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이 들어왔다

15. 마음이 간질간질거려

by 작가이유리



샤워를 하고 방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가볍게 불어왔다

기분 좋게 살랑이는 바람. 코끝을 간지럽히는 이 느낌과 평온함이 약간의 설렘을 가져다 오고 있었다.


후~


오후의 다이빙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건 분명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추억으로만 남기기는 싫은 그런 기억..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리조트는 내가 머무는 방에서 지고 있는 노을이 아주 잘 보였다.

풍경이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다. 방까지 가려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해서 처음엔 좀 싫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의 방이 바로 옆이었다. 내 담당 강사여서 바로 옆으로 배정되었다고 했다.

첫날부터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가 가까이 있다는 게 의지가 되는 신기한 마음이었다.

내가 해파리에 쏘여 한참 아팠을 때도 내 옆을 지켜주기도 했고..


밤이면 밤마다 그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한 음악이 파도 소리와 겹쳐 은은하게 퍼지는 게

기분이 살랑 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은은하게 그가 내 마음에 들어오고 있었나 보다...


한참을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음. 하고 누군가 소리를 내었다.


- 노을 예쁘죠?


- 응.. 벌써 어두워졌네..


- 여기서 보는 노을은 진짜 평생 못 잊을걸요?


-그럴 것 같아...


-멋지죠. 아련하고... 좀 로맨틱하기도 하고


-그렇다... 정말..


- 어.. 근데 머리카락 다 젖어있는데?


- 아.. 머리 말리는 걸 잊었어.


- 그러다 감기 걸려요.


이런 말이 따스하다..


- 이렇게 더운데 무슨 감기야?


- 하.. 여름 감기 무시하네~ 이리 와봐요


그가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나는 잠시 주춤했지만 그의 완경 한 행동에 그저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방을 들어가니 깔끔하게 정돈된 화이트 톤.. 벽에는 큰 스크린이 있었으며

각종 스피커에 LP판도 있었다.. 의외로 클래식한 취향? 아 밤마다 음악을 튼 게 바로 저거였구나.


- 와... 되게 잘 꾸미고 사네~


- 그래요? 한국에 있는 내방이랑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하긴 했는데..


한쪽에는 빔 프로젝터가 있었다. 아.. 아마도 저것으로 J와 영화를 봤겠지..

그 생각을 하니 또 기분이 언짢아졌다.


나는 기분이 바로 티가 나는 성격이다. 얼떨결에 그의 손에 이끌려 따라 들어왔지만

방 풍경을 감상하자니 J가 떠올라 버렸다.

그는 왜 밤에 J와 이 방에서 영화를 봤을까.. 영화만 봤을까?


그가 거울이 있는 곳 앞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 근데 왜... 끌고 온 거야?

나의 기분 나쁜 표정을 읽긴 한 건지.. 자신의 페이스대로 나를 거울 앞에 앉혔다.


- 이거 해주려고


서랍 안에 드라이기를 꺼내 들고는 징~ 하고 드라이기 스위치를 눌러 켰다.

그리고는 내 머리카락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 감기 들어요.. 진짜 걱정시킨다니까.


- 괜한 걱정이야...


-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 이리 줘 내가 할게


- 또또~ 말 좀 듣지? 내가 해준다니까.


어린아이 달래듯 내비치는 그의 탄식이 싫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간질 거렸다 할까.


그의 섬세한 손길이 내 머리칼을 조심히 만지작 거렸고 나는 그게 간지러워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심드렁한.. 한편의 마음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 아무나 막 들어올 수 있는 그런 방인 가보네 여긴..


나도 모르게 생각만 하고 있었던 그 말이 나와버렸다.


그가 드라이기를 딱하고 껐다.


- 누구든 들어올 수는 있지만. 아무나 이런 거 해주진 않아



- 응?


그가 하던걸 멈추고 거울을 통해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들고 있던 드라이기를 탁하고 내려났다.


잠시 잠깐 침묵이 흘렀다.


- 나에 대해 좀 오해하는 것 같은데.



..............


- 그런 거 없어. 네가 뭘 하는 내가 상관할바 아니고...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움츠러들었다.


- 우리 같이 술 마실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다 알고 있었죠?


그날이 떠올랐다. 그가 입모양으로 누나 좋아요 라고 말한 것.. 갑자기 또. 얼굴에 열이 올랐다.


- 그게 뭐.. 기억 잘 안 나는데?


- 날 밀어내는 이유가 뭐예요?


........


- 내가 너무 들이대요?


- 아니...


- 나 싫어요?


...


- 아. 그럼. 그날 물어보려고 했던 거. 남자 친구 있냐는 거였어요


- 없어..


-내가 선수일까 봐?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럼 왜요. 왜?.........


-그런 게 아니야 정말로...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네가 J와 밤새 같이 있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긴 해...'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너와 있을 때 나는 너무 좋고 너와 한 다이빙은 내 인생에서 제일 좋은 추억이고...

널 보고 있으면 계속 내 마음이 몽글거린다고..


하지만.. J가 신경 쓰이긴 해. 네가 보고 있는 그 애. 보고 있는 거니 아닌 거니..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 가득 찼지만 말할 수 없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오늘 다이빙할 때 이탈한 거 일부러 그랬죠?

나 밀어내는 듯하더니.. 사람 걱정시키고 애간장 태우고 진짜.... 진짜 누구더러 선수래.. 자기가 더해.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 내가.. 그랬다고?


-누난 안 그랬다고 하겠지만.. 같이 있는 내내 그랬다고요 난.

자꾸 누나만 보이게 하고 안 보이면 불안하게 해. 그때도 모르는 척하길래. 그냥 맘 접으려고 했는데...



- 화.. 내는 거야?

난 몰랐어. 네가 어떤 맘이었는지.


- 모르는 척 한건 아니고?


펑~~~!!!. 펑!!

시끄러운 폭죽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방안은 정적이 흘렀지만

밖에서는 흥겨운 음악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다이닝 불이 켜지고 마지막 밤의 파티가 시작되려나 보다.


- 나.. 가봐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 다 모였겠다...


나는 뒤돌아 문쪽으로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는 내 손목을 잡아 팔을 끌어당겼다.


그와 마주한 얼굴.

긴장감.

설레는 숨소리

떨리는 눈빛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고 창문사이로 약간의 빛만 들어왔다.


내가 먼저 돌아봤나?

아님 그가 먼저 내 팔을 잡았나?


아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는 내 눈을 나는 그의 눈을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끝내.. 서로의 입술을 맞췄다.


짧았지만 강렬했다.

그건 사고가 아니었다.


- 주체 못할 만큼 니가 좋다면?


끝내 내 본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내 눈 위에 포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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