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kiss..... 그 후
시끌벅적한 음악이 이어지고 이내 분위기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거기다 폭죽놀이가 한몫했다.
친구와 둘만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리조트에서의 마지막 날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남은 일정은 마닐라에서 보낼 예정이었기 때문에 리조트에서의 저녁은 마지막이었다.
어쩌면 그를 볼 수 있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린 앞으로를 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다이닝으로 나가니 저녁상을 차리느라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내 뒤를 따라.. 다이닝으로 내려왔고 이 강사에게 뭔가를 건네받고는 식탁 한편에 앉았다.
갑자기 고민에 빠진 얼굴을 했다.
뭘 자세히 봐야 하는 건지 사무실 한켠에 놓여있던 안경을 꺼내 쓱 하고 썼다.
뿔테안경 안의 똘망한 눈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는데... 신경도 안 쓰이는 걸까. 내 심장은 아직도 마구 뛰고 있었는데 말이다.
사유서
-흠....."
-이게 뭐야?
나보다 먼저 친구가 그에게 가까이 가 물었다.
-아. 이거 뭐 별거 아니야
친구가 그의 펜을 뺏어 장난을 쳤다.
-오호라~~ 결국 사유서 쓰는구먼 응? 박강사 첫 사유서~~~ 큭큭
-하~ 뭐든 처음이란 건 있는 거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혹시 나 때문에...
오후 다이빙에서 내가 이탈한 것 때문에 사유서를 써야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이 강사와 심각한 듯 한 얘기가 이거 때문이었다.
- 그래 너 때문에 얘 골머리 좀 썩겠다 ~~
-….. 혹시 쓰기 어려우면 내가 좀 도와줄까?
- 아니 진짜 금방 해요~~ 어리바리한 우리 회원님께서 다이빙하다 길을 놓쳐서....
- 뭐!?
- 큭… 장난
나는 놀란 듯 화나는 듯한 표정을 했지만 정말로 그런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 사실 미안한 마음이 더컸을 것이다.
친구가 웃어젖히며 말을 이어갔다.
-크크크~~ 얘 맞아 조금 어리바리한 면 있어~ 암요~ㅎㅎ
-야!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듯한 우리들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옆에 앉아있던
J가 연신 포크로 접시를 내리쳤다.
끽끽...
-악! J야~ 그거 하지 마!
- 뭘요
친구의 쏘아붙임에 J도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사유서라..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 나 때문에 쓰는 건데 내가 돕게 해 줘
- 진짜 괜찮은데..
- 음.. 우선 내가 왜 이탈했는지 써야 하고.. 그리고 그 정황을..
- 야~ 얘 믿어봐 이래 봬도 우리 회사 최강 칼럼니스트야. 그냥 후딱 해버려
- 아.. 나 사실 글 같은 거 잘 못쓰긴 해요~
- 맞다 너 이공계지?
친구는 역시 나보다 더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얘는 대체 이곳에 몇 번을 온 거야?
- 내가 도와줄게.
어찌어찌해서 저녁 먹기 전에 사유서를 다 쓰도록 도와주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그의 모습도 보기에 귀여웠지만 역시 그의 웃는 얼굴이 더 좋았다.
다 쓰고 나서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띠는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이게 뭐라고.. 별게 다 뿌듯하고 난리…
- 이제 하나는 해결했고~ 이제.. 둘이 즐기기만 하면 되겠네?
그리고 나를 보며 입모양을 벙긋했다.
'로맨틱하게..'
'앗..?!'
뭐야.. 그의 도발에 나는 그와의 kiss를 떠올려 버렸다.
kiss 한 번에 제대로 음란 마귀에 씌었다.
'응.. 그래 내가 너무 연애를 안 해서 그래..'
-그건 뭔 소리야~~~? 잉? 나 봤다~~~ 너네 둘 뭐야 뭐야~~??
친구가 또다시 장난을 걸며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친구는 대충 알겠다는 눈으로 나를 봤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다는 시늉을 했다.
아직은.. 그와 내가 어떤 마음인지 확실하지 않아.
kiss 한 번으로 단정 짓기엔 말이지.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고 나도 그를 보면 마음이 몽글거린다.
그게 단순히 서로 끌리는 건지.. 아니면 이곳의 여유로움... 사람을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이곳 분위기 탓인 건지.. 아직은 사실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와 나 사이. 관계를 확정을 짓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폭죽놀이, 즐거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성대한 저녁식사가 절정에 다다랐다.
리조트에서의 휴가가 마지막 이라니 이상한 기분…
-자~ 강사님들 회원님들 오늘까지 강습과 다이빙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이센스 따느라 고생하셨고요
앞으로 자유다이빙 하시면서 아무쪼록 인생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이왕이면 우리 리조트에서 함께 하면 더 좋고요~~? 하하~자 다 같이 짠 할까요?
이 강사의 깔끔 담백한 축배사.
우리는 다 같이 즐거웠다. 너나 할 것 없이 술을 들이켜고 떠들썩하게 술 게임도 하면서 그렇게 즐겁게만 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은 시원하게 살랑 거렸고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 앞은 그가 앉아 있었고 우리는 간간히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술잔 사이로 그의 눈빛, 종종 보내는 그의 눈빛은 너무도 달콤했다.
비스듬하게 앉았지만 그 방향은 나를 향해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웃기도 하고.. 그러다 쓱 한번 나를 보기도 하고.. 나에게 미소를 짓기도 하고.
그런 그때의 무드가 괜스레 더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러던 그때, J가 그의 옆으로 슬쩍 다가갔다.
- 오빠~ 나랑 같이 한잔 해요~~
다시금 애교 섞인 콧소리를 내며 J가 말을 건넸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술잔을 들어마셨다.
여느 때와 같이 J의 애교를 받아주며 웃어줄까?
- 아 ~ 나 이거 막잔 하려고~
퉁명스럽게 그가 받아쳤다. 냉정했다. 전과는 좀 다르게 거절의 느낌.
술을 좋아하진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아니 J가 저렇게 애교를 부리는데 그걸 뿌리쳤다.
그는 마음이 달라졌을까?
아니 , 애초에 J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질투심 때문에 그에게 심통 맞게 굴었던 것도, 쌀쌀맞게 한 것도
괜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지 말걸..'
그리고 친구가 어느새 그들의 앞에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말했다.
- 야 너 똑바로 해라!
취한 듯 살짝 상기된 얼굴로 친구는 쏘아붙이듯 말을 이었다.
-너 말이야~ 보니까 자꾸 여기저기 발을 턱턱 하고 거는데~
그러지 마라~ㄴ 말이야 응? 너 그런 애 아니자 놔~~~? 응?
살짝 혀가 꼬인 것을 보니 제대로 취했다.
- 야~마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취한 거야?
친구가 들고 있던 술잔을 내가 잡아끌어내렸다.
- 아 왜~~ 나 할 말 있어서 그래~
야 너~ 박민재! 강사님...! 너 딱 정해 얘야~? 얘야~~?
친구가 가리키는 얘와 얘는, 바로 J와 나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 딱 정하라고~! 어? 애매하게 하지 말고 확~~! 어?
점점 과격해지는 친구의 언행에 조금씩 불안해져 갔다
- 야~ 너 진짜 그만 마셔야겠다!
친구를 말려야 했다.
-하~~ 우리 누님~ 벌써 취하셨네~~
유연하게 그는 받아쳤다. 기분 나빠하지 않으려나?
다행히도 그런 눈치는 아니었다. 친구는 술이 들어가면 언행이 좀 과격해지는 스타일이었다.
그도 그런 친구의 면모를 잘 알고 있는 눈치.
- 야~ 딱 정하라고~~!
사실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친구가 속시원히 해줘서 고맙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타이밍이 아니었기에
그냥 부끄러웠다. 친구를 말려야만 했다. 안 그러면 모든 게 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야.. 쪽팔려 그만 좀 해…
친구의 귀에 가까이 대고 소곤거렸지만 단호하고 다급했다.
- 어! 딱 정해~! 누가 좋아?! 어?"
- 정하고 말고 가 어딨어 아~ 진짜 그만그만~ 알겠으니까 ~~
'뭘 알겠다는 거야?'
- 이왕 이렇게 된거... 음음! 사실은..제가..
사람들은 그를 주목했고 의문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설마..혹시 내 얘기를 하려는 걸까?
그때 옆에서 듣고 만 있던 J가 탁 하고 식탁을 치더니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다 들리게 끔 말이다.
- 맞아 오빠.. 확실히 해! 나랑 키스한 거 그거 그냥 아무 의미 없었던 거야?
'뭐?!
…………………………………. 읭~~!!!?????? 키..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