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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02. 2024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 진짜 인생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아직도 방황중이고 아직도 우울하며 아직도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다. 


기분이 뜨거나 좋을 때 발휘했던 추진력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무기력과 우울만 남았다. 

리페리돈을 0.5에서 1밀리그램으로 늘려 처방받았고 아무 이유없이 흐르던 눈물은 말랐지만 온통 짜증과 허탈함과 무기력, 그리고 몽롱한 상태의 졸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난 이제야 증량의 부작용에서 벗어났다. 약에 익숙해진 것이다. 한번 증량되면 계속 먹어야 하는 약. '내가 왜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해?' 라는 물음을 갖고 안먹는 순간이 재발의 위험이 가장 높은 순간이다. 난 왜 이런 병을 얻게 된 걸까. 


요 근간에 제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실 약을 먹고 있다.', '의사 상담을 받고있다.' 라는 말을 대화의 상대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순간 그 관계는 어쩔 때에는 갑을 관계가 되어버리고 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나만 상처와 상대에 대한 미움만이 남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숨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건 정말 슬프다.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난 이렇게 태어날 운명이었던가. 왜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하는 일은 왜이리 반복적이고 대체 가능하고 무의미 할까. 왜이리도 단순할까.

오래 봐주셨던 상담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마음을 다잡은 뒤에 적성에 맞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해봐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도 어느정도 걸어봐야지 다른 길을 갔을 때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말이다. 맞아, 맞다. 이 일을 그만두면 나는 '아무리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맞지 않는 일 같아도 조금 더 버틸걸' 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가르치는 일을 직접 하고 싶었지만 언어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많이 잊어버리고 복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기주도식 학원에서 시간관리와 진도관리, 전화받기, 결제, 물컵갈아주기, 책상닦는 일을 선택했다. 그 일이 싫어서 이제는 방통대도 다니고 영어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중이다.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할까 제네럴리스트가 되어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해야하는 일도 모르겠는 이 상태. 정말 지겹다. 어찌나 한결같은 질문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계속 영어를 검색어로 한 알바사이트만 뒤지며 삼일절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토요일도 공부는 안하고 계속 사이트를 뒤지며 이직할 곳만 찾고 있다. 현타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일 아닌 것을 1년 4개월을 하고 있으니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묵묵하고 성실하고 시키는 일은 다하는 성격이 상사에게는 정말 좋은 성격일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참 멍청하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나도 잘 살고 싶다. 


나에게 잘산다는 정의는 어떤 것일까?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며 보람있게 살아가는 것. 그뿐이다. 거기에 재테크까지 잘해서 경제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는 참 내성적이고 부끄러움도 많이타고 자기 검열도 심하고 내가 하는 말에 확신이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일을 하면 좀 바뀌어야 할 부분도 많은 데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죽도록 노력도 안해봤다. 그리고 죽도록의 노력이란 나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살면서 절실히 느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근차근이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 납득이 안되는 포지션에서도 노력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미국 유학생이었지만 심각한 우울증으로 유학 실패자로 돌아온 이후 정말 많은 방황을 하며 줏대없이 교주같은 교수의 열정에 홀랑 넘어가 버리기도 했던 나는 누군가가 절궈놓은 단물에서 조금씩 벗어나 이제는 삶의 주인이 되어 쓴맛을 보며 그 뱡향을 찾아나가고 있다. 이것 만으로도 놀라운 성장이 아닌가 싶다. 정말 이제 삶의 주체로서 외줄 타기를 하며 흔들릴지언정 그 방향을 찾아나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나도 내 자신을 모르겠다. 어쩔 땐 지독히도 믿지 못하겠다. 하지만 믿을 것이라곤 주어진 오늘 하루에 무엇을 할 것인지의 계획과 최선을 다하는 순간들일 것이다. 나는 답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차선의 선택일지언정 최선을 다해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여정의 맛이 매우 쓸지언정 그 희열과 보람은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픔도 많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비밀도 많지만 어쩌면 제일 사랑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이어서 기분의 오르내림이 더 다이나믹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화이팅이라는 말보다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내고 싶다. 


'그럼에도 잘 견뎌냈다. 수고했어. 잘 해왔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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