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와도 엄마는 쉴 수 없다

오늘의 살림 - 한밤의 설거지

by 글쓰는하루

임시공휴일 덕분에 갑자기 생긴 연휴. 여기저기서 제주도를 가고, 해외여행을 가고, 행복한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이 천금 같은 휴일을 맞아, 꽃과 나무로 가득찬 수목원도 아니고, 공항도 고속도로도 아닌, 병원을 찾았다.


시간이 좀 소요되는 검사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연차휴가를 내지 않고 병원에 가기 위해선 5월 6일 밖에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휴일에는 병원도 쉬지만, 임시공휴일인 이 날은 병원은 쉬지 않는다. 회사는 쉬지만 병원은 쉬지 않는 날은 여간해선 찾기 힘들다. 하루는 병원 가고, 남은 날들은 양가 부모님들과 돌아가며 어버이날 기념 식사를 하고 나면 5월의 황금연휴는 허무하게 끝난다. 물론 임시공휴일에도 쉬지 못한 사람들도 많으니 회사 안 나간 것만해도 어디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좀 우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검사를 받은 후 며칠간은 최대한 집안 일은 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 말이 검사지 절개에 부분마취에 시술이나 다름 없었고 통증도 생각보다 있어서 병원에서 당부하지 않아도 그냥 누워서 쉬고만 싶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되도록 집안 일을 하지 말라고 했으므로' 외식을 하고 가기로 했다. 내가 제일 어려워 하는 식사준비와 남편의 주요 과제인 설거지를 동시에 덜어낼 생각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큰 도움이 안 되었다. 이제 두 돌 지난 아이와 함께 먹을 만한 메뉴를 찾느라 초반부터 진이 빠졌고, 한 손으로는 입에 음식을 쑤셔넣으며 나머지 모든 신체기관으로는 아이를 통제하느라 혼이 다 나갔으며, 겨우 식사를 다 마치고 일어서려는 찰나 아이가 식판을 나꿔채며 미소국 한 사발을 시원하게 온몸에 뒤집어 쓰면서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채로, 미소국물로 얼룩진 빨래감만 만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오후 몇 시간은 그래도 누워서 쉬었다. 아이와 놀아주고, 목욕시기코, 간식을 챙겨주며 남편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나는 검사 부위의 통증과 싸우며 몽롱하게 누워 있었다. 중간중간 아이가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오늘 쉬어야 한다는 걸 열심히 설명했지만 두 돌 지난 아이는 그저 엄마가 왜 자기를 업어주지 않는지, 안아 올리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갈 뿐이다. 할 수 없이 몇 번 아이를 안아주느라 검사 부위에 무리가 가는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몸을 눕혔다가 아이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일어나는데 갑자기 서러워졌다. 정작 내 몸은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은데,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게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우리 엄마에게 아프다고 투정 부리며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을 먹고 편하게 푹 쉴 수 있었을까.


저녁식사 후 아이를 재우는 동안 오늘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지친 남편은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밖에는 설거지거리가 가득 있는데, 코까지 골면서 자는 남편을 깨울 수도 없고 슬그머니 침대에서 빠져 나온다.


설거지를 그냥 두면 남편이 아침에 하긴 할텐데, 그냥 외면할 수가 없다. 쌓여있는 그릇이며 냄비들이 자꾸 내 뒷목을 잡아끄는 것 같아서 ' 집안 일 하지 마시라'는 말은 또다시 접어두고 싱크대로 향한다.


예전에 엄마가 몸이 안 좋으실 때면 '나는 아파도 밥상 차려야 하는 팔자'라고 짜증을 내셨다. 그 땐 '아니 아프면 그냥 쉬지 왜 엄마는 안 쉬면서 짜증을 내나' 싶어 엄마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안 갔다. 아빠랑 내가 알아서 차려 먹으면 되는데 엄마는 왜 자꾸 아픈 데도 푹 안 쉬고 저렇게 짜증을 낼까 싶었다. 그땐 미처 몰랐다. 아빠랑 내가 '알아서 차려먹은 것들'도 다 엄마가 미리 해 둔 반찬이었고, 정작 아픈 엄마 밥상은 제대로 차려 준 적이 없었다는 걸.


세월이 흘러 나 역시 '아파도 마냥 쉴 수 없는' 엄마가 되었다. 단 하루도 집안 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 엄마라는 자리는 다시 한 번 나같은 철없는 인간에겐 너무 무겁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고작 하루 힘들었다고 징징대고 있으니 수십 년간 오늘같은 하루를 수백 번은 보냈을 우리 엄마가 이 글을 읽는다면 가소롭다고 비웃을거다.


부모님의 마음은, 어버이날에 느끼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면서 내가 부모님과 같은 입장을 겪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아빠가 오랜 세월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오셨는지 알게 되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우리 엄마가 얼마나 많은 세월 인고하며 살아오셨을지 느끼게 된다. 그렇게 서러웠던 오늘 하루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생각으로 마무리한다. 이제 고단했던 오늘 하루는 안녕, 아이가 깨는 아침이 올 때까지 푹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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