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 - 세면대 배수구 뚫기
퇴근하고 돌아와 씻고 양치를 하는데, 세면대에서 물이 잘 내려가질 않는다. 물이 점점 차오르는 걸 보면서 "아, 맞다!"를 외쳤다. 배수구 뚫는 걸 또 깜박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써 일주일 넘게 이 짓을 반복하고 있다. 배수구 뚫어주는 세제도 집에 있는데, 그 세제를 콸콸 쏟아붓기만 하면 되는데, 그 간단한 일을 못해서 며칠째 차오르는 물을 보며 바보같이 "아, 맞다!"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세면대에 물이 차는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아아아, 양치 후 입을 헹구느라 잠깐 물을 틀었을 뿐인데 홍수가 날 지경이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기에 오늘의 살림은 무조건 배수구 뚫기로 정했다.
베란다 구석에 있던 세제를 꺼내온다. 꽃샘추위 때문에 야밤의 베란다는 춥다. 사실 그동안 밤에 베란다 나가기가 너무 싫어서 미뤄왔던 것도 있다. 부르르 떨며 세제를 꺼내고 얼른 따뜻한 거실로 쏙 들어온다. 세제는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던 탓에 먼지가 수북하다. 먼지를 슥슥 닦아낸다. 이것도 하기 싫었던 일 중 하나다. 먼지를 닦다보면 손에 어김없이 묻는 그 느낌이 참 별로다. 뚜껑을 열고 적당량을 막힌 배수구에 콸콸 쏟아붓는다. 락스 계열의 강한 냄새가 확 올라온다. 이것도 배수구 뚫기 작업을 하기 싫은 이유 중 하나다. 욕실 환기팬을 틀고 얼른 멀리 피신온다.
후, 이제 다 끝났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은 시원하게 잘 내려갈 거다. 세제 한 번 붓는 이 쉬운 일을, 하기 싫은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고 또 미루고 의도적으로 까먹고 있었다. 막상 하면 너무 쉬운 일인데, 안 하려고 마음 먹으면 세상에서 하기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긴, 어디 배수구 뚫는 일만 그러할까. 세상에는 쉽고도 어려운 일이 참 많다.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가족과 함께 할 때만큼은 스마트폰 내려놓기, 알람시간에 맞춰서 바로 일어나기!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모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인데, '바빠서','피곤해서','의지가 약해서'라는 각종 핑계를 대며 다들 어렵다고만 한다.
김정운 저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독일의 내 지도교수는 사람이 하는 일에 'can not(할 수 없다)'은 없다고 주장한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can not'이 아니고 'will not(하고 싶지 않다)'이라는 것이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다른 일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려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인간의 몸만으로 하늘을 난다든가 하는 인류 특성상 정말 불가능한 일을 제외하고는 없다.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아직 하지 않은 것이지, 영원히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일주일 동안이나 배수구를 뚫지 '않다'가, '오늘은 꼭 하겠다'고 마음을 먹자 30초만에 바로 해치운 것처럼.
일주일 동안 질질 끌지 않았으면 진작에 뻥 뚫린 세면대에서 깔끔하게 씻었을 텐데, 며칠을 계속해서 물이 차는 답답한 장면을 봤던 걸 생각하니 좀 한심하기도 하다. 베란다가 추워봤자 얼마나 춥다고 그 세제통 하나 꺼내오는 데 일주일이 걸렸을까. 30초면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7일 걸려서 어렵게 했다.
아! 처음부터 그냥 남편에게 시킬 걸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다음에는 가장 쉬운 이 방법을 쓰기로 하고, 오늘도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