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아기의 흔적 느끼기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 외국에서는 직원이 야근을 하면 '무능력'과 연결지어 생각한다고 들었다. 일을 맡은 직원의 역량이 부족해서 제 시간 안에 끝내지 못했거나, 일을 맡긴 상사가 부하 직원이 해야 할 업무량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했거나. 일을 지시한 사람이든, 일을 직접 맡아 하는 사람이든, 어쨌든 야근은 누군가의 무능력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야근이란, 아직 대다수 기업들에겐 당연한 것, 혹은 묵묵히 많은 일을 해내는 사람의 노력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즉 야근은 곧 성실을 의미하며, 업무 결과나 성과와 관련 없이 제 시간에 제깍 퇴근하는 사람은 개인주의적이고 팀워크가 부족한 사람, 야근하는 사람은 본인의 시간을 희생해 가며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 오늘도 야근이야."라는 말 속에는, 물론 개인 시간을 빼앗겨 가며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성실한 사람이다'라는 일종의 과시도 숨어 있다. "요즘 회사 일 많아?"라고 안부를 물으면 습관적으로 "일이 많다", "야근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제 시간에 퇴근해"라고 얘기하면 왠지 일을 열심히 안 하는 사람 같다. 우리나라 회사가 대체로 일을 많이 시키는 것도 사실이지만 , '야근=성실'이라는 공식이 워낙 오랫동안 확고히 자리잡다 보니 직장인들 스스로가 오랜 시간 근무하는 걸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 시간에 퇴근하는 걸 쑥스러워 한다.
오늘은 갑자기 쏟아진 급한 업무가 있었고, 하필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어서 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새벽 2시를 훌쩍 넘겨 퇴근했으니, 야근 중에서도 아주 강도가 센 편이었다.
아, 새벽 퇴근이라니...오늘은 정말 너무 심한 날이었다. 현관에서 신발도 겨우 벗고 쓰러질 듯 비틀대며 집 안으로 겨우 발을 들여놓았다. 살림은 커녕 손가락 까딱할 힘 하나 없다.
아기가 자고 있는 안방에 살금살금 들어가는 것조차도 힘에 겨워서 그냥 거실에 대자로 드러눕는다. 멍하니 누워 있다보니 거실에 흩어져 있는 아이의 장난감이며 책 등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하루 아이의 손길이 닿았을 물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남편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놓긴 했지만, 아이가 여기저기 흩어 놓은 물건들을 완벽하게 치우지는 못한 상태다. (이건 나도 불가능하다.) '오늘도 장난감 주방 위에 이것저것 물건을 많이도 끌어다 놓았구나', '저 인형은 한동안 관심도 안 보이더니, 제자리에 안 있는 걸 보니 오늘은 갖고 놀았나 보네.' 등등,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의 물건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아이가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상상해 본다. 집으로 너무 늦게 돌아온 엄마는 그렇게 아이가 하루를 보낸 흔적들을 정리하며 아이를 못 본 아쉬움을 달랜다.
이제 씻고 우리 아기가 코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야지.
아기가 깰까 봐 비록 자장가는 불러주지 못하겠지만, 아기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통통한 양 볼에 입도 살며시 맞춰야지. 그리고 새근새근 잠든 아가 옆에 고단한 내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해야겠다. 참 힘든 하루였다. 이제 굿나잇.
*솜씨꽝도 한다! 야근한 날의 살림 Tip*
야근하고 온 날은 씻는 것도 생략한 채 일단 쓰러져 자고 싶겠지만, 5분 더 일찍 잔다고 피로가 더 빨리 풀리는 건 아니다. 귀찮더라도 간단하게라도 꼭 씻어서 그날의 피로를 떨치고, 집안도 잠깐이나마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자.
특히 거실이나 방이 어질러져 있을 때, 전날 밤 조금이라도 정리하고 자면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워킹맘이라면 아기의 장난감을 정리하며 야근하느라 못 본 아기의 흔적들을 느껴보는 시간도 잠깐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