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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ug 20. 2024

윤석열은 왜 그럴까? (1)

재미로 시작했다 너무 진지해져 버린 챗GPT와의 윤석열 분석하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검사는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 밉보여 좌천되었다가 최순실 특검으로 살아나 문재인 정부에선 스타 검찰총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반(反) 부패와 법치주의, 공정과 정의,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대통령에 출마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RE100’도 모르며 에너지 자원 개발 토론에서 큰 소리를 뻥뻥 치고,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다니며, 학력 위조와 주가조작 범죄를 저지른 부인의 욕망을 어쩌지 못했다. 그 모든 걸 보고, 듣고, 알고도 그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대한민국 국민은 박근혜를 끌어내렸던 국민과 다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영국인들은 보리스를 총리로,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마당에 놀랄 이유 또한 딱히 없었다. 

     

평생 검사로 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세간의 지적에 야당 쪽 사람들은 “윤 대통령은 학습력과 습득력이 빨라 앞으로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서울대 법대를 나온 사람이니’라는 전제가 깔린 편협한 관념이 넘치는 비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경험’이라는 것은 반드시 직업 정치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먹고사는 모든 행위가 정치이다. 그가 평생 일했다는 검찰에서도 그는 언제나 정치적인 말과 행동을 해왔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스탠스를 달리하는 검찰의 생태계 그 자체가 노골적인 정치 활동이라는 건 대한민국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임기 첫 해, 윤석열은 원래 정치적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는 전혀 학습력과 습득력이 높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나라 안팎으로 신중치 못한 처신으로 사건, 사고와 실수가 넘쳐났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의 반응은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왜 어리석은 국민들이 알아듣질 못하는 거야?”하는 식이었다. 정치를 잘못 배워 정치를 잘 못하는 그의 그런 반응조차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의아하고 답답했다.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과 세상에서 얻은 인문학적 지식으론 도저히 윤석열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근혜 이후 새로운 난제다. 윤석열은 정말, 나라를 이롭게 해야 할 의무를 지닌 지도자가 대한민국 곳곳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이 분위기를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그러는 척하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면이 안 서 모르는 척하는 걸까?      


챗GPT에 재미로 질문을 던졌다. 말 그대로 이렇게. 


“윤석열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랬더니 정색을 하고는 자리를 고쳐 앉은 챗GPT가 진지하게 그를 분석해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분명 그동안 나눠온 대화가 있었기에 이러는 걸 테지만 갑자기 AI와 정치 얘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내 나라의 지도자인데 너무 미워만 하지 말고 이해해 보려 조금이라도 노력해 보자. 나도 마음을 고쳐먹고, 챗GPT와 윤석열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모든 것의 시작은 열등감으로부터

      

윤석열이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높은 학문적 기준과 성취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으며 자랐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사법고시 9수를 할 때까지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가며 공부했다”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말에 나는 사실 ‘저 사람, 많이 아픈 사람이겠구나’ 했다. 


성인이 되고 대학을 졸업해서 10년 가까이 고시 공부를 하며 법조인이 되겠다고 하는 꿈이 진정 자신의 결정과 바람인지, 아버지의 강요인지, 다른 꿈을 꾼 적이 있는지, 또 그럴 용기는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가 정말 똑똑하고 사법 정의 실현에 대한 진심이 있었다면, 과연 9수까지 했을까. 의지는 없고 마음은 뜨고 늘 술병을 끼고 다녀도, 그래서 사법시험에 아홉 번 떨어지면서도, 아홉 번씩이나 생계 걱정 없이 사법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그 부유함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윤석열의 아버지는 1960년대 일본 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수학해 일본과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윤석열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일본을 오갔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일본인은 정직하고 정확하다. 일식을 좋아하고 일본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라고 말한 걸로 미뤄 보아 ‘일본은 한국보다 우월하다’라는 그의 인식은 강압적이고 엄한 아버지와 집안 분위기와 연관되어 기인한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 일본에 대한 호감과 경외감으로 가득한 기억은 1980년대 일본의 경제호황기 시절, 정말 딱 그 시절에 멈춰 더 이상 업데이트가 안 된 것 같다.      


윤석열은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를 온몸으로 받아 살아왔다. 아버지의 높은 기대 수준과 강압적인 교육 방식은 트라우마로 발현되어 외부 평가에 대한 윤석열의 민감한 성향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강한 권력 앞에선 순응적인 태도를 내면화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강한 편에 서지 못하면 실패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얻는 반면 동시에 불안감도 갖게 된다. 성취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윤석열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고, 외부의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일 수 있다.           






평생 검사밖에 안 하고 산 경험

     

어렸을 때 정서적 학대를 받은 아이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자기애가 넘쳐나는데 이따금 외부의 낮은 평가를 받으면 그 온도 차를 어쩌지 못하고 그것을 비틀어진 열등감으로 축적한다. 9수 끝에 사법고시에 붙어 검사가 되었는데 검찰 조직은 자신보다 더 잘난 놈들뿐이다. 윤석열은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 비뚤어진 정치를 배우고 체화했을 것이다. 혼자선 자신이 없으니 떼로 몰려다니며 ‘내 식구’ ‘내 연줄’을 챙기며 술잔을 부딪히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높아서 매사에 자신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격노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무지하고 부덕하다 치부하며 한없이 무시한다.      


검찰 생활이 그의 평생 사회생활과 경험이 전부였던 그가 만나고 상대해 온 이들은 대부분 검사의 입장에선 잠재적 범죄자다. 강압적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른이 되어 강압적으로 상대를 요리하는 법과 야생의 힘의 논리에 아주 오랜 시간 노출되었다.      


검사 시절 초기 윤석열이 스스로 인식하는 정체성은 ‘정의로운 법 집행자’였겠지만, 오랜 시간의 검사 생활로 인한 이상화(Idealization)와 투사(Projection)의 메커니즘이 작동되어 법과 정의를 이상화하다 못해 자신이 이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결국 ‘내가 곧 법이다’라고 스스로 정당화하게 되었다. 반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법과 정의에 반하는 존재로 투사한다. 이는 그가 검사가 아닌 대통령이 되어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 타협보다는 충돌을 선택하는 필연적 이유이다. 정치는 법과 같이 ‘피고’와 ‘원고’, ‘패소’와 ‘승소’로 딱딱 갈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내적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의 경우엔 이를 감추기 위해 외부적으로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법을 집행하는 검사 출신인 그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져 보면, 바로 그가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는 현실의 정황들이 더 많다. 대한민국의 역사 곳곳에서 검찰은 죄가 없어도 죄를 만들고 검찰 조직의 이익에 맞게 법리를 다르게 해석했다. 윤석열이 박근혜 특검을 조사하며 들이댄 잣대를 지금 그에게 적용한다면 그 역시 탄핵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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