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이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다

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2

by 쌀방언니
흔들림없이 나만의 속도로 나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카페를 계약할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너무 외곽이라 거기는 안된다.' '비워둔지 너무 오래됐다.' '위치가 좋지 않다.' '월세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자리가 좋지 않다.' '장사가 안되는 곳이다.' 등등,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걱정해 주듯 한마디씩 했다.

나는 그 한마디를 들을때마다 '네 그렇죠.' '어쩌다보니 하게되었네요.' 라는 말등으로 두리뭉실 넘겨버렸다.


계약을 하고 2년 동안 닫혀있던 가게의 문을 열자, 야반도주라도 한듯 모든 것이 2년전 그 시간 그대로 멈춰져 있었다. 건물주는 1층 카페, 2층 주택인 건물을 매도하고 싶어했고, 가격이 맞지 않아 건물은 2년간 방치된 상태였다.

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안다는 시골 특성상 2년 동안 닫혀져 있는 그 공간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사작되자 사람들이 수시로 가게에 들렀다. 공사현장에 들어와서는 보고 싶은 곳을 이곳저곳 구석구석이도 봤다.

그리고 돌아가기전에는 또 꼭 한마디를 하셨다. 그 한마디는 좋은 한마디가 아니었다.


인테리어를 하는 내내 사람들은 지나가다 들르고, 심심해서 들르고, 궁금해서 들러 참견을 했다.

'이 공간은 왜 이렇게 해요?', '색깔이 너무 밝은데, 더러워지면 금방 표시가 날텐데, 색상 바꾸세요.' 작은 트집부터 넓은 오지랖까지, 어쩔땐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정색을 하며 이야기를 하고 가셨다.

심지어 본인이 카페를 차리는 듯한 말투로 '이 테이블은 여기에 안된다, 다른데로 옮기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한두명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는 그 모든 말들에 지쳐갔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대하지는 않았다. 아니 어찌보면 내 감정을 이런 일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을 건지도 모른다.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하는 나에게 감정소모는 에너지를 크게 빼앗는 일이었으니깐.

그래도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많은 말들에 흔들리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지 내 가게를 지키고, 내 일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업을 하고 나서도 사람들의 참견은 끝나지 않았다. '메뉴를 더 늘려라.' '음료가 너무 달다, 맛을 바꿔라.' '디저트의 종류를 늘려라.' '영업시간을 연장해라.' ' 테이블을 더 배치해라.'

다 카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말 속에 담긴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진심으로 피드백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나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새겨듣고 개선해나갔으며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쏟아내는 말들은 걸러냈다.


끝이 없었다.

'의령'에 사시는 분들은 좋은 뜻에서든 나쁜 뜻에서든 카페가 처음인 나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

나는 그 말들에 '네~ 그렇죠.' '한번 생각해볼께요.' 로 응수하며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한 지인이 이런 나를 보며 그 말들에 감정적으로 울컥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도 재능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외골수는 반갑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의 한마디에 크게 요동치며 흔들리는 것도 달갑지 않다.

모든 것에 벽을 치고 뻗뻗하게 굳어 있을 필요는 없지만, 내가 지켜야 하는 한가지는 뿌리를 뽑지 않는 이상 절대로 꺾을 수 없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만큼은 지켜야지 뿌리가 땅에 단단히 뿌리내려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말에는 중심을 잡고 단단하게 서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타인에게는 태연하게 대응하던 내가, 나를 흔들기 시작하자 속절없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6개월은 오로지 카페에만 집중했다. 우선은 카페가 자리를 잡아야 그 뒤를 이어 비건 디저트 수업도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때문이다.

카페가 안정권에 들어서자 비건 디저트 수업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갑자기 지금까지 없었던 조바심이 생겨났다.

'디저트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지?' ,'홍보는 어떻게 하나?' , '시골이라 사람들이 모이기는 할까.'

수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카페에서 비건 디저트에 대해 많이 알렸고 맛도 인정받았기에 해야할 일에 집중만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냥 나의 속도대로 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해 나갈야 할 것에 집중하는 대신 불안감으로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걱정이 앞서자 마음만 급해져서 일이 생각한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신경이 곧두서고, 날이 선 상태로 대하는 일은 실수가 잦았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질책하는 일이 많아졌고 극기야 나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도 그런 모습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하지말아야 할 남과의 비교하기 시작됐다.

그 순간부터였다.

나의 마음 속에 지옥을 만들어 매일 나를 그 지옥 속으로 밀어넣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던 것이.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미친듯이 발버둥을 쳤다. 그럴수록 나의 지옥은 활활 더 큰 불길로 나를 휘감았다.


이대로는 안돼!


나는 결심했다. 내가 만든 그 지옥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반응하지 않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는 일도, 노력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이뤄낸 지난 성과들을 돌아봤다. 손님 한 분과 진심 어린 대화에 마음을 썼다. 작은 보폭으로 앞으로 걸어온 나의 발자국을 살폈다. 매일 지키고자 애썼던 루틴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디저트를 만들며 행복해하던 나를 떠올렸다.


내가 언제부터 토끼처럼 빨랐다고, 그런적이 없었음에도 어느 순간 나는 나를 토끼로 착각하고 있었다. 과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내가 언제부터 남들의 시선을 신경썼다고, 누가 뭐라든 성장해나가는 우리를 보며 즐거웠는데, 앞만 보고 달리다 길가의 풍경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 속도로, 내 방식대로, 나를 믿으며 멈추지 않는 것이 내가 원하는 길인데, 나는 그 길을 다시 차츰차츰 찾아나갔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속도로 의미 있는 여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40대의 속도로 간다. 20대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경험과 지혜가 있다. 30대처럼 야심차지는 않지만, 균형과 여유가 있다.

조급하지 않지만 게으르지 않은, 느리지만 확실한, 서두르지 않는 꾸준한 속도, 이것이 나를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만의 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