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서다

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2

by 쌀방언니

이쁘게 꾸며질 카페 공간을 꿈꾸며 시작한 인테리어 작업.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아름답게 진행되었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매일매일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의 연속이었고, 하루 하루 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시행착오들이 값진 배움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힘들었다.


몇군데 업체들한테서 견적을 받았다. 그 중에는 이 건물을 지은 업체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 업체와 계약을 했다. 건물을 지어서 구조와 자재등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견적도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괜찮았다.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을 맺고 첫 번째 도면이 나왔을 때의 설렘은 지금도 기억난다. 용지 위에 그려진 우리 카페의 모습은 정말 상상했던 그대로 완벽해 보였다. 동선도 효율적이고, 공간 활용도 좋았다.

"와~~~ 이쁘겠다."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실제 시공이 시작되자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누수가 의심되었던 천장에는 예상했던 대로 누수가 심했다. 천장을 다 뜯어내고 누수를 잡는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방치되었던 곳의 누수는 쉽게 잡아지지가 않았다.

어쩔수 없이 천장은 오픈 천장으로 공사를 진행하였다. 나중에 시공을 마치고 나서라도 누수가 있을 경우 오픈되어 있어야 쉽게 시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괜찮았다.


조명을 설치하고 에어컨을 설치 하자 전기가 자꾸 차단이 되었다. 원인을 찾아보니 전기가 한 곳에 몰려있었다. 전기 기사는 공사를 다시 해야지만 조명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사에 예산이 많이 초과했지만 공사를 하지 않으면 원하는 조명을 사용할 수 없으니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추가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공사를 하였다.


또다른 문제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것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같은 단어를 써도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특히, 컬러에 있어서 우리가 원하는 노랑이 나오지 않았다. 그레이톤이 전체 컬러였던 공간을 따뜻한 느낌의 노랑으로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수업이 많은 테스트를 하고 나서야 우리가 원하는 노랑을 찾을 수 있었다.


더 답답했던 건 전문 용어들이다. "몰딩", "코킹", "실란트" 같은 말들은 마치 외국어를 듣는 기분이었다. 솔직하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물어보기도 하고, 동생과 함께 인테리어 용어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었다.


자재 선택은 우리를 매번 고민하게 만들었다. 카탈로그에서 봤을때는 괜찮았는데 실제로 보면 색상도 다르고, 질감도 달랐다.

이뻐서 선택하면 가격이 너무 바쌌고 가격에 맞추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테리어는 도면 위의 계획이 아니라, 현실과의 끊임없는 타협이었다.


아무리 좋은 자재를 써도 시공이 엉성하면 소용없다는 걸 인테리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작업자가 "전문가니까 믿고 맡기세요" 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가보니 이음새가 들떠 있거나, 색이 꼼꼼하게 칠해지지 않았거나, 원하는 위치에 설치가 되어있지 않거나, 결정한 자재가 아닌 다른 자재로 시공이 된 경우들이 있었다.

우리는 시공을 하는 내내 업체와 함께 움직였다.


거의 공사가 마무리 되어갈 쯤, 커다랗게 '태양' 모양의 로고를 벽에 그리는 작업을 할 때였다. 이 로고는 우리의 간판이 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간판을 담당했던 업체는 벽화를 그리는 분에게 이 일을 맡겼고 아침에 화가분이 오셨다.


"여기 너무 높아서 사다리차를 불러야 겠는데요."

"네, 그럼 불러서 그려주시면 됩니다."

"사다리차 비용은 받지 않아서 따로 지불하셔야 합니다."

"사다리차 비용은 간판 업체에서 지불할 겁니다."

"그럼, 간판 업체랑 이야기해보세요. 저는 비용을 받지 않고는 작업 못합니다."


나는 당장 간판 업체와 통화를 했다. 황당하게도 간판 업체는 우리가 사다리차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벽화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하 것은 업체측이었고, 우리는 벽화를 포함한 모든 간판 비용을 계약했었다.


상대방 업체는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말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 차분해지고 내가 할 말을 했다. 상대방은 점점 분해하더니 마지못해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비용을 지불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공사를 진행해가면서 나와 동생은 더 단단해지고 문제해결 능력이 좋아짐을 느꼈다.




빠르게 선택하고 결정했는데도 자재 배송이 늦어지고, 재작업이 필요한 부분들이 생기고, 업체들 간의 일정 조율의 문제등이 생기면서 시공은 지연되었다.

작은 흠집, 미세한 색상 차이, 조금이라도 삐뚤어진 선, 모든 것이 다 신경 쓰였지만,

결국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는 법을 부딪히며 배워나갔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 때로는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속에서 카페는 서서히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원하는 조명을 찾아 설치하고 불을 켰을 때, 반짝반짝 간판에 불이 들어올 때, 노랑빛이 마음에 들게 마감이 되었을 대, 가구 배치를 마쳐 공간이 완성되어 갈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과 만족감, 그리고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모든 공사가 끝나고 동생들과 바닥에 둘러앉아 벽에 붙일 그림들을 나열하며 함께 웃었던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감동이다.


"우리 정말 해냈네. 이 모든 고생이 이 순간을 위한 거였구나."


카페에 오는 손님들이 "분위기가 정말 좋다", "카페 너무 이뻐요." 라고 말씀해주실 때마다, 그 모든 시행착오들이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위기를 극복하는 힘도 기르지 못했을 것이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들은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과정의 어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이었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다.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서는 과정.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강해졌고, 더 현실적이 되었고, 무엇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단순한 카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이 스며든 진정한 의미의 '우리 공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