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주먹은 안 되겠으니 무기를 만들자, 하는 거예요. 한국에 힙합 씬이라는 게 처음 생겼을 땐 엄청 열악했어요. 그때 모든 래퍼들의 마음가짐이 그랬겠죠. 랩으로 세상을 바꿀 거다. 힙합에 목숨, 인생 다 바칠 거다. 그 마음이 드러난 곡들을 듣고 저 같은 애들이 뻑이 간 거죠. 그 노래들이 주는 바이브에. 그랬던 사람들 중에 재미 좀 본 사람들도 있고, 하다 관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뭔가를 해나가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있는 사람들, 메이저로 가지 전 단계, 이런 느낌이 되어가더라고요. 그걸 좀 바꿔버리고 싶어요. 언더그라운드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야 돼요.” 


세상은 꿈꾸는 이들에게 말한다. ‘너를 관철시키려면 일단 세상이 원하는 것에 맞추고, 그러고 나서 네 진짜 목소리를 내라.’ 음악이든 글이든 무엇이든 자신을 버리고 세상에 맞춰 내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그걸 진짜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도 무엇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운 순간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그때 정작 예술가의 손에 남겨진 선택지는 얼마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살아가느냐, 흔들리고 고민하느냐, 아니면 관두느냐. 이센스의 선택의 기반은 아직도 살아서 펄펄 뛰는 ‘가사 쓰고 랩 하는 작가’로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의지이다. 자신의 생명력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지 확고하게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자기 확신’이라 부르지만, 요즘은 이보다 ‘자기혐오’를 감추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걸 최고로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세상이 그렇잖아요. TV를 틀어도 멀끔한 것들만 보여주고 환상을 팔잖아요. 나는 거기에 비해 멀끔하진 않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사로 적었더니, 사람들이 저를 멋있게 봐주는 거예요. 아, 이건 희망이 있는 거다. ‘나는 대한민국의 80%의 삶을 얘기할 거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상위 1%의 얘기가 아닌. 나는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런 얘기를 할 거다. 그러면 감동이 있지 않겠냐. 힙합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미국에서야 ‘드럭 딜링(마약 거래)’ 하는 게 생활이잖아요. 옆에 친구를 보면 그러고 있잖아요. 근데 내 옆에 친구를 보면 ‘야자’하고 있어요. 땡땡이치고 PC방 가 있어요. 나도 그랬고… 그런 와중에서 멋있는 척할 ‘거리’도 없는 거고. 그런 걸 인지하고 솔직하게 가사를 썼어요. 그러니까 솔직히 다른 멍청한 래퍼들보단 내가 나았다고 생각해요. 그것 때문에 그걸 얻었고. 그래서 전 더 확신이 있었죠. 내가 남들보다 멋있기 때문에 지금 이런 기회들이 주어진 게 아니라, 진짜 단지 솔직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이번 싱글의 프로듀싱을 맡은 진보의 비트를 듣자마자 ‘I’m Good’이라 주제를 정한 이센스는 스튜디오에서 이 곡을 1천6백 번 들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디제이 Babykool과 함께 힙합 클럽 호스트로 일하며 몇만 원을 벌어도 행복했던 때를 떠올렸고, 스케줄에 쫓겨 잠 못 잘 때 스튜디오에서 아무 방해 없이 곡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원하던 또 다른 때를 회상했다. 그렇게 절실히 바라던 순간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놓고서도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라며, 이센스는 테이블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신의 선물 같은 현실을 깨달은 후에 ‘I’m Good’의 가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10년 가까이 활동했지만, 아직 자신의 바이오그래피에 솔로 정규 앨범을 올리지 못한 이센스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솔로 앨범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관과 음악관이 반영된, 자신의 주관으로 만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하는 것. 강민호라는 사람이 태어나 래퍼 이센스가 되기까지 겪고 경험했던 것들의 정수를 뽑아 <The Anecdote>라는 이름 아래 남아낼 계획이다. 그리고 그 출발을 조촐하게 기념하는 싱글 ‘I’m Good’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트랙의 마지막 부분, 샴페인을 터뜨려 따른 잔을 들고 힘을 빼고 의자에 반쯤 파묻혀 샴페인 거품이 천천히 터져 올라오는 걸 지켜보고 있는 이센스의 평화로운 표정이 지금 앞에 있다. 세상은, 사람들은 무엇 하나 축하하고 기념할 게 없는 게 그의 현실이라 예상했겠지만, 이센스는 지금, 제 삶의 속도에 안착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축하하고 기념할 일인 것이다. 


사는데 별다른 거 없는 세상에서 이센스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다. 많은 걸 겪다 보면 세상에 닳다 보면 그 태도, 그 마음 변할 만도 한데 이센스는 한결같다. 그의 가사를 보면 안다. 


“전 언제나 똑같았어요. 똑같은데 그걸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상황에서 힘들었던 거지. 전 늘 똑같아요. 현실이란 건 꿈과 정반대에 있는 개념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사는 건 꿈이자 현실이잖아요. 예술이라는 게 현실과 밥벌이와 동떨어진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한마디로 먹고살 만해져야 눈이 가는 분야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웃기지 않아요? 노가다 판에도 예술이 있는 거죠. 거기서 예술가들이 쓸 얘기는 넘쳐나는 거예요. 노가다 판을 가든, 루이뷔통 패션쇼를 보든, 어디든 예술적 영감은 있는 거예요. 나는 힙합이 현실을 좀 더 가감 없이 보여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림이나 행위예술 하는 사람들이 이미지로 무언갈 주려고 한다면, 나는 좀 더 파고들고 싶어요. 독립 영화도 있고, 블록버스터도 있잖아요. 나는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은 거죠, 음악적으로. 래퍼들이 자신이 작가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화 종종 이센스는 히죽 웃었다. 어린아이의 얼굴에서나 볼까 말까 한, 잊고 지냈던 본 지 오래된 웃음. 그는 “행복해서”라고 했다. 자신의 에세이를 채워나갈 생각에 “기쁘고 설레서”라고 했다. 진정 행복해지는 데에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았던 거였다. 그가 바라는 건 오직, 매 순간이 진짜가 되는 것뿐이었다. 이센스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니체의 말을 빌려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괴물이 되지 않고, 또 그만두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니체의 말을 하나 더 빌리자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가 중요하다. 나는 이 세상이 몇 개의 키워드로 읽어낼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이 되길 원한다. 매스미디어로 지배되는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간절히 원한다. 너무나 당연한 예술의 과정과 방식이 오히려 용기 있는 일이라 칭찬받는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이센스는 용기 있는 래퍼라 감히 보장한다. 그의 흉터는 무엇보다 아름답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는,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이센스의 멋진 바이브를 우리는 함께 느끼기만 하면 된다.





ARENA HOMME+, May 2014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쌈디와 이센스의 슈프림팀이 활동을 시작했다. 다이나믹 듀오의 뒤를 이을, 언더와 메이저 사이 줄타기를 잘 할, 실력도 있고 예능감도 넘치는 기대주라고 홍대 힙합 씬에선 모두가 설레발을 쳤다. 백스테이지에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쌈디는 몰라도 이센스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센스는 나와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그는 ‘좋은 게 다 좋은 거지’ 같은 그 바닥의 암묵의 룰을 견딜 만큼 비위가 좋지 않았고, 그걸 괜찮다고 넘길 만큼 스스로에 관대하지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민하고 여린 그 기질이 이센스가 쓰는 가사의 영혼이었다. (그의 이름, 이센스처럼) ‘힙합’이라는 음악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삶이라는 에세이를, 그것도 아주 멋지게 잘 써 내려가는 작가주의를 가진 래퍼가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을까. 


끝없는 자기 환멸과 자기 검열, 자기혐오로 가득한 고통의 삶에서 발견한 희미한 한줄기 빛에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을 수 있을 때, 딱 적당한 시기에 맞춰 그의 새 출발을 알리는 ‘I’m Good’ 싱글이 나왔고, 나는 그 싱글을 듣자마자 두말없이 인터뷰를 청했다. 예정보다 길어진 인터뷰에도 이센스와 나는 아주 오랫동안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할 말이 많았다. 인터뷰 이후, 몇 달이 지나 그의 첫 번째 정규앨범 <The Anecdote> 발매를 앞둔 BANA에서 연락을 받았다. 이센스의 미니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영상 마지막에 나와의 인터뷰 대화 육성을 넣고 싶다고. 흔쾌히 나는 수락했다(아래 영상 마지막에 나온다). 여전히 한국 힙합에서 명반으로 꼽히는 이센스의 특별한 정규앨범의 시작을 지켜본 관찰자로, 그 순간을 기록할 수 있어 기쁘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진실된 음악을 하고 있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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