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나는 밤낮없이 야자수 나무가 춤을 추고 파도가 부서지는 파라다이스에서 <오징어게임> 영희 코스튬을 하고 핼러윈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수년이 지났고, 저마다 국적은 다르지만 모두 저마다의 나라에 조그마한 수치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핥으며 사는 곳이었다.
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아니 참사 이후 내 나라의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어떻게든 한국인이 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이번 생에서 절대 숨길 수 없었다. 잘 살고 똑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버리거나 내가 내 자존심에 못 이겨 나는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라고 이실직고했고, 그러고 나면 한국에 대해 아는 건 ‘김정은’이 전부인 이들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들어 마음껏 농담의 소재로 삼으며 조롱했다. 그들에게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고향이 북한이며 죽을 때까지 영영 만나지 못할 당신의 가족을 그리워했다는 사실도,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가진 민족이 한 세기에 가깝도록 나뉘어 있는데 여전히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의 칼춤에서 언제나 북이나 치는 역할밖에 못 하는 무력함도, 한국의 정치인들은 남북의 갈등을 제 배 불리기에 써먹을 궁리밖에 안 하는 현실도, 징글징글하게 가난했던 기억의 트라우마로 허수아비 같은 무능력하고 아둔한 위정자의 편을 들며 툭하면 성조기와 태극기를 동시에 흔드는 한국의 애처로운 노년층도, 그들에겐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들고 세우고 위대하게 발전시켜 이를 온 세상에 수출했다고 믿는 서양의 수많은 나라 사람에게 북한과 김정은은 신기하고 흥미롭고 재미있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마음껏 비웃을 수 있는 희화화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말했다. 만약 네가 한국이란 나라에 갔다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어느 식당에 들어가 배가 고프다고 한다면 그들은 네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아무 대가 없이 차려줄 거라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간사하고 연약한 사람의 마음은 세계를 들썩인 BTS와 블랙핑크와 <기생충>, 코로나 방역과 <오징어게임>으로 또다시 으쓱해졌다. 더 이상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밑도 끝도 없는 조롱 속에 의기소침해지지 않게 되었고, 나는 그 수많은 국가적 참사의 트라우마를 겪고도 용기와 뚝심으로 가치를 이뤄내는 한국인들을 바깥에서 바라보며 경외감을 가졌다. 더 이상 악한 기회주의자들에 영향받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것을 이뤄내는 사람들이 한국에 더 많다는 사실로 나는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 파티에 함께 했던 영국인 친구가 갑자기 나를 불러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다며. 아무 생각 없이 앱을 연 순간, 요즘 친구들이 하는 플래시몹 같은 거라고 여겼다. 손가락을 몇 번 굴리다 누군가의 라이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됐고, 수백의 사람이 내가 자주 갔던 이태원 해밀턴 호텔 골목에 끼어 있었다. 다들 핼러윈 분장을 하고 있어 그 모습은 더 기괴하고 충격적이었고 비현실적이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이게 플래시몹이나 장난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나도 모르게 손발을 덜덜 떨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도, 그들도 핼러윈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2시간의 시차가 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거기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영국 친구가 온몸을 덜덜 떨며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한국에서 현실판 ‘오징어게임’이 벌어지고 있어!” 예전에 한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있다며 김치와 코리안 바비큐를 좋아한다던 그는 나만 보면 늘 두 손을 배꼽 아래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안녕하세요”를 또박또박 말하던 친구였다. 나는 처음으로 그 친구에게 쌍욕을 하며 뺨을 한 대 갈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아스팔트 길거리 바닥 위에 사람들이 뒤엉켜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과 무언가로 덮인, 숨이 멎은 사람들을 봤다. 여전히 골목에서 압사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이 떠나는 순간을 고통스럽게 지켜봤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나는 그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시간 이태원 근처에 있을 만한 친구들에게 연락했고, 그들이 무사하다고 해서 괜찮을 수 없는 우리를 알아챘다. 우리의 일상은 또다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남은 생에 핼러윈 파티는 절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이후 나는 혼자만의 도망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동안 나는 모든 게 내 잘못이라 생각하며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 사이에서 방황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정말 화를 내야 할 곳은 분명해졌다.
2022년 10월 29일, 159개의 우주가 사라졌다. 그들이 꾸던 꿈이 사라졌고, 미래가 사라졌고, 그들의 가족과 지인의 사랑이 갈 곳을 잃었다. 또다시 정부는 희생자와 유족을 외면하고 음모하고 조롱하며 진상 규명을 막아섰다. 대통령은 2년째 사과 한마디 없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여전히 대통령의 친구인 이상민이며 관할 구청도 경찰도, 그 누구도 침묵 속에 숨어 있다.
애도할 권리마저 빼앗긴 유족들은 옷을 겹겹이 입어도 살이 에이는 한겨울에 3보 1배를 하며 자식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과 이마를 대었다. 십 대에 세월호 참사로 친구들이 노란색 바다의 별이 된 걸 지켜본 아이들이 이십 대에 이태원 길거리에서 보라색 하늘의 별이 되었다. 테러도 아닌, 사고도 아닌, 정부와 행정의 직무 유기이자 인재인 사회적 참사를 또다시,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치유하지 못하고 그저 묻어두기만 했던 세월호의 상처를 되짚으며 깊은 상실과 체념에 빠졌다.
유튜브에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들이 서울의 안전과 치안에 감탄하는 영상이 떠돌 때면 나는 크게 비웃는다. 이태원은 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십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는 대통령이 집무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용산구였다. 나는 이태원 참사와 이후 상황을 지켜보며 만약 희생자 중 대기업 임원의 자식이나 유명 정치인, 혹은 정부 관료의 가족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본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아름다운 헌법이 있지만 여전히 사람마다 목숨값이 다르다. 태어나 평생 공부만 하다 수능 보고 대학 가서 파티 한 번 즐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어른들의 책임은 안전 규칙을 제대로 지키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적절히 대처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압사로 사망해 온몸 여기저기 터지고 멍든 몸에 마약 시약 검사를 하며 어떻게든 개인의 일탈로 자신들의 책임을 덮어씌우려 했다. 저출생이 국가의 최대 위기라는 나라가 청소년과 청년을 대하는 태도는 끔찍하게 가식적이고 구시대적이며 강압적이다.
나는 다시 으쓱해진 어깨를 내리고 고개를 떨군다. 대한민국은 사회적 안전망은 물론 심리적 안정감도 제공하지 못하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허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사회적 신뢰는 점점 더 무너지고 있다. 서럽고 억울하지 않으려면 돈과 권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한다. 그렇게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언제든 내가 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연대감과 희생자 유족에 대한 공감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함으로 손가락질받는다. 정치인들은 이 혐오로 배를 불린다.
내 삶이 극단의 절망과 우울로 빠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많이 놀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소리 지르고 더 많이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그래서 비난받지 않고, 그래서 비난받거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그래서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도 여전히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희생자의 운명의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참사 전후로 석연찮은 정황과 은폐된 진실이 너무 많다.
오늘 하루 유난히 파랗고 높았던 하늘과 고운 단풍이 들어가는 숲과 감칠맛 나는 김치찌개와 고소한 커피 한 잔이 사치스럽다. 내가 자주 가던 이태원과 내가 즐겼던 핼러윈 파티는 이제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 오늘을 추모 대신 파티로 보냈다고 해서 원망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당신이 안전하게 즐긴 오늘의 그 길거리 곳곳에 서서 경광봉을 흔들고 확성기로 지시하며 인파 관리를 한 경찰들은 2년 전 이태원의 희생 때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희생이 누군가의 안전으로 이어졌다.
나에겐 노란색 리본에 보라색 리본이 하나 더 늘었고, 매년 추모해야 할 날이 하나 더 늘었다. 아직은 분노하지 않고 기억하기 힘들다. 그래도 내가 절망하지 않는 건 추모식에 수북이 쌓인 국화꽃과 보라색 목도리를 두른 희생자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노란색 목도리를 두른 희생자 엄마 때문이다. 왜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참사 희생자의 유족은 언제나 투사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용산구에서 수많은 이들의 경호에 둘러싸여 술이나 퍼마시고 있을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이들을 위해 159개의 우주를 품고 오늘도 기도하며, 바다의 별, 하늘의 별이 된 친구들을 기억한다. 책임을 피해 달아난 이들의 삶이 살아있는 지옥으로 변하는 걸 지켜볼 것이다. 이것은 저주가 아닌 내가 이 세상에 가진 최소한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