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엉망진창 휴가

오늘의 살림 - 거울 닦기

by 글쓰는하루

오늘은 회사에 휴가를 냈다. 워킹맘에게 휴가란, 근무하는 장소를 사무실에서 집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휴가도 평소 아기를 봐 주시는 엄마가 볼 일이 있으셔서 낸 것이었다.


이왕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으니 오늘은 기필코 살림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밀린 빨래도 하고, 항상 골치아픈 옷방도 정리하고, 침구들도 깨끗이 먼지를 털어내야 겠다고 나름대로 살림 목록도 만들었다.


그렇게 야심찬, 지금 생각하니 허황된 목표를 갖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요 며칠 계속 야근을 하며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온몸으로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아기를 낳기 전이었다면 대낮까지 그냥 에라 모르겠다 늘어지게 자 버렸을텐데, 아이가 있으니 기상 시간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아이가 계속 "엄마, 인나 (일어나)!"를 외치며 내 손을 잡아끌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찔러댄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계속되는 아이의 공격에도 꿈쩍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집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한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꺽꺽 우는 아이를 두고 더 이상은 눈을 붙일 수 없는 노릇. 아이 아침도 먹여야 하니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일어난 후부터는 대체 하루가 어찌 돌아갔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놀아준 것' 밖에는 한 일이 없는데 나는 너무나 바빴고 녹초가 되었다. 저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단순한 일과를 보내는 동안 얼마나 잔손이 많이 가고 얼마나 욱하는 순간이 많았는지, 차라리 회사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숙련되지 않은 주부가 집에서 보내는 하루는 그야말로 실수 연발과 재앙이었다. (전업주부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결국 빨래는 커녕 세탁기 근처에도 못 갔고, 옷방 정리는 커녕 아이가 던져버린 옷만 겨우 주워서 걸었으며, 침구 청소는 커녕 자고 일어난 이불도 개지 못했다.


나의 목표인 하루 하나 살림을 실천하려면 회사에 다녀왔을 때보다 더 초스피드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오늘 가까스로 한 살림은 '거울 닦기'.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323230302_0_crop.jpeg 우리집 거울왕자님

평소 아이가 손거울을 좋아해서 집안에서 자주 들고 다닌다. 처음에는 혹시 깨뜨려서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했는데, 주의를 많이 줘서 그런지 본인이 조심해서 잘 갖고 다니길래 특별히 제지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들고 다니면서 유리가 있는 면을 손으로 비비거나 주물러서 거울에 늘 얼룩이 많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323230800_1_crop.jpeg 거울이 얼룩덜룩

거울을 반짝거리게 닦는 방법들을 찾아봤는데, 식초를 탄 물을 뿌려 신문지로 닦는 방법, 린스를 묻혀 닦는 방법들을 많이 쓰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방법들조차 오늘의 나에겐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다. 분무기도 눈에 안 띄는데 어디다가 식초물을 타서 뿌릴 것이며, 린스를 묻히면 또 물로 헹궈야 할 것이 아닌가.


결국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유일한 살림 고수, 엄마의 팁을 따르기로 했다. 예전에 엄마가 우리집에 극세사로 된 얇은 타월을 하나 갖다놓으시면서 이걸로 거울 닦을 때 쓰라고 하셨던 게 생각났다. 그때 엄마는 뭐 묻힐 필요도 없이 이걸로 문질러주기만 하면 된다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하셨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323231348_2_crop.jpeg 바로 이 녀석입니다!


알겠다고 하고는 처박아 두고 안 썼는데, 오늘 딱 생각이 났다. 오늘만큼은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정보 말고 엄마의 말을 따라 보기로 했다.


손거울에 하아아~ 입김을 불고 천으로 슥슥 닦았더니 1분도 안 걸려서 거울의 얼룩들이 사라졌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323231714_3_crop.jpeg 깨끗해진 거울♡


오오. 내친 김에 욕실로 달려갔다. 욕실 거울도 물과 비누가 튀어 생긴 얼룩들이 가득하다. 너희들도 우리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특수무기로 물리쳐 주겠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323232324_5_filter.jpeg 사진상으론 잘 표현되진 않지만 온통 얼룩덜룩하다.


욕실 거울은 얼룩이 많고 면적도 넓어서 물을 좀 묻혀서 닦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한쪽에 물을 발라 거울에 물기를 살짝 묻혀 준다는 느낌으로 슥슥 닦은 후, 천의 마른 부분으로 물기를 부드럽게 닦아냈다. 얼룩들이 속 시원하게 사라지는 게 보인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323232718_7_filter.jpeg 거울이 요렇게 말끔해졌어요!

극세사 타월 한 장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유리 세정제도, 식초물도, 린스도 없이 오직 천 한 장으로 말끔한 거울을 갖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짧은 시간만에! 그 어느 날보다도 부산스러웠지만 별 소득은 없었던 오늘 하루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깨끗한 제 얼굴에 비치는 주인님이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모두 예쁘고 멋집니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이 얼룩덜룩하게 보이지 않도록,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거울이 제대로 비춰줄 수 있도록 집에 있는 거울을 깨끗하게 닦아보세요. 극세사 천 한 장과 1분의 시간이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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