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 - 누룽지 만들기
새벽에 아이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아이가 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이마를 짚어보니 뜨거웠다. 화들짝 놀라 체온을 재 보니 열이 꽤 많이 난다. 해열제를 먹이고 보채는 아이를 다시 재우고, 그렇게 새벽 일찍부터 시작한 휴일은 하루종일 비슷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신없이 지나갔다. 열을 재고, 아파서 짜증내는 아이를 달래고, 응급실을 가봐야 하나 고민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어느 새 저녁이 왔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다. 내가 몇 주째 몸살로 골골댔는데 아이가 나한테서 병균이라도 얻어간 게 아닐까 싶고, 일하는 엄마라 피곤하다는 핑계로 주말에도 제대로 못 챙겨줘서 아이가 아픈가 싶기도 하고. 아파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심정은 단순히 찢어진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
우리 아기는 평소 먹성이 좋아 밥도 잘 먹고, 과일이며 요거트며 간식도 참 맛있게 먹는데 오늘은 영 입맛을 잃은 모습이었다. 뭐라도 먹여야 기운을 차릴텐데,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고 밀어내는 아기 때문에 속상해 하다가 아이가 숭늉이라면 눈이 번쩍 뜨이던 게 생각나서 누룽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남은 밥으로 누룽지를 만드는 건 우리 엄마가 자주 하시기도 했고, 인터넷에도 방법이 많이 나와 있어서 쉽게 할 수 있었다. 밥을 달군 프라이팬 위에 납작하게 깔아준 후 약불로 바삭하게 앞뒤를 뒤집어 가며 구워주면 된다.
다행히 아기는 구운 누룽지를 과자처럼 뜯어 먹기도 하고, 물을 부어 폴폴 끓여 준 것도 후룩후룩 잘 받아 먹었다. 나도 아파서 입맛이 없을 때 엄마가 이렇게 구수한 누룽지를 끓여 주면 맛있게 잘 먹곤 했다.
아이가 먹고 남긴 누룽지를 먹어 보았는데, 엄마가 해 주셨던 것보다 어째 맛이 약하다. 엄마표 누룽지랑 숭늉은 뱃속 깊은 곳까지 따끈하고 구수했는데, 내가 만든 건 어째 목구멍만 살짝 건드리고 도망가는 느낌이다. 역시 누룽지 하나도 엄마의 내공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힘들면 엄마가 차려 주시는 맛있는 밥을 먹고 엄마 옆에서 이불을 덮고 쉬고 싶다. 그런데 우리 아들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힘들 때, 이 어설픈 솜씨로 차려낸 밥이 과연 먹고 싶을까?하루에 채 몇 시간도 같이 못 지낸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을까?
아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진통을 하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응급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수술실로 실려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에 기도를 했다. 제발, 저는 지금 죽어도 좋습니다. 부디 뱃속의 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 목숨을 내놓을 테니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리고 우리 둘이 무사히 서로를 만나게 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나의 기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제발 오래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이 아이를 무사히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매일 밤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오늘처럼 아이가 아픈 날이면 더더욱, 내가 건강해서 아이를 더욱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아이가 언제든 기댈 수 있게 튼튼하고 강인한 버팀목이 되게 해 달라고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