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간 5번의 내한으로 ‘최단기간 최다 내한’ 기록을 세운 트웬티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 이들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에디터가 외친 한마디, ‘Power to the Local Dreamer!’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LESS
오하이오의 허름한 공연장에서 단 5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무모한 점프를 시도했던 두 청년(타일러 조셉(Tyler Joseph, 보컬/건반)과 조쉬 던(Josh Dun, 드럼))이 믿은 건 오직 ‘로컬(Local)’의 힘이었다. ‘Power to the Local Dreamer’라고 쓴, 직접 만든 티셔츠를 앨범과 함께 팔며 차근차근 음악과 라이브 실력을 갈고닦았다.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5명의 관객이 수천 명이 되었고, 그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졌다. 이제 이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객의 숫자는 수천에서 수만이 되었다.
쉽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비틀어진 사운드로 덧입힌 이들의 음악은 달콤한 캔디를 그로데스크한 포장지로 감싼 것처럼 오묘하고 신비롭고 강력한 마력을 지녔다. ‘라이브를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밴드’라는 타이틀도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이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손과 목을 시꺼멓게, 혹은 시뻘겋게 칠한 뒤 무대에 오른다. 조쉬는 하늘이 뚫릴 듯 드럼을 연주하고 타일러는 무대마다 설치된 철탑 꼭대기까지 올라 지금 이 순간만 살 것처럼 노래한다.
두 번째 정규 앨범 <Blurryface>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금의환향을 축하한다!
타일러: 정말 기분 좋다! 우리의 여정에 또 하나의 스토리가 생겼다는 게 기쁘다. 하룻밤 사이에 얻은 결과가 아니기에 더 값진 거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 음악을 통해 성장해 왔다. 시간을 돌리더라도 다른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 내한 공연은 데뷔 앨범이 발매되기도 전이었다. 기억하나?
타일러: 당연히 기억한다. 한국은 우리가 밴드로서 처음으로 해외 공연을 했던 나라다. 2집에 수록된 ‘Tear In My Heart’의 첫 소절 “안!녕!하세요!”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무대 위에 올라가기 전에 말해왔던 문구다.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뒤 한국에 오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한국에 오면 첫 내한 공연에서의 좋은 추억이 계속 떠오른다. 매번 한국 공연을 통해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조쉬: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 페스티벌 무대였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릴 보러 와줄까 궁금해했다. 거짓말처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우리의 음악과 무대를 듣고 보러 와줬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조쉬는 드럼 칠 때 왜 항상 껌을 씹나?
조쉬: 오! 좋은 질문이다.(웃음) 어느 날 리허설을 하면서 껌을 씹고 있었는데 뱉는 걸 깜빡하고 본 무대에 올랐다. 그때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다. 무대 위에서 드럼을 칠 때 잔뜩 긴장되어 있는데, 껌을 씹으면 그런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나만의 위안이지.
라이브 공연 때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타일러에 비해 드럼을 떠나지 못하는 조쉬는 조금 답답하지 않나?(웃음)
조쉬: 무대 위를 돌아다니고 싶어도, 드럼 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아마 그럴 수 없을 걸. 대부분 밴드 드러머들이 많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지만 우린 조금 다르다. 드럼 위치를 바꾼다던지 다른 공간에 드럼 세트를 추가하던지 여러 가지로 계속해서 변화를 주고 있다. 앞으로도 항상 변화를 주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는 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멤버들 내면의 어둡고 불안한 정서를 녹여 독특한 질감의 음악을 완성했다. 개인적으로 앨범을 들으면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난다. 고통과 분노와 슬픔을 담고 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몬스터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결합 지점의 이음새가 2집에선 더 정교하고 매끈해졌다.
타일러: 원래 우리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여러 장르를 섞은 음악으로 시작한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어느 하나의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거니까. 음악은 무조건 자유로워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이 더 기대되게 만든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이, 우리 자신을 놀라게 할 테니까.
2집 수록곡 ‘Lane Boy’에서 1집으로 거둔 성공으로 인한 대중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엿보였다.
타일러: 첫 번째 앨범 <Vessel>을 만들 때는 압박감이란 게 없었다. 우리 음악을 듣는 팬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지. 하지만 두 번째 앨범을 만들 때는 큰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우리로부터 원하는 음악 스타일이 뚜렷했다. 그에 반해 우리가 스스로에 바라는 음악도 있었지. 자연스럽게 긴장감이나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감정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 어떤 뮤지션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곡을 쓴다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만약 우리가 만든 음악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 곡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비전과 대중들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Lane Boy’는 이러한 압박감을 인정하는 곡이다. 결론적으로 음악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이번 앨범에서 그런 점들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음악은 멜로디만 들으면 굉장히 쉽고 대중적이다. 반면 편곡을 거치며 다듬어진 질감은 굉장히 거칠고 강하다. 노래 안에 반드시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타일러: 굉장히 좋은 질문이다. 내가 송라이팅에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평소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노래를 통해서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을 일상생활에서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그런 점을 음악으로 풀어내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 않고 오히려 귀 기울이며 인지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떨 땐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고의 순간을 만들려고 한다. 이런 주제들을 우리가 좋아하는 사운드와 캐치한 멜로디를 통해 음악화시킨다. 가볍고 캐치한 멜로디에 어두운 가사를 쓰는 것이 우리가 음악을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대 위에서의 마스크나 분장은 평범한 청년이 슈퍼 히어로로 변신하는 스토리를 연상케 한다.
조쉬: 그렇다. 무대 위에서는 그곳만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술’이라는 형태를 통해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일상에서 이뤄지는 직접적인 소통 대신 관객들에게 우리를 보여주는 형태의 소통이 이뤄진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의 요소들이 중요하다.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거니까. 나의 다른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하다.
그러한 무대 위에서의 페르소나가 자신들의 일상에 거꾸로 영향을 주진 않나?
조쉬: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평상시에 마스크를 쓰거나 분장을 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무대 위의 모습도 내가 가진 것들 중 하나니까. 단지 일상에서 감춰져 있는 모습들이 무대 위에서는 허락되고 인정받기 때문에 표출할 수 있는 거겠지.
‘Tear In My Heart’의 “안!녕!하세요!”라는 문구가 첫 내한 공연에서 느꼈던 감정과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지금도 여전한가?
타일러: 데뷔 초부터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데에 익숙했다. 낯선 관객들과의 첫 만남은 항상 긴장되는 순간이고,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걸 알기에 우리는 언제나 최고의 첫인상을 심어주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 세계 어딜 가던 관객들과 처음으로 마주했던, 바로 그 순간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 그 첫 만남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쏟아붓고 나면 결국 그들이 우리를 다시 찾아주더라.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곳, 한국이다. 처음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었을까? 한국에 다시 오게 되는 건 항상 크나큰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ARENA HOMME+, September 2015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한국에서 음악 전문 에디터 일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할 때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어떤 인터뷰이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내가 “트웬티 원 파일럿”이라고 답할 때 온 세상 젊은이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트웬티 원 파일럿은 ‘21세기 로빈훗’이다. 누구나 젊음의 치기와 거만함으로 잠시 주장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잠시 가졌다고 착각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그 반항심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키워나가 혁명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이는 극히 소수다. 트웬티 원 파일럿은 지금 그걸 하고 있고, 2024년 최근 발매된 그들의 새 앨범 <Clancy>는 또다시 ‘가장 많이 팔린 올해의 록 앨범’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한국에 대한 의리와 애정을 과시하며 ‘Vignette’ 뮤직비디오에서 ‘조쉬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쓰인 후디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