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살림 - 수건 정리
여행을 해 본지 얼마나 되었는지, 멋지고 깔끔한 호텔에 묵어본 게 언제 적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요즘은 갓난쟁이를 데리고도 해외여행도 많이들 가건만, 천성이 게을러서인지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은 준비물 목록만 떠올려도 진절머리가 나서 아기를 낳은 지 2년이 지나도록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다. 맞벌이로 아둥버둥 살아도 쌓여가기만 하는 대출금들을 떠올리면 ‘내 주제에 여행은 무슨’ 하고 지레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엉망으로 어질러진 집으로 퇴근할 때마다 예전에 묵었거나 나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깔끔한 호텔방이 그리워진다. ‘청소해 주세요’라는 팻말만 걸고 실컷 놀다가 오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없던 방은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욕실 바닥에 축축하게 팽개쳐져 있던 수건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수건걸이와 수납장 안은 뽀송뽀송한 새 수건들이 차곡차곡 들어차 있었지. ‘호텔 수건’이 주는 그 특유의 빳빳하고 뽀송한 느낌은 늘 내 맘 속에 일종의 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사는 이 집은, 내 스스로 몸을 움직여 치우지 않는 한 절대 자동으로 정리되는 법은 없다. 내 발에 걸리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치우지 않으면, 그건 십 년이고 백 년이고 그 자리에 영원히 버티고 있을 거다. 저 축축한 수건들도 마찬가지. 내가 잡아채서 빨지 않으면, 내가 말려서 개지 않으면, 저 더러운 수건들은 언제까지나 저 곳에서 눅눅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갈 거다.
어지러운 집안 전체를 호텔방처럼 각 잡아 정리하자니 십 년은 족히 걸릴 것 같고, 수건 정리하는 정도는 가뿐할 것 같아서. 가장 빨리 내 집에서 호텔 분위기를 내는 방법은 수건 정리가 안성맞춤일 것 같아서.
우리 집은 수건을 많이 쓰는 편이라, 수건을 놓는 수납장은 늘 여유가 있는 편이다. 맞벌이라 아침부터 나와 남편이 젖은 머리를 말리기 위해 각자 수건을 하나씩 쓰고, 아기를 봐주러 오시는 친정 부모님에게 우리가 쓴 축축한 수건을 드릴 수는 없으니 또 새로 꺼내고, 집에 와서 또 부부가 각자 하나씩 쓰고... 아무튼 수건이 늘 많이 나와 있는 상태라 수납장이 수건으로 꽉 들어차 있을 일은 별로 없다.
공간에 여유가 있으면 깔끔해 보일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주로 빨래를 맡는 남편이 나름대로 차곡차곡 개 놓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충’ 포개서 넣어 두는 수준이다. 우리 집 욕실 수납장의 크기를 고려해서 수건이 수납장 문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수건을 접는 것까지 남편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남편이라면 사양한다.)
남편이 넣어 둔 수건들은 늘 수납장 문에 살짝 걸리면서 문을 열 때마다 대열이 흐트러진다. 뭐 그렇다고 수건이 찢어지는 것도 아니고, 문 여는 데 크게 지장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을 열 때마다 한 번씩 주춤하는 느낌, 그리고 흐트러지는 수건을 보며 움찔하는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어느 순간 짜증이 터지게 된다. 스트레스의 작은 근원을 없애기 위해 수건 접는 방법을 바꿔 보기로 한다.
‘호텔식 수건 접는 법’으로 검색하면 수많은 결과가 나온다. 그중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수건의 끝을 삼각 형태로 접은 후, 다시 반으로 접어 돌돌 마는 것. 이 방법을 쓰면 수건을 세워 놓기도 좋고 바구니 같은 곳에 넣어두면 더욱 호텔 분위기가 난다.
접는 방법이 쉬워서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새로 접은 수건을 다시 넣었더니 수납장 문도 안 걸리고 촤르르 잘 열린다. 나름 정리되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기분은 한결 낫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다 보니, 들인 정성에 비해 그리 태가 안 난다. 수건이 안 예뻐서 그런가. 집에 있는 수건이라곤 온통 다 어디서 얻어온 것들이다 보니 진짜 호텔 수건처럼 보드라운 맛도 안 나고 때깔도 영 안 난다. 호텔식 수건 접는 법을 찾아볼 게 아니라 그냥 호텔 수건을 사야 하나?
‘호텔 수건’으로 키워드를 바꿔 다시 검색해 본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건들의 행렬이 쫙 펼쳐진다. 쭉 살펴보니 보통 3개 세트에 1만 원 대면 살 수 있다. 이참에 수건들을 싹 다 바꿔버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대출금을 떠올리곤 얻어온 수건들이 낡고 해지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솜씨꽝도 한다! 호텔식 수건 접기 T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