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 - 옷방 정리를 시작하다
살림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바로 '옷방 정리'다. 패셔니스타도 아니건만, 방 안 가득 꽉꽉 들어차 있는 옷더미들. 그리고 무슨 연유로 옷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각종 잡동사니들. 과연 이 모든 물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한숨부터 나와서 차마 손을 대고 싶지 않다. 위태롭게 한없이 높게 쌓인 모래성처럼, 건드리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려서 내가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버릴 것 같은 기분.
그렇게 옷방 정리에 엄두도 못 내고 있는 동안 계절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기예보에서 꽃샘추위라는 단어도 사라졌고, 길거리의 꽃들도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건만, 나는 제대로 된 봄옷을 입지 못하고 있다. 일교차가 워낙 심한 탓에 출퇴근 길이 너무 쌀쌀해서 아직도 겨울 외투를 완전히 집어넣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사무실 안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실 봄이 왔는지 여름이 왔는지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힘들다. 사무실이란 곳은 그저 일하기에 크게 지장 없을 정도의 기온을 늘 유지하는 곳이니까.
아침 일찍 그리고 저녁 늦게만 바깥공기를 쐴 수 있기에 나는 늘 '큰 일교차'의 '한쪽 부분'만 경험하고 다닌다. 이 봄날에 접하는 주로 접하는 바깥 날씨가 하필 쌀쌀한 쪽이란 건 참 애석한 일이다. 슬프지만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나는 아직도 가끔 패딩이 들어간 외투를 걸치고 다닌다. (농담이 아니다! 출퇴근 길에 맞는 바람은 정말 차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 집 옷방에는 온통 겨울 외투와 머플러, 무채색의 두터운 의류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겨울옷으로 빼곡히 들어찬 옷방 어딘가에 분명 봄옷들이 섞여 있을 텐데, 크지도 않은 방구석 구석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봄옷들이 있는 위치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외투는 아직 겨울용을 걸치더라도 안에 입는 옷만이라도 봄옷을 입어줘야 하는데, 겨울옷을 정리하고 봄옷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남편과 나, 아기까지 세 식구의 옷가지들이 온통 뒤섞여 악성 재고가 잔뜩 쌓인 창고 같은 옷방. 당최 이 곳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동안 봐 왔던 살림 고수, 수납 도사들의 팁을 이리저리 떠올려 본다.
'패딩류는 부피를 최대한 줄여서 수납하세요'
음. 아직 일교차가 심해서 패딩 외투를 완전히 정리할 수가 없어요.
'티셔츠는 접어서 세운 형태로 서랍에 넣어 주세요'
흐음. 서랍도 엉망진창이에요. 더 이상 무언가 넣을 공간이 없는데요.
'옷은 비슷한 색상별로 걸어주면 보기 더 좋아요'
지금 걸려 있는 옷들이 다 어둑어둑, 무채색 투성이에요. 전부 비슷한 색인데도 정신없고 지저분해 보여요.
정복하기 힘든 대상이 있다면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가장 쉬운 것부터 하나씩 천천히 해야지.
우선 이 엉망진창 옷방에서 제일 거슬리는 곳이 어디인지 둘러보았다. 레이더망에 제일 먼저 포착된 건 남편의 옷들이 마구 쌓여있는 바구니 하나. 오늘은 일단 저 곳부터 공략하기로 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러 옷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바로 남편의 옷과 벨트가 마구 헝클어져 있는 저 바구니다. 남편은 키가 큰 편이기 때문에 당연히 옷들도 크다. 따라서 옷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부피도 클 수밖에 없다. 큼지막한 옷들이 그 기다란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척척 펼쳐놓고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미관상 정말 보기 좋지 않지만, 피곤하다는 핑계로 늘 정리하는 걸 차일피일 미뤄왔다. 남편 물건이니까 남편이 치워야지, 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정작 남편 눈에는 저 광경이 그다지 거슬리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바구니는 항상 저렇게 엉망인 상태로 옷방 입구를 답답하게 막고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구니에 들어 있는 옷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기 싫은 사람이 치워야지.
큰 맘먹고 바구니를 들어 올려 일단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구니를 들자마자, 그 밑에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더미가 나를 반긴다. 아, 그리고 반가운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먼지를 먹고 빛이 바랜 100원짜리 동전이 희미한 빛을 발한다.
일단 보너스 100원을 챙겨 들고 즐겁게 바구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바구니에는 비슷비슷한 트레이닝복과 흐물흐물해진 티셔츠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상표도 뜯지 않은 꽤 괜찮은 티셔츠도 숨어 있었다. 아니 이런 멀쩡한 옷을 왜 태그도 제거하지 않고, 낡은 옷만 입고 다닌 거지? 얼른 꺼내서 옷걸이에 착 걸어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생전 처음 보는 티셔츠들(그러나 남편이 앞으로 절대 입을 것 같지 않은)이 끝도 없이 나온다. 내 옷이면 당장 헌 옷 수거함에 보내겠지만, 남편 옷이니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남편에게 물어보고 처리하기 위해 옆에 살짝 빼 두었다.
뒤지다 보니 바구니 밑바닥에는 생뚱맞게 남편 수영복이 깔려있다. 수영복을 포함한 물놀이 관련 용품들은 분명히 가족 모두의 것을 따로 빼서 별도의 서랍에 보관해 두었는데, 왜 이 수영복만 빠져나와서 여기 있는 거지? 당장 차곡차곡 개서 수영복 서랍으로 이동시켰다.
바구니 하나 정리하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옷방 정리를 해 보기로 마음먹은 원래 목적은 숨어있는 내 봄옷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내 옷은 손도 못 대고 엉뚱하게 남편 옷부터 정리를 하고 있네. 내 옷은 훨씬 많아서 사실 정리를 시작하는 게 두렵다. 남편 옷 조금 들어있는 바구니 하나 뒤지는 데 30분이나 걸렸는데, 내 옷까지 다 정리하려면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