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징글징글한 공짜들

오늘의 살림 - 샘플 화장품 정리

by 글쓰는하루

연재를 시작한 이래 거의 매일 한 편씩 글을 올렸건만, 지난 주말 내내 끙끙 앓느라 글자 한 자 적을 수 없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워킹맘들에게 체력 관리는 참 어려운 부분이다. 워킹맘 곁에는 항상 ‘감기’나 ‘몸살’이라는 고약한 친구들이 배회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살짝 무리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등 조금만 틈을 보이는 순간 사정없이 덤벼들어 허약한 워킹맘의 목덜미를 잡아채 버리기 때문이다.



호되게 앓고 난 후에는 늘 무리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생활하지만, 컨디션이 어느 정도 올라온다 싶으면 어김없이 지난 과오를 잊어버리고 또 몸을 함부로 쓰고 체력 관리에 실패한다.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또 앓고, 괜찮아질 때 쯤 또 아프고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체력 자체가 너무 약해져서 아주 작은 자극에도 몸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별로 무리한 것도 아닌데 몸살이 몰려오는 걸 느낄 때면 ‘아, 나도 정말 이제 몸이 훅 가버렸구나’하고 탄식하게 된다.



이번에 앓아누웠던 이유는 그 동안 피로가 누적된 데다가, 금요일 밤에 평소보다 스케일 큰 살림을 벌이면서 사단이 났다. 불금이라고 너무 의욕이 앞섰던 모양이다. 나에게 몸살이라는 훈장까지 선사한 금요일 밤의 살림은 바로 ‘샘플 화장품 정리하기’였다.




화장품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한아름씩 받아온 샘플 화장품들. 집에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샘플 화장품들이 많아도 ‘공짜니까’ 무조건 받아오고 또 받아왔다. ‘쓰던 화장품 떨어지면 꼭 이 샘플들을 사용하리라’ 마음먹고 서랍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았지만 그것들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쓰려다가도 ‘아! 샘플 화장품들은 여행갈 때 더 유용하지’라는 생각에 사용을 미루고, 계속 본품만 쓰고, 본품이 떨어지면 또 사러 가고, 또 샘플을 받아오고, 또 서랍에 쌓아놓고...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화장대 서랍 하나 가득 샘플이 넘쳐나고, 서랍 하나 차지한 것도 모자라 욕실 수납장에까지 샘플이 쌓이게 되었다.




안 그래도 수납 공간이 부족한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마음먹고 집안 구석구석 처박혀 있던 샘플 화장품들을 모아와서 거실에 쏟아 부었다.


와장창 거실에 쏟아 부은 샘플 무더기



그냥 정리하면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내가 유일하게 TV를 트는 시간인 금요일 밤 11시로 시간을 정했다. 나는 요즘 엠넷에서 방영 중인 <프로듀스 101>을 보며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푸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소일거리 삼아 샘플 화장품을 정리하면 딱일 것 같았다.


somi.png 소미야, 이모가 응원한다!♡


거실 바닥에 쏟아 부은 샘플 화장품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정리해 나갔다. 첫째, 버릴 것들! 받은 지 몇 년씩 지났거나, 딱 봤을 때 무슨 화장품인지 기능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은 미련없이 쓰레기 봉투로 직행! 둘째, 제품 종류별로 분류. 클렌징 관련 제품, 팩 제품, 스킨(토너), 에센스 및 세럼, 크림, 헤어제품, 바디제품으로 카테고리를 나눠 샘플들을 분류했다. 셋째, 정리하면서 양이 정말 작은 크림 류는 즉석에서 뜯어서 얼굴에 슥슥, 손에 슥슥 바로바로 발라주고 치웠다.


sample.png 정리하다가 뜯어서 얼굴에 촉촉하게 발라줍니다~ 빈 껍데기는 바로 쓰레기통으로!


기준이 명확했고, 버리기로 마음먹은 제품들도 많았기 때문에 TV 보면서 슬슬 하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프로듀스 101>을 다 볼 때까지 나의 분류 및 폐기 작업은 끝날 줄을 몰랐다. 어차피 멍하니 TV 보는 시간 동안 손을 놀리면 뭐 하나, 이거나 해 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 단순한 분류 작업이 어찌나 힘든지 부업으로 인형 눈 붙이고 봉투 붙이는 기분이었다.



거실에 판을 벌려 놓았기 때문에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었다. 이걸 중간에 하다 만 채로 놔두면, 아침에 아기가 깼을 때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 난장판이 될 것이다. 목숨 걸고 치워야 한다! <프로듀스 101>의 다음 회 예고편이 나올 무렵,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분류 작업에 속도를 가했고 분류한 샘플을 넣을 적당한 파우치들을 찾기 시작했다.


sample_1.png 눈물의 정리 끝!!!!


마침내 새벽 1시 반이 넘어서야 모든 작업을 마치고 수영복이 들어있었던 파우치, 그리고 샘플 얻을 때 같이 얻었던 파우치들에 종류별로 샘플을 집어넣었다. 일부러 내용물이 비치는 투명한 파우치들만 골라서 화장품을 집어넣었다. 당장 쓸 가능성이 높은 것들은 종류별로 구역을 나눠 작은 상자에 넣어 주었다.



서랍과 욕실을 차지하고 있던 샘플 더미들은 그렇게 1개의 상자와 3개의 파우치, 1개의 미니파우치로 정리되었다. 기존에 샘플들이 넘쳐나던 서랍의 반 정도 공간으로도 수납이 충분하다.욕실 수납장을 굳이 이용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획기적으로 정리했지만, 정리가 끝난 샘플들을 보고 있는 나의 심정은 뿌듯하기보다는 허탈했다. 쓰지도 못할 것들을 왜 이렇게 많이 챙겨 와서는 집 안의 수납공간을 잡아먹고, 분류하느라 이렇게 에너지를 쓴 것일까.



정리의 달인들은 아마 이 샘플화장품들은 모.조.리. 갖다버리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미련한 여인네는 최소한의 것만 버리고 기어코 저렇게 정리를 했다. 샘플들과의 세 시간 여의 사투 끝에 나는 장렬하게 몸져 누웠다. 그래서 후회하느냐고? 아니!! 이번엔 저 샘플들 꼭 쓴다니까!! 이렇게 몸살 날 만큼 분류했으니까 꼭 쓰고 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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