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도 어려운 일

오늘의 살림 - 세면대 배수구 뚫기

by 글쓰는하루

퇴근하고 돌아와 씻고 양치를 하는데, 세면대에서 물이 잘 내려가질 않는다. 물이 점점 차오르는 걸 보면서 "아, 맞다!"를 외쳤다. 배수구 뚫는 걸 또 깜박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써 일주일 넘게 이 짓을 반복하고 있다. 배수구 뚫어주는 세제도 집에 있는데, 그 세제를 콸콸 쏟아붓기만 하면 되는데, 그 간단한 일을 못해서 며칠째 차오르는 물을 보며 바보같이 "아, 맞다!"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세면대에 물이 차는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아아아, 양치 후 입을 헹구느라 잠깐 물을 틀었을 뿐인데 홍수가 날 지경이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기에 오늘의 살림은 무조건 배수구 뚫기로 정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324231052_1_filter.jpeg 속 시원하게 뚫어봅시다!

베란다 구석에 있던 세제를 꺼내온다. 꽃샘추위 때문에 야밤의 베란다는 춥다. 사실 그동안 밤에 베란다 나가기가 너무 싫어서 미뤄왔던 것도 있다. 부르르 떨며 세제를 꺼내고 얼른 따뜻한 거실로 쏙 들어온다. 세제는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던 탓에 먼지가 수북하다. 먼지를 슥슥 닦아낸다. 이것도 하기 싫었던 일 중 하나다. 먼지를 닦다보면 손에 어김없이 묻는 그 느낌이 참 별로다. 뚜껑을 열고 적당량을 막힌 배수구에 콸콸 쏟아붓는다. 락스 계열의 강한 냄새가 확 올라온다. 이것도 배수구 뚫기 작업을 하기 싫은 이유 중 하나다. 욕실 환기팬을 틀고 얼른 멀리 피신온다.


후, 이제 다 끝났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은 시원하게 잘 내려갈 거다. 세제 한 번 붓는 이 쉬운 일을, 하기 싫은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고 또 미루고 의도적으로 까먹고 있었다. 막상 하면 너무 쉬운 일인데, 안 하려고 마음 먹으면 세상에서 하기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긴, 어디 배수구 뚫는 일만 그러할까. 세상에는 쉽고도 어려운 일이 참 많다.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가족과 함께 할 때만큼은 스마트폰 내려놓기, 알람시간에 맞춰서 바로 일어나기!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모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인데, '바빠서','피곤해서','의지가 약해서'라는 각종 핑계를 대며 다들 어렵다고만 한다.


김정운 저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독일의 내 지도교수는 사람이 하는 일에 'can not(할 수 없다)'은 없다고 주장한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can not'이 아니고 'will not(하고 싶지 않다)'이라는 것이다.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다른 일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려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인간의 몸만으로 하늘을 난다든가 하는 인류 특성상 정말 불가능한 일을 제외하고는 없다.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아직 하지 않은 것이지, 영원히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일주일 동안이나 배수구를 뚫지 '않다'가, '오늘은 꼭 하겠다'고 마음을 먹자 30초만에 바로 해치운 것처럼.


일주일 동안 질질 끌지 않았으면 진작에 뻥 뚫린 세면대에서 깔끔하게 씻었을 텐데, 며칠을 계속해서 물이 차는 답답한 장면을 봤던 걸 생각하니 좀 한심하기도 하다. 베란다가 추워봤자 얼마나 춥다고 그 세제통 하나 꺼내오는 데 일주일이 걸렸을까. 30초면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7일 걸려서 어렵게 했다.


아! 처음부터 그냥 남편에게 시킬 걸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다음에는 가장 쉬운 이 방법을 쓰기로 하고, 오늘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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