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집념

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2

by 쌀방언니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과자나 빵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 나에게 디저트란 사먹는 것이지 만들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자체만으로 충격이었다.


한번도 베이킹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수업전에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첫 수업은 이론으로 시작되었다.

도구의 사용법과 재료의 쓰임새, 비건 베이커리에 사용되는 재료들, 그 재료들의 역할, 그리고 비건을 하는 이유등을 꼼꼼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도구를 사용하기 전에는 사용 용도를 잘 자세히 알려주셨다.


수업은 오전 10시에 시작하였고, 장시간 운전을 해서 수업에 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선생님은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노력하셨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긴했지만 그러면 하루만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나는 시골로 귀농한 사람 아니던가.

시골살이가 좋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는 아직 불편함이 많다.


이런 나의 사정을 아셨기에 수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상세한 설명과 함께 세심하게 체크하며 디저트를 만들었다

선생님이 만든 것과는 달리 똥손인 내가 만든 것은 하나같이 엉성하고 못나보였다.


"내가 만든 건 이쁘지도 않고, 만들기는 너무 어려워요." 라고 투덜대는 내게,

"처음에는 누구나 어려워해요. 매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보세요. 손에 익으면 자연스럽게 늘어요.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거랍니다." 라며 격려해 주셨다.


한번의 수업에 5~6종류의 비건 디저트를 만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배운 것을 다음 수업전까지 연습했다.

집에는 아직 오븐기가 없다. 오븐기도 없는데 배우기부터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책이 없었다.

아무튼 내 집에는 오븐기가 없지만 다행히 엄마집에 동생이 사놓은 오븐기가 있어 시간이 될때마다 재료를 챙겨서 엄마집으로 달려갔다.


배운 모든 것을 한주 만에 연습하기란 나에게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디저트 1~2개를 골라 만들어 보았다.


분명히 수업때는 잘 만들어졌는데, 혼자서 만들면 같은 재료로 만드는대도 맛과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선생님과 전화 또는 문자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베이킹에 익숙해지는 노력을 하였다.




처음에는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모양은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내가 이렇게나 맛있는 걸 직접 만들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실패할때는 실패한 대로,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뿌듯함이 있었다.


선생님은 멀리서 달려오는 나를 위해 한주 더 수업을 진행해주셨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나도 선생님처럼 사람들에게 비건 디저트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으로 왕복 10시간을 운전해서 4~5시간 수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5주간의 일정을 마치자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아 그대로 몇일을 쉬었다.



이것이 몰입이구나.

몇일간의 휴식기가 지나고 배운 것을 조금씩 연습하며 몇주가 흘렀다. 기존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어떤 날은 완벽하고, 어떤 날은 망가졌다. 아무리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도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계속 만들다보면 익숙해져서 잘 만들어질꺼야.' 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각 재료의 역할과 상호작용, 온도와 습도의 영향, 심지어 반죽하는 속도와 힘까지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이래서 디저트는 과학이라고 하는가보다.



나는 전문가를 찾았다. 그리고 배움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의 배움에서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기초 지식을 체득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오늘의 날씨, 재료의 온도, 오븐의 실제 온도, 반죽 시간, 심지어 내 기분과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내 미각도 달라져서 단맛을 다르게 느낀다는 것까지 나름의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초부터 하나씩 다시 배우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만들기에만 집중하던 때와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배운대로 만들던 것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양을 바꾸어보고, 다음에는 색다른 재료를 첨가해보고, 그렇게 조금씩 창조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었다. 탁탁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스콘도 있었고, 색깔은 이쁜데 맛이 어정쩌정한 파운드도 있었다. 첨가한 과일이 흐물거려 식감이 엉망인 것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런 실패들은 모두 소중한 자산이 되었고,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식감의 비건 브라우니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의령이 망개떡으로 유명해서 만들었던 망개스콘도 기억에 남는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비건 디저트 철학이 생겨났다.

단순히 기존 디저트에서 동물성 재료만 빼는 것이 아니라, 식물성 재료의 고유한 특성과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

그리고 비건 디저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건강하지만 맛없는' 디저트가 아니라, '건강하면서도 정말 맛있는' 디저트로.



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비건 디저트를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사람들이 직접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디저트를 맛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작은 공방을 열어 소수 인원으로 비건 디저트 수업을 진행하는 꿈은 이때 생겨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다니,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집념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보다.


그리고, 인생이 재미나고 흥미로운 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내가 아는 그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다.

나의 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