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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n 07. 2024

김창완|김창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퇴적된 시간의 무게를 매 순간 털어내는 그가 가볍게 나는 법을 가르쳐줬다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돌아보면 김창완이 늘, 거기에 있었다. 뜨겁다. 젊다. ‘여전히’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한다. 저런 눈빛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퇴적된 시간의 무게를 매 순간 털어내는 그가 가볍게 나는 법을 가르쳐줬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유영규  


유난히 힘에 부치는 한 달이었다. 누군들 안 그랬을까. 손발은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마음은 시꺼먼 바닷속에 가 있었다. 바람과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처럼 아프고 시렸다. 어떤 노래도, 들을 수도 부를 수도 없었다. 그때, 김창완이 ‘노란 리본’을 들려줬다.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다. 까치집 머리에 낡은 티셔츠를 걸치고 기타를 툭 메고 앉아 ‘노란 리본’을 부르는 영상을 봤다. 흐느끼며 지은 노래를 애써 마음 가라앉히며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했다. 10년이 넘도록 매일 아침 9시에 그의 목소리는 거기 있었는데, 40년 가까이 그의 노래가 거기 있었는데, 그날만큼 김창완이라는 존재가 절실하게 다행인 적은 처음이었다. 한참 울고 난 후 부어오른 벌겋고 따가운 눈처럼 아프고 또 고마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마련해야 할 건 희망이고, 이 곡은 희망가여야만 한다고.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티끌만큼의 빛도 없는 지금, 대체 어디에 희망이 있느냐고 따져 물으려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물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울고, 이야기하고, 또 아프게 웃고 싶었다.  




산울림의 열세 장의 앨범과 김창완 밴드의 수 장의 앨범이 쌓인 시간을 생각했어요. 35년이 넘도록… 저는 단 몇 년도 힘든데….

어… 사실 뭐, 계속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좀 더 알아가겠지, 알아지겠지, 35년 세월이 쌓이겠지, 하겠지만 사실 모든 건 그 순간에 비상하기 때문에 감정이라는 건 그야말로 먼지 쌓이는 거나 마찬가지지. 사람의 경험 같은 게 누적된다고 하는데 그 경험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거라 그걸 잡아내기 쉽지 않아요. 해도 늘 새롭고 해도 늘 부족하고 해도 늘 모르고 있고, 그래요. 그게 삼십몇 년 세월 동안 이 일을 지겹지 않게 만든 힘이지. 1 더하기 1이 2가 되고, 3이 쌓이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 세월 흘러 어떻게 되겠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월이 자신을 키우는 걸 믿을 게 아니라 자기 모습, 자기감정,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그 순간에 집중해서 그걸 포착하는데 전력을 다할 일이라고. 


선생님도 지금 전력을 다하고 계시는 거죠?

지금 이 순간, 기자님이랑 대화하는 데에 올인하고 있어요.  


몸은 여기, 마음은 저기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순간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세상이에요.

사람들이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갈구해요. 어쩌면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 세상에 정보가 얼마나 많아. 어떤 사건에 자기의 온 마음과 몸이 합치돼서 감동하고 그 순간에 동화되고 하나가 되는 것, 그 순간 확실히 각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페이스북 친구가 몇 명이고, 오늘 뭐 하고, 내일 뭐 하고, 또 기다리고, 그런 건 의미가 없지. 


연기하실 때, 라디오 디제잉 하실 때, 음악 하실 때, 모두 그 순간에 집중하시는 거예요?

그럼요. 나 여기 올 때까지 아무 생각 없었어요.  


하하하.

올인, 올인! 


음악만 하기에도 힘들지 않으세요?

글쎄? 그런 건 모르겠고. 대신 난 너무 잘 잊어버려. 난 너무 잘 잊어.(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게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그게 중요할까? 그냥 순간에 집중하는 거야. 


요즘은 예술가들의 작업물이나 작업 방식에 대한 선택권이 예술가 자신이 아닌 대중에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려고 해요. 산울림도 그 당시 트렌드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어요. 어떤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들이 우릴 특징지을 수 있겠지.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우선 그 경향부터 파약해야 하는 건가요?

음… 경향을 알긴 알아야지. 대중의 요구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대중과 소통이 잘 된다면… 좋은 건가요?

글쎄… 지금 시대, 모든 예술을 비롯해 남녀 사이, 부모 자식 지간, 아니면 국가가 국가 간의 소통이 무슨 만병통치 같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소통이라는 게 일시에, 아니면 어떤 의도에 의해서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난다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에요. 소통이 잘 안 이루어져서 세대 간 불통이 있을 수도 있고, 남녀 간 외계인 같은 만남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런 것에 대한 이해나 용서, 아니면 이해 불통에 대한 이해가 소통의 전문이 될 수도 있고. 한 예술가를 이해했어, 저 남자가 맞아, 이 여자가 맞아, 그런 것이 아니라, 어? 우리 못 만나네, 그런 걸 깨닫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소통의 일종이 아닐까. 예술이라는 것이 꼭 대중적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 당시에는 대중과 소통이 안 됐어도 먼 훗날 보니까 아닌 거지. 이런 작품들이 워낙 많으니까. 지금 우리가 잘 맞는다고, 소통한다고 하는 것들도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지. 


불통의 순간마저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예술가는 답답해 땅을 치고 가슴을 부여잡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기 예술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뤄지는 소통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지.  


산울림은 어땠어요? 70~80년대 당시에.

우리는요. 1977년엔 가요의 중심에 어른들이 있었어요. 어린이들 노래는 동요, 어른들이 듣는 노래는 가요, 이렇게 딱 나눠져 있었지. 그땐 나라에서 지정한, 이건 들어야 한다고 하는 건전 가요도 있었으니까. 우리는 변방의 음악이었어요. 처음부터 이단아였지. 그러다 대학 가요가 활성화되고 그러면서 점점 가요의 중심축이 젊은이들로 옮겨진 거예요.  


그럼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 산울림 노래를 들었겠네요?

그렇지.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가요의 중심으로 오면서 오래 활동하는 밴드가 될 수 있었어요. 변방의 음악이었던 우리가 가요의 중심을 점령했다 체감했을 때가 7집 때. 그때 우리가 큰 상을 받아요. 산울림 1집부터 7집까지… 우리가 중심축으로 옮겨가는 시기였던 거지.  


환경 탓하면서 좌절해 있는 친구들도 많아요.

우리 때도 음악 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어요. 늘 아니었지. 지금 젊은 사람들의 환경, 그들의 무력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피폐, 자화상, 여러 가지 사회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그걸 어디론가 분출하려는 에너지. 그게 부정적이더라도 에너지가 될 수 있어요. 늘 하는 이야기지만 나쁜 환경도 환경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그 환경이 또 힘으로 작용할 거예요.  


세월호 침몰 이후, 예술가가 과연 예술로 세상에 이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담론이 생겼어요.

지금 사회 전반의 신뢰나 시스템이 다 무너졌어요. 거기서 예술가들이 선택하든가, 대중들이 선택하는 것이 분명 있다고 봐요. 이런 황당한 세상에 예술이 있다면 그건 상당히 아방가르드한 것일 거라 생각을 해요.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향유했던 것들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세상은 분명 다른 문화를 요구할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등장할 후배들이 저지르는 예술적 행위들이 상당히 전위적일 거라고 예측할 수 있어요. 이게 맞을지 아닐 진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봐요. 


음악 하는 환경도 즉각적이고 기계적이고 데이터로 변하다 보니 소리의 질감 같은 것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은데… 본질적인 거요.

그런 시도들이 지금 조금씩 나오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 중에요. 앵거스 앤 줄리아 스톤 들어봤어요?(그는 직접 스마트폰 유튜브로 이들의 라이브 영상을 보여줬다.) 이 음악이 지금까지 있던 노래와 왜 다르지? 가만히 들어보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요소들이 있어요.  


앵거스 앤 줄리아 스톤 'Big Jet Plane'




선생님 음악도 그렇잖아요.

물론, 내 것도 그렇기는 하지.(웃음)





세상의 음악적인 흐름이 기계적이고 차가워질수록 그 반대의 기운을 가진 음악이 등장한다, 이 말씀이시네요? 세상의 이치 같은 거네요. 어둡고 나쁜 기운이 세상을 덮어버릴 것 같다가도 자연적으로 미약하나마 반대의 힘이 생기잖아요.

아까 말했잖아요.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 피폐함이라는 것이 에너지가 될 거라고. 


자연스럽게 세상의 이치가 균형을 맞춰가는 걸 믿으시는군요.

그렇지.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거대하고 훨씬 더 다이내믹해요. 나는 그런 세상의 힘이 우릴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선생님은 여전히 아이 같고 청년 같고, 필드에 뛰고 있는 플레이어인데 저도 지금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배’ ‘멘토’로 선생님을 바라보잖아요.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우신가요?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 본인이 느끼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기보다는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나 이상향이 있다면 그 상상으로부터 자기가 얼마나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진정한 자유는 바람과 함께 날고 있을 때, 중력을 갖고 있지 않을 때가 진정한 자유인 건데 우리의 자유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중력 자체가 없으면 오히려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중력의 실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기준이에요. 그게 없으면 자유의 기준조차 없겠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속박이고 여러 가지 예술을 통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것이 예술의 근원이지. 나는 어쩌면 굴레를 즐기는지도 몰라요. 


선생님 만날 준비 하면서 산울림이랑 김창완 밴드 앨범을 몇 날 며칠 들었어요. 한결 마음이 가라앉더라고요. 음악이 안아주는 것 같아서… 이번에 발표되는 신곡 ‘괴로워’와 ‘E메이져를 치면’도 그렇고. 이런 감성이 끊이지 않고 샘솟나요?

사람이 보통 그래요. 누구나 마음이 흔들리잖아. 배가 풍랑에 일 듯, 늘 마음이라는 것이 흔들흔들하고 변덕스럽지 않아요? 작은 진동, 하나의 가치와 또 다른 가치 사이에서 갈등도 하고.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그런 거에 무뎌진다고 하잖아요. 아니면 스스로 흔들림을 자제하거나. 근데 나는 반대해요. 늘 진동에 나를 맡기고 그런 진동을 즐기며 살아요. 젊었을 때는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게 청춘의 특권이라고 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서른 갓 넘은 지인에게 “결혼하니 좋아요?” 물으니 더 이상 ‘밀당’ 할 일이 없어서, 감정 낭비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철딱서니 없어도 좋아요. 내가 이렇게 산다는데 누가 동전 한 닢이라도 던져줬나.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부침이나 여러 가치들이 나에게 주는 흔들림이나 이런 것들이 나를 저기 북해에서 잡은 청어가 런던까지 갈 때까지 펄펄하게 살아있는 상어 같게 하는 거예요. 상어가 늘 마음에 있는 거예요. 내 마음에 상어가 한 마리 있어요. 


철딱서니 없는 게 아니라 솔직하신 거예요. 어른들이 솔직해진다는 건 정말 어려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사실 그게 어른들에 대한 역차별이에요. 부모들이, 어른들이 좀 더 빨리 솔직해지면 자녀들과 소통하는 데 그야말로 도움이 될 거예요. 어른이라는 타이틀은 솔직해지는 걸 막는 장애가 돼요. 그리고 우린 서로 희생해야 돼. 사랑하는 사람에겐 무엇보다 시간을 많이 줘야 해.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사랑한다면, 시간을 줘야 해. 내가 지금 기자님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 거야.




ARENA HOMME+, June 2014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나는 쉽게 질린다. 구멍 난 순간들을 견디지 못한다. 스스로 납득할 수 없을 때면 발광한다. 둘 중 하나다. 지속하거나 그만두거나. 계속하기로 한 결정보다 그만두기로 한 결정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늘 같은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에디터로 일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풀어버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비뚤어진 자격지심과 자괴감에 내 삶의 구멍은 점점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견딜 수 없는 내 삶의 순간을 채우기 위한 욕심으로 만났다. 내 또래의, 비슷한 직종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관심 가질 만한 감각적인 이들을 인터뷰이로 찾고 있을 때 나는 엉뚱하게 패티 스미스, 장사익, 최백호, 김창완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 세기의 반 이상을 살아낸 사람과, 그것도 예술을 해온 사람과 마주 앉은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사로 옮겨 담아 읽게 될 누군가를 위해서도, 미쳐 날뛰어가는 세상을 위해서도, 이슈도 되면서 광고주가 좋아할 만한 신박한 아이템을 기대하는 데스크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나를 위해서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발리로 출장을 떠나던 길이었고, 비행기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줄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잠깐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길에 올라탄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모두 구조될 거라 생각했다. 발리에 도착해 출장 일정을 진행하는데 옮기는 자리마다 TV나 스크린이 있는 곳이면 한국 바다가 나왔다. 이상했다. 출장에 동행한 일간지 기자들도 있었는데 몇몇은 '조선'쪽이었고, 몇몇은 '경향'쪽이었다. 발리의 한 식당에 모두 둘러앉아 그 시커먼 바다 위를 헬기에서 찍은 장면을 지켜봤다. 그 말 없는 바다를 보면서도 '경향'쪽은 정부를 탓했고, '조선'은 바다와 운을 탓했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이 뒤틀리고 비현실적으로 기억된다. 발리 일정 내내 타임라인이 꼬였다. 바다만 봐도 두통이 왔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선 한없이 죄스러웠다. 딱히 뭘 잘못한 게 아닌 나를 죄스럽게 느끼도록 만드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도 억울했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고 안산 분향소에 찾아가 얼굴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고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분노와 무기력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마감은 가까워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뿐 아니라 우리 팀 전체 분위기가 그랬다. 편집장님에게 감각적 이름들로 가득 찬 인터뷰이 리스트 대신 들이민 것은 '김창완'이라는 이름이었다. 


그가 매일 아침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세월호를 타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지어 부른 영상을 보고 나서 바로였다. 밤새 술을 드셨는지, 잠을 뒤척였는지, 혹은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에 까치집 머리를 하고 라디오 스튜디오에 앉아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에 그냥, 무작정 만나고 싶어졌다.



김창완 밴드 '노란 리본'


사실 인터뷰는 핑계였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두 배를 살아온 그 사람에게, 나보다 어른인 그 사람에게, 세상이 뭐 이딴 식이냐고 무작정 따져보고도 싶었고, 떼를 쓰며 책임을 떠넘기고도 싶었다. 알량한 마음으로 나는 김창완을 만났다.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그는, 당시 발표를 앞두고 있던 김창완 밴드의 신곡을 들려줬다. 'E메이저를 치면'이라는 곡이었는데 그걸 들려주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설레하는 그를 보면서 우디 알렌을 떠올렸다. 나보다 훨씬 어른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순간이 스칠 때마다 베어내는 상처들이 줄어들고, 그 통증에 대한 감각도 줄어들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하나하나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무뎌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김창완은 그런 의미로는 어른이 아닌, 아이였다. 앨범이 발매된 후 뮤직비디오를 보니 더 좋았다. 60년 동안 간직해 온 그 상어 한 마리는 여전히 펄떡 거리며 잘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김창완 밴드 'E메이져를 치면'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눈빛을 번쩍이며 한순간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이완됐고 여유가 넘쳤다.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기엔 코앞에 닥친 1년도 버거운 나였다. 그저 지금 그와 앉아 이런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만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천재'라 불리는 이십 대 수십을 만나봐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온전히 삶으로, 시간으로 부딪혀 얻어낸 진실된 이야기들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그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거두고 '아저씨'라 불렀다. 그리고 어둡게 꼬여 있는 내 마음을 풀 실마리를 얻었다. 사진가에게 40년 가까이 기타를 잡은 손을 찍어달라고 했다. 후작업으로 주름 하나도 지우면 안 된다 당부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진 프린트를 <아레나>에서 일하는 내내 책상 곁에 붙여뒀다. 






<응답하라 1988>로 시끌했을 때에도 내게 가장 뜨거웠던 건 김창완의 '청춘'이 흐르는 장면이었다. 부르는 이가 바뀌어도, 듣는 이가 바뀌어도,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뒤집어져도 좋은 노래는 좋다. 그게 노래의 힘이고, 그 힘은 노래를 만든 사람의 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나는 믿는다.



김필 '청춘' ft. 김창완



얼마 후, 김창완 아저씨가 새로 발표한 '시간'을 들었다. 출근길 신보 체크를 하기 위해 신보를 전체 클릭해 재생시켜 놓은 중이었다. 고상지의 반도네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면'이라는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나는 가던 길에 멈춰 섰다. 


가사는 이렇다.



시간

작사, 작곡 김창완 / 반도네온 고상지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면 

그때 가서야 알게 될 거야 

슬픈 일이지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게 얼마나 달콤한지

얼마나 달콤한지 

그걸 알게 될 거야


영원히 옳은 말이 없듯이 

변하지 않는 사랑도 없다

그 사람이 떠난 것은 

어떤 순간이 지나간 것 

바람이 이 나무를 지나 

저 언덕을 넘어간 것처럼

유치한 동화책은 

일찍 던져버릴수록 좋아 

그걸 덮고 나서야 

세상의 문이 열리니까

아직 읽고 있다면 

다 읽을 필요 없어 

마지막 줄은 내가 읽어줄게


왕자와 공주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그게 다야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시간은 동화 속처럼 뒤엉켜 있단다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있기도 한단다 

더 늦기 전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모든 눈물이 다 기쁨이고 

이별이 다 만남이지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용감하게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돼

네가 머뭇거리면 시간도 멈추지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가는 거야 

잊지 마라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그렇게 후회해도 사랑했던 순간이 

영원한 보석이라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그냥 날 기억해줘 

내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언젠간        



김창완 밴드 '시간' ft. 고상지



음악 비평 기사를 위해 여러 뮤지션들의 데모나 발매 예정인 곡들을 듣고 있던 차였다. 음악으로 이루고자 벼른, 욕망이 그득한 음악들을 들으며 나는 여전히 이러한 방식의 도시에 맞지 않는 사람인 건가, 또 괜히 혼자 마음에 손톱자국을 내고 있던 때였다. 봄은 온다는데 마음은 더 얼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노래 하나로,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녹아 흐른다. 길을 걷다 선 채로 노래가 끝날 때까지 들었다. 그리고 문자를 드렸다. "감사드립니다"라고.


이 노래로 나는, 또 한동안은 버틸 것이다. 


(2024년 3월, 김창완 아저씨는 23년 간 진행해 온 라디오 프로그램 <아침창>에서 하차했다. SBS는 그의 하차 이유를 '시대 변화'에 따른 결정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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