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진실이 뭐든간에
순간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신나게 술을 마시며 떠들어 대다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J에게로 시선이 쏟아졌다.
모든 것을 멈추고 J를 주목했다.
그도 J에게로 고개를 훽하고 돌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뭐랄까… 원망? 놀람? 의아함? 뭔지 몰랐지만 애정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당황하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 순간 정막을 깨트린건 친구였다
- 무어~~~~~?!!!!!라고~~~~~~~?!!!!
친구의 말에 바로 반응하는 그였다.
- 아니야!!!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이강사도 그에게 외치듯 물었다.
- 야!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냐?!”
- 말 그대로예요 키스해 놓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군다고요~
J가 다시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 헐~~~ 대박~~!
옆에 있던 유강사도 입을 틀어막으며 거들었다.
- 아니야~ 아니라고 잠깐만~! 야! 너 그렇게 말하면 진짜 다들 오해하잖아!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을 들켜서일까? 아니면 J가 거짓을 말하는 걸까.
그는 순간 나에게로 시선을 돌려 아니라고 고개를 내젓는 모양을 취했다.
사실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놀래야 하나 당황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화내야 하나?
몸이 고장 난 듯 연신 맥주를 들이켜고만 있었다.
- 하.. 야 잠깐 따라 나와
그가 J의 팔을 잡고 휙하니 데리고 나가 버렸다.
- 야~! 너네 여기서 마무리 지어!! 뭔 이야기인지 마리야~~! 야야!!
친구가 눈치 없이 취해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친구를 말릴 생각도 마음도 없어졌다.
‘키스라고….’.
나는 예상이라도 한 것 같은 전개에 이상하게도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라고 하는 그의 말이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J의 말이 더 신뢰가 가는 것도 아닌데.. 난 왜 J의 말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 생각된 걸까?
그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나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아서?
둘 다 아닌 것 같은데..
복잡하게 생각했던 내 머릿속은 웃기게도 마음과는 따로 놀았다.
'이제 됐어. 다 끝났네'
그 전까지만 해도 그의 앞에서의 긴장감과 두근 거림은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 야~ 너네 어디가!~!
친구가 계속 소리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냅둬.. 둘이서 해결할 문제가 있나 보지.
비꼬는 듯한 이 말을 그가 들리게끔 말하고 싶었다.
- 자자~~ 다시 우리는 파티를 이어가겠습니다~
아~ 뭐 그 남녀 사이 우리가 알아서 뭐 하게요~ 그죠? 하하..;;
이 강사가 분위기를 바꾸러 애썼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J의 뜬금없는 키스 고백의 후폭풍이 말이다.
'내가 먼저 말할 걸 그랬나?'
왠지 J에게 진 것 같은 아주 더러운 기분 탓인지.. 유치하게도 나도 그와 키스했다고 말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친… 말도 못 하게 유치했다.
제대로 미쳤다 내 머리가. 내 마음이.
몇 분이 지났을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가 다시 다이닝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이 강사가 그의 눈치를 살피고는 물었다.
- 야~ 걔는? 어쩌고 왔어?
- 아.. 몰라요.. 하..
유 강사도 궁금한 듯 귀를 쫑긋 거리며 그를 향해 집중했다
- 야~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너네 진짜 사귀냐?
- 아~ 진짜 아니라고요~~ 진짜… 이상한 말을 해가지곤…
그가 슬쩍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분명 들었다.
내 옆통수가 조금 따가웠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들이켰다.
맥주가 어느새 와인으로 바뀌었고 그다음은 소주였다.
- 아니 근데.. 누나 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어요?!
- 응? 나? 맛있으니까~~~ 마시지~~~~ 하하핫~~~
나는 취기가 돌아 이상한 콧소리를 내었다.
망했다. 이곳에서의 긴장감은 이제 바이바이다.
- 이런...
그의 탄식이 들렸다. 난 계속해서 술을 들이부었다.
어느새 다시 조금 정신을 차린 친구가 그의 옆에 털썩하고 가서 앉아 말했다.
- 이게 뭐 때문이겠어요? 응? 누구 때문이겠어요?
- 야 그만해~~~ 우리 강사님 혼내지 마~~~ 남자는 다~그런 거야 응? 본능~! 본능에 충실한 게 뭔 죄야?
- 어 죄야~! 히히 맞아~ 남자는 다~ 똑같다~ 그지? 마셔라 그래 마시자 ~~~~
- 아 좀... 그만 마셔!
그가 내가 들고 있던 술잔을 훽하고 뺏어버렸다.
- 아 왜 그래?! 내 술이야! 내 맘이야!
- 하….
그의 한숨이 또 귀에 들렸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 야 너 근데 진짜 괜찮은 거지?! 남자는 많아! 쟤 잊을 수~~ 있읍!?!!
그때는 내 손으로 친구의 입을 막아야 했다. 그 이상 말하면 내 마음을 너무 들키는 것 같았으니까…
왠지 지는 것 같은 패배자의 느낌.
아니다. 이미 졌다. 그와 그의 J에게
- 하… 미치겠네. 진짜 내가 뭐 변명할 이유도 없고 사실 그럴 일도 없었는데!
그의 말은 정말 다급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 없었는데?
이 강사 가 그의 말을 연이어 말했다.
다들 그와 J가 정말로 키스를 했는지 너무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야 말해봐 진짜 뭔 일이 있긴 있었어?
이강사가 다시금 재촉하듯 그를 유도신문 했다.
- 아니.. 없어요..있긴 뭐가..있어
그는 내 눈치를 보는 듯 계속해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 그게 같이 영화 보면서 뭐 인생상담도 하고싶다하길래…. 그냥 얘기 들어줬어 그뿐이야. 그리고...
또 나를 쓱 한번 보았다.
- 아! 왜!! 얘기를 하다 말아!!! 그래서 그다음은? 안했어?
그 다음은 유강사가 재촉했다. 아마도 이들은 남의 썸과 연애사가 흥미롭겠지.
- 아… 나 화장실.. 읍!
속이 뒤틀렸다.
나는 그 뒤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뭐 대충.. 아련한 사연이든 뭐든 J가 나불거렸을 거고 그건 그냥 핑계였을 거고
밥 맛없는 애교와 콧소리로 살랑 거리는 J와 밤을 보내니까 …
그러다가 키스하게 됐다..
이런 거겠지. 뻔한 스토리, 뻔한 결말, 뻔한 변명, 뻔한… 이 빌어먹을 짝사랑!!
울화가 치밀지만 그 속을 내비치기 싫었다.
나와 한 키스도 그저 그런 전개에 뻔한 결말이었 던 거였다.
맞아. 본능에 충실한 수컷의 행동.
- 야~ 어디가 ~~~~ 같이 가~~~
친구가 휘청거리면서 내 팔을 잡아당겨 팔짱을 꼈다.
- 이히히히~~ 같이 가자 친구야~~~
그때 이 강사가 친구의 팔을 잡아당겨 앉혔다.
- 야~ 넌 또 어디가?! 야야 여기 있어! 이리 와.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마음이 힘들었다 … 정신 좀 차려야겠다… 그에 대한 마음을.
나도 친구만큼 술을 많이 마셨지만 이상하게 정신이 취하지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술기운이라도 빌려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한 상태로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야 했다.
………
“하… 미치겠네.”
나지막이 그의 말이 들렸지만 그 한숨을 뒤로하고 나는 어둑한 계단을 올라 내방으로 향했다.
리조트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주 거지 같이 끝내게 됐다.
로맨틱? 은 무슨 개뿔….