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 - 살림살이 장만
뉴스를 보면 여기저기 힘들다, 어렵다는 얘기 뿐이다. 나 역시 요즘은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힘들었던 IMF때의 암울했던 분위기가 재현되는 듯한 요즘이다. 사실 그때는 아직 학생이었고 철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저 아버지가 힘드시겠구나 막연히 짐작만 했을 뿐 경제 상황의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을 100% 체감하지는 못했다.
IMF 이후 거의 2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철이 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기업의 어려운 상황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모두가 어렵다고 외치는 요즘, 나는 그 중에서도 언론에 단골로 오르내릴 정도로 위기를 겪고 있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까닭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쭉 일을 해 왔다. 그렇게 살면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평수의 집을 사고, 그 집 거실에는 피아노를 한 대 놓고, 휴가철에는 여행을 다니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건, 요즘에는 부자나 할 수 있다고 한다. 나 같은 평범한 월급쟁이들에게는 그게 너무나 큰 꿈이라고 한다.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건만, 나에게 남은 건 전세금을 올려주다가 울며 겨자먹기로 집을 구입하며 은행에 진 빚 뿐이었다. 꿈꿔왔던 평수보다 작은 집이지만, 그나마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앞으로 30년간 은행에 성실히 돈을 갖다줘야 한다. 피아노를 놓을 공간은 당연히 없다. 허리띠를 한껏 졸라매야 하는 처지에 당분간 여행은 생각도 할 수 없다.
회사에서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입사 이래 이렇게까지 회사가 어려움에 빠진 건 처음 봤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언제 잘릴 지 몰라 불안해 하며 하루를 보내는 일도 참 고역이다. 이렇게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자연히 소비도 줄이게 되고 개인적인 쇼핑 같은 건 가장 후순위로 밀린 지 오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도 있는 거지,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도 올 거야, 나를 다독이며 외식도 줄이고 쇼핑도 멀리하며 지냈다. 아, 그런데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니 마음도 흔들린다. 며칠 전부터 핑크빛 신발이 자꾸 눈에 밟혀서 속상하다.
거리에는 벌써부터 봄 색깔로 화사하게 멋을 낸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고 싶다. 오늘따라 칙칙한 겨울 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유난히 초라해 보인다. 예전 같으면 며칠 동안 계속 생각날 정도로 맘에 드는 신발이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속상하다. 그깟 신발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속상해 하나 싶어서 더욱 맘이 상한다.
가라앉은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지하철 역에 있는 다이소 매장에 눈이 간다. 그러고보니 의류 매장이든, 신발 매장이든, 쇼핑과 관련이 있는 곳은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뭐라도 좋으니 사고 싶었고, 사지 않아도 좋으니 구경이 하고 싶었다. 마침 필요한 살림살이들도 있으니 저기라도 실컷 둘러보자 싶었다.
매장 안은 쿵작쿵작 걸그룹의 신나는 노래가 흘러 나오고, 환한 조명 아래 수납바구니와 각종 그릇과 청소용품과 문구류, 화분과 액자들이 잔뜩 쌓여있다. 가격은 하나같이 천원, 이천원, 비싸봤자 삼천원...둘러봐도 부담이 없고 마구마구 사들여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살림을 열심히 하기로 했으니, 여기서는 마음껏 사도 되지 않을까?
기분이 조금 나아진 나는 의욕적으로 매장 곳곳을 둘러보며 이 물건들을 사면 우리 집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수납장을 왕창 사서 옷방과 베란다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을 확 정리해 버릴까, 바구니들을 세트로 사서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을 싹 분류해서 넣어둘까, 스윽 닦으면 모든 곳이 깨끗해진다는 매직블록을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