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식재료 손질과 요리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거의 살림을 할 일이 없다. 정리나 청소 같은 일들은 그나마 퇴근 후 잠깐씩 짬을 내어 하고 있지만, 요리는 주말에만 하게 된다. 요리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나름 요리에 꽤 관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실력은 늘 제자리 걸음이다.
아이가 생기면서 요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배로 늘어났다. 젖만 먹던 아기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내가 먹을 것 외에 아기 음식을 따로 준비하게 되었고 당연히 요리에 걸리는 시간은 배로 늘어났다. 아기가 죽 형태의 이유식을 먹을 때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 두는 요령을 피울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기가 두 돌이 넘어 밥과 반찬을 제대로 먹여야 하기 때문에 매 끼니 꼼짝 없이 아이 밥상, 어른 밥상을 따로따로 준비해야 한다.
아이와 어른 식사를 각각 준비해서 온 가족이 제 시간에 따끈하게 먹을 수 있도록 착착 준비하는 건 살림의 영역에서 최고난도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늘 살림 초보 단계에서 헤매고 있는 내게 주말마다 삼시 세끼를 차리는 일은 정말 너무 어렵다. 허둥대다 보면 주방은 폭탄맞은 것처럼 엉망이 되고, 생각했던 식사 시간보다 한참 지나서야 겨우 상을 차리게 된다. 먹고 치우고 나면 또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한다.
"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에 언젠가부터 "밥 해 먹다 다 갔어요."라고 답하게 됐다. 그렇다고 엄청 근사하게 차려 먹은 것도 아닌데,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끼니 차려 먹는 일이 힘든가,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고민해 보다가 살림 경력 40년 고수인 엄마에게 여쭤봤다.
"엄마, 난 밥 차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아주 쿨했다.
"원래 밥 차리는 게 제일 힘들어!나도 맨날 오늘은 뭐 차리나 고민이다."
그렇다. '밥 차리는 일'은 살림계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에게조차 '제일 힘든 일'이다. 역시 이건 최고난도의 살림 영역이 맞다. 고수도 힘겨워 하는 일을 감히 초보 따위가 쉽게 하려 했다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외식을 하거나 배달시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애초에 쉽게 갈 수 없는 일이라면 즐기면서 갈 방법이라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밥 차리는 일을 극도로 힘들어 하는 이유는 '제 시간에 맞춰' 차리는 일이 어려워서였다. 요리실력도 부족한데다가 손도 빠른 편이 아니라서 뭐 하나 장만하는데 워낙 오래 걸리다보니, 요리를 하다 보면 늘 시간에 쫓겨서 허둥대다 결국은 실수도 하고 짜증도 내고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내 취미 중 하나는 요리책 보기인데, 정기구독 중인 요리잡지나 그때그때 보던 레시피 책에서 주말에 해 보고 싶은 요리를 미리 체크해 둔다. 그리고 주말이 다가 오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감안해서 식단을 대충 생각해 두고, 추가로 장 볼 것들이 있으면 메모해 뒀다가 마트에 갔을 때 구입한다.
요리할 때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과정이 식재료 손질이기 때문에 밑손질을 요리하기 전날 밤에 해 놓는다. 미리 손질해 둔 재료로 바로 요리를 하게 되면 훨씬 여유있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어서 밥상 차리는 일이 한결 즐겁다.
이번 주말은 그런 식으로 느긋이 '1박 2일 요리'를 해서 꽤 만족스러운 밥상을 차려냈다. 요리책을 보다가 요즘 제철인 미나리가 먹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서 메모해 뒀다가, 토요일에 마트에 갔을 때 마침 행사판매 중인 싱싱한 미나리를 발견해서 사 갖고 왔다. 역시 행사 중이었던 꼬막도 한 팩 집어들어 왔다.
미나리는 깨끗이 씻어야 하기 때문에 손질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토요일 밤 아이를 재운 후 일요일에 먹을 미나리를 미리 손질하기로 했다.
미나리는 거머리나 벌레가 있을 수 있어 식초를 탄 물에 담궈 두어야 한다고 들었다. 여유로운 토요일 밤, 미나리를 담궈 놓고 TV를 틀었다. 미나리를 담궈 놓은 동안 나는 느긋이 소파에 드러누워 주말의 여유를 만끽했다.
시간이 지나 미나리를 물에 헹궈줄 차례. 요리를 바로 해야 하는 경우면 이렇게 재료를 씻을 때 마음이 조급하고 짜증이 난다. 마치 마감을 코앞에 두고 한껏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처럼. 그러나 느긋한 토요일 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 TV를 봐 가며 재료를 손질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룰루랄라 여유있게 한 줄기 한 줄기 깨끗이 미나리를 씻어내고 물기도 탈탈 털어 적당한 크기로 썰어 냉장고에 넣어뒀다. 고작 미나리 하나 손질했을 뿐인데 뭔가 굉장히 큰 짐을 덜어낸 것 같고 마음이 가뿐하다.
손이 느리면 느린 손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느려도 목적지로 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요리나 살림을 할 시간이 없다고 바쁜 삶에 압도되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부족한 시간에 맞게 욕심내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