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 - 전기밥솥으로 고구마 삶기
출근시간이 빠른 편인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끼니를 거르면 큰일나는 줄 알고 살아온 까닭에 출근 후에 아침은 꼭 챙겨먹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무실 책상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밥이 먹고픈 날은 김밥, 그 외에는 빵.
비록 메뉴 선택의 폭은 좁지만, 워낙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김밥과 빵을 번갈아가며 나름 맛있게 먹었지만 입사 후 10여 년째 그렇게 먹다보니 내 몸이 그만 질렸버렸나 보다. 어느 날부턴가 밖에서 사 먹는 아침식사에 대한 불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김밥에 박혀있는 햄의 지극히 인공적인 맛이 거슬렸고, 또 어떤 날은 주변의 밥을 노랗게 물들일 정도로 색소가 과도하게 들어간 단무지 때문에 입맛이 떨어지기도 했다. 빵도 너무 느끼하거나 달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 속이 편치 않은 날들도 늘어갔다.
내가 사 먹은 빵에 얼마나 많은 버터와 설탕이 들어갔는지, 내가 입에 넣은 김밥 한 줄에 어떤 인공감미제가 들어간 건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것, 오랜 시간 시달려온 위장이 지칠만큼 지쳤다는 것, 그래서 작은 자극에도 내 소화기관이, 내 몸이 힘들어한다는 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내 몸에 미안해졌다. 바쁜 엄마라는 이유로, 직장인의 식생활은 으레 그런 거라는 핑계로, 영양과 상관 없이 당장 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대충 '때운' 게 갑자기 속상했다.
사실 아침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주먹밥 정도는 만들어 갈 수 있다. 식은밥 데워서 냉장고에 있는 멸치볶음이나 매실청, 깨소금 섞어서, 김가루 솔솔 뿌리면 되니까. 그런데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은 단 5분 앞당기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그걸 못해서 내가 지난 10년간 꼬박꼬박 아침을 밖에서 사 먹지 않았던가.
그래서 좀 더 간단한 방법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다이어트도 할 겸, 고구마를 삶아서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예전에 몇 번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서 가져간 적이 있긴 하다. 전날 밤에 광파오븐에 굽고 그 다음날 가져갔는데, 광파오븐이 그만 고장나버렸다. 수리비를 알아보니 오븐 값에 거의 육박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해서 오븐과는 미련없이 작별을 했다. 냄비에 삶는 건 삶는 과정도 그렇고, 뒷처리가 귀찮아서 고구마와도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획기적인 방법을 알았다!인터넷 살림고수님들에 의하면 전기밥솥으로 고구마를 삶을 수 있다는 거다! (나만 이제 안 것인가......)
상세한 방법을 찾아보니 딱 나처럼 게으른 사람을 위한 맞춤 시스템이다. 고구마를 씻어 밥솥에 넣고 물을 살짝 부어준 후 취사버튼만 누르면 끝!
만세를 외치며 퇴근길에 고구마 한 팩을 사들고 왔다. 빛의 속도로 고구마를 쓱삭쓱삭 씻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밥솥에 고구마를 채워 넣었다. 그리곤 고구마 맨 밑바닥만 아주 살짝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주고, 경건하게 취사 버튼을 눌렀다.
아이도 이미 잠들었겠다, 밥솥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나는 샤워를 하고 책도 보고 룰루랄라 휴식을 즐겼다. 이윽고 밥솥이 취사를 끝냈음을 알렸을 때, 살짝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레 밥솥을 열어보았다. 오오! 뜨끈한 김이 솟아오르고, 수증기 사이로 보이는 고구마는 척 보기에도 알맞게 잘 익은 것 같다.
혹시나 싶어 젓가락으로 푹 찔러봤더니 부드럽게 끝까지 들어간다. 껍질을 살짝 벗기자 군고구마에 가까운 노오란 속살이 드러났다. 대성공!
고구마를 그릇에 옮겨담고 확인해 보니 밥솥에 전혀 눌어붙거나 탄 흔적이 없다. 물에 불렸다가 가볍게 씻어주면 뒷처리도 끝! 왜 이제서야 이런 방법을 안 것인지 안타까울 정도였다.
5분만 일찍 일어날 수 있다면, 아침에 바로 삶아서 가져갈 수도 있겠다. 전날 밤에 고구마를 씻어만 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솥에 고구마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흠, 그러나 힘들겠지.
어쨌든 내일은 첨가물이나 재료 걱정할 필요 없이 건강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사이좋게 나눠 들고 가야지. 자연 그대로의 음식으로 건강하게 배를 채우고, 각자의 일터에서 또 열심히 하루를 보내야지.
내일도 숨가쁜 하루를 보내실 당신,
아무리 바빠도 아침 잘 챙겨 드세요.
우리 다 밥심으로 사는 거잖아요.
다들 든든히 배 채우고
힘찬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